진순이가 떠났다. 생후 두 달 되었을 때 내게 온 그녀는 이름이 없었다. 예쁜 이름을 붙이자며 며칠을 고민하다가 엉뚱하게 ‘진순’이라 붙이고 말았다. 그것도 이내 이름을 내놓지 못하는 나의 게으름에 아내가 궁여지책으로 붙여준 이름이다. 진도개 암컷이라 하여 조어(造語)된 이름이 분명할 터이다. 그런 이름을 듣고도 딱히 다른 이름을 내놓지 못하니 그냥 그렇게 굳어지고 말았다.

내게 처음 왔을 때는 제 어미가 그리워 며칠 밤을 울음으로 보채더니, 점차 수그러들었다. 예방접종도 시키고, 잔디밭에서 데리고 놀자 이제는 제 집이라고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비록 우리에 갇혀서 사육되긴 해도 부족함이 없는 집이었다. 목줄도 하지 않았고, 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넓은 공간도 확보되어 있는 집이었다.  “개집이 아파트야. 우리 집보다도 좋아.” 뛰어놀다 제 집에 들어가 쉬는 그녀를 바라본 사람들은 이렇게 뇌까렸다. 그래도 그녀는 늘 밖으로 나오기를 소망했다. 그 눈치를 모른 체 할 수 없어 가끔 내놓기도 했다. 그러면 잔디밭을 질주해 달렸다. 넓은 잔디밭을 일여덟 바퀴 돌고서는 내 앞에 와서 교태를 부리는 일도 잊지 않았다. 강하고 짧은 소리로 ‘여기’하며 손가락으로 앞을 지적해 주면, 그곳에 와서 넙죽 앉아 다음 지시를 기다렸다. 여간하여서는 내 지시를 어기는 법이 없었다.  

한번도 잔디밭을 이탈하지 않던 그녀가 울 밖으로 뛰쳐나간 적이 있었다. 쫓아가면서 부르면 다시 돌아왔다가는 재차 뛰쳐나가는 것이었다. 나가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바로 제 집 앞으로 와서 자신이 내 말을 잘 듣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다. 이러던 것이 하루는 나갔다가 두어 시간이 지나서야 돌아왔다. 잘못된 것임을 아는지 꼬리를 내리고 앞에 와서 추레하게 앉아 있는 꼴이 석고대죄 하는 모습이라서 동물치고는 영특하다며 귀여워해 주었다.    그러던 그녀가 떠나갔다. 아침 사료를 주려고 다가가자 밖에 나오고 싶어 안달이었다. 운동을 좀 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싶어 문을 열었다. 단숨에 잔디밭을 서너 바퀴 돌아치운다. 그 뛰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저렇게 밖에 나오면 좋아하는 것을 내놓지 않았구나, 하며 자책했다. 그 뛰는 모습은 보기에도 경쾌했다. 잔디밭 이쪽에서 저쪽으로 내닫는 것이 트랙을 도는 육상선수 같았다. 나는 빙긋이 웃으며 우리 안을 치우러 들어갔다.

일은 바로 그 때 일어났다. 잔디밭 저쪽에 고양이가 나타난 것이다. 제 영역에 들어온 것을 용서치 않는 그녀는 한 달음에 고양이를 쫒아갔다. 고양이를 쫓아낸 그녀는 느닷없이 무슨 생각인지 밖으로 내달렸다. 나도 쫓아갔다. 한참을 간 후에야 그녀는 멈추었다.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호응하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멈추는 듯 몇 차례 한 후에는 그냥 달아났다. 이제는 도로 쪽으로 나간 후부터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얼마간을 쫓아가며 불렀으나 그녀는 한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부르면 되돌아보며 그 자리에 멈춰 있던 그녀가 오늘은 다르다. 그렇게 냉정하게 뿌리치고 갈 수가 없다. 달리는 뒷모습은 그녀처럼 보이지 않았다. 꼬리를 치켜 올리고 그 늘씬한 다리로 내닫는 모습은 색다른 모습이었다. 저대로 나갔다가는 사고를 당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걸려 돌아올 수 없다는 생각에 겁이 더럭 났다. 이제는 아예 목적지를 향해 질주라도 하듯 달려간다. 급기야 멀리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달려간 뒤를 쫓아 마을을 돌아다니며 불러 보았지만, 어디에도 그녀는 없었다. 마을을 돌아보는 동안 내닫던 엉덩이만이 눈앞에 가물거렸다. 그동안 정을 주고 지냈는데, 그렇게 가는 것일까. 서운했다. 결국 집으로 돌아와 그녀의 마음이 돌아서기만을 기다렸다.  한나절이 지나도록 우리만 바라보며 돌아오기를 기다렸으나 보이지 않는다. 돌아오면 어떻게 교육을 시킬까 고민도 해 보았다. 영리한 진도개니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며 자주 개집을 쳐다봤다. 한나절이 지나고, 하루가 마무리될 무렵, 그녀는 집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풀숲에서 발견된 그녀는 하체를 전혀 쓸 수 없는 불구가 되어 있었다. 뛰어갈 때 그렇게 멋지게 보이던 엉덩이가 푹 주저앉아 못 쓰게 된 것이다. 차에 친 것이 분명했다. 외상은 없어서 피투성이는 아니었지만 그 고통은 전해 왔다. 말 못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디에서 사고를 당했는지는 몰라도 저 몸으로 제 집을 찾아온 정신력에 놀랐다. 풀숲을 가로질러 왔기에 털 속에는 여기저기 고통처럼 도깨비가시가 박혀 있었다. 그것을 하나씩 떼어내며 나는 그녀의 고통이 떨어지기를 바랐다.  

수의사는 검진을 하고 난 후 고관절이 나갔다며 방법이 없다고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통증이나 적게 하는 주사를 놓을 수 있는 정도라는 것이다. 그녀의 눈망울이 그렇게 처연할 수가 없다. 저 상태로 평생을 견뎌야 할 그녀의 앞날이 무서웠다. 차라리 고통 없는 죽음이 나을 것이라는 수의사의 판단에 나는 고개를 가로젓지 못했다.   수의사에게 안락사를 부탁하고, 동물병원을 빠져나왔다. 더 이상 그녀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저 눈빛을 어떻게 더 바라본다 말인가. 문을 밀치고 나오는데, 뒤에서 그녀가 바지 깃을 잡아끈다. 그러나 내친김에 빨리 그곳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내 머리 속으로 느닷없이 배반하고 달아나던 그녀의 엉덩이가 되살아났다. 

그녀가 나에게 남기고 간 것은 무엇일까. 제 아무리 나가려해도 아침에 문을 열어주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먼저 밀려온다. 제가 다른 세상을 그리워해도 꼭 잡아두고 나의 품에 두고 키웠어야 했다. 밖으로 나가려는 갈망을 모르는 척하고 꼭 잡아두었어야 했다. 떠나는 것마다 나 자신만 다스리고 참아낼 것이 아니라, 인내로 잡아 두었어야 했다는 후회가 전신을 타고 내린다.  

그녀는 떠나갔다. 이제는 잊어야 한다. 잊는 일은 수동보다는 능동이 더 현명하고, 효과도 클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이제는 철저히 잊어야 한다. 한시 바삐 그녀를 내 기억에서 덜어내야 새로운 식구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문득 가슴에 박혔던 ‘배반’의 의미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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