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천/본지 사장

해가 갈수록 시절(時節)이 점점 수상하다. 이번 여름은 유별나게 비 소식이 많았다. 마른장마 끝에 반짝 더위가 주춤해 가을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난데없는 8월 집중호우로 곳곳에서 때 아닌 물난리를 겪었다. 경기(景氣)도 안좋은데다 이런 날씨 변덕 탓에 여름 물장사는 완전히 망친 모양이다.

6~7월 장마, 8월 염천(炎天)은 이제 옛말이 돼 버렸다. 일기예보를 그대로 믿고 나들이 했다간 낭패 당하기 십상이다. 요즘은 기상당국이 장마예보는 하되 종료시점을 알리지 않는다. 장마철이 끝났다고 예보했는데 장대비가 우박처럼 쏟아지는가 하면, 계절을 가릴것 없이 국지성 폭우가 열대 스코올(Squall)처럼 퍼붓는 게 다반사다. 최첨단 기상위성이나 슈퍼컴퓨터도 짖궂은 날씨 앞에 무용지물이 된지 오래다.

농부들이 조상대대로 농사와 계절의 가늠으로 삼았던 절기(節氣)도 종잡을 수 없다. 파종시기를 조금만 놓쳐도 농작물이 시름시름하거나 웃자라 버려 수확을 망치는 일이 잦다. 머지않아 뚜렷한 사계절을 자랑하던 온대 몬순(Monsoon)의 청명함은 사라지고 긴 여름뿐인 아열대로 변한다니 벌써부터 후덥지근해 진다.

날씨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바로 자연속에 살아가는 인간이다. 사람의 신체는 수증기 막으로 둘러처져 있어 교감신경 계통으로 날씨의 변화를 감지하고 이를 조정한다. 날씨 좋은 날은 상쾌함을 느끼고, 비가 오거나 궂은 날은 기분이 가라앉게 된다. 더운 지방의 사람들이 느리지만 감정적이고, 추운 지방의 사람들은 이성적이며 이기주의적 성향을 가진 것도 모두 기후 탓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타심(利他心) 많고 온순했던 우리 고유의 민족성이 직선적이고 감정적 기질로 변한데는 날씨 변화도 한몫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렇듯 날씨는 인간을 비롯한 생태계 전반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또 한편으론 늘 인간의 의지 밖에서 존재한다.

요새 우리사회의 모습이 변덕스런 날씨와 꼭 닮아 있다. 민생을 살피고 보듬어야 할 국회는 몇 달째 ‘세월호 특별법’에 꽉 막혀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다. 정치 주체들은 본업을 팽개친 채 세금만 축내면서 내편, 네편으로 갈라 연일 싸우는 소리뿐이다. 그토록 뼈아픈 ’세월호‘ 교훈은 겨우 넉달 지나자 이미 옛날 얘기가 돼버린 듯 하다. '정치(政治)'를 하는게 아니라 '변태쇼'를 보여주는 '이상한 패거리'들만 보인다. 민심은 배신과 술수가 일상인 이런 정치판과 뒤틀어져 한참 멀어져 있다.

도처(到處)에서 남의 아픔은 뒷전인 채 조롱과 저주가 난무하고 진상 왜곡과 황당한 주장만 넘쳐 난다. 그런데도 뭘 좀 안다는 인간들은 장막 뒤에 숨어 눈치만 볼 뿐 묵묵부답이다. 간혹 돈과 권력만 있을 뿐 머리가 텅빈 인간들의 분별없는 처신과 언행은 칙칙한 여름장마처럼 기분을 상하게 한다. 왜 우리 정치는 늘 국민들의 생각과 동떨어져 있을까. 인간의 의지로는 도저히 손을 쓸수 없는 날씨와 왜 이리도 닮은 걸까. 국민들은 지금 불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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