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칼럼] 참 쪼잔한 얘기

'메르스'가 잦아든다니 다행이다. 하지만 그 여파는 쉽게 가시질 않는 것 같다. 여기저기서 동시다발로 터지는 역병(疫病)에 놀라고, 초기 대응에 실패해 우왕좌왕하는 정부를 보고 또 놀랐다. 세월호 사고 이후 나라 전체의 안전 기틀을 새로 짜겠다고 그토록 해놓고서...

최근 정치판에 '쪼잔하다'는 말이 유행이란다. '쪼잔하다'는 "통이 크거나 너그럽지 못하고 좀스럽다"는 순우리말이다. '째째하다' 거나 '치사하다' '옹졸하다'는 말과 비슷하다.

아마 대통령이 한때 심복이었던 여당 원내대표를 대놓고 '나가라'는 걸 빗댄 말인 모양이다. 당사자가 뭘 잘못했는지 몰라도, 아무리 제 식구라도 최고 권력자에게 밉상이 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공개적으로 보여 줬다.

온 국민이 보는 앞에 콕 찍어내 '배신'과 '심판'을 내밷던 섬뜩한 모습에서 과거 시절로 한참 돌아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왜 국민들에게 '쪼잔'하게 보이는 걸까. 잘 모르겠다.

우리 거제에도 아주 '쪼잔'한 일이 하나 있었다. 연초(年初)부터 '복지관' 위탁 문제를 놓고 거제시와 한 종교재단측이 갑론을박을 벌여 왔다.

그동안 우리신문은 어느쪽의 옳고 그름을 떠나 '복지'의 수혜자는 시민이라는 관점에서 이를 비중 있게 다뤄 왔다. 또 편집국장이 지난해부터 2016년까지 3년간 복지관 운영위원으로 위촉됐기 때문에 더 관심을 가졌다.

혹 처한 입장에 따라 우리신문의 논조가 편향적이라고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런 낌새는 신문사 대표인 필자에게 때론 입에 담지 못할 욕으로, 때론 '어필'정도로 다가왔다. 그때마다 "우리 신문은 어느 쪽도 치우치지 않기 위해 공정하게 보도하겠습니다"고 정중하게 대응해 왔다. 어떻게 가닥이 잡혔는지 모르지만 요즘은 이 문제가 잠잠해졌고 지난 몇 달간은 아예 보도조차 되지 않았다.

엊그제 복지관측에서 보도자료를 냈다. '거제시 복지관 제3기 운영위원회 위촉식 및 회의개최'라는 제목이었다. 거긴 "사회복지시설 운영의 민주성, 투명성 제고, 권익향상을 위해 사회복지시설운영위원회를 구성해야 함에 따라 제3기 운영위원회를 열고 지난 30일 위촉식 및 회의를 개최했다"는 내용과 함께 회의 장면을 찍은 두장의 사진이 있었다.

필자는 한통의 전화를 받고서야 진상을 알았다. 편집국장은 벌써 이 보도자료를 보고 황당해 하고 있었다. "시장으로부터 2016년까지 3년간 복지관 운영위원으로 위촉받고 임기도 남았는데 이건 뭐지...?" 복지관측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함께 위촉됐던 대학교수나 스님은 물론, 해고 무효를 주장하며 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복지관 前실장처럼 어느날 갑자기 짤려 버린 것이다.

복지관측은 올해부터 수탁기관이 바꿨으니 당연히 새 운영위원을 임명해야 된다는 논리다. 맞는 말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규정은 없다. 필자가 알기엔 위촉과 해촉은 공문으로 한다. 거제시희망복지재단이 운영을 시작한 올초부터 지난 6개월간은 뭐했는지 모르겠다. 수탁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시민단체와 언론에 맞서느라 깜박했던가? 말안해도 그 속내를 알겠다.

복지관측은 또 "밑에 실무자가 주도해서 기안을 올려 관장이 결재하고 시장이 새로 위촉했는데 무슨 문제냐"는 모양이다. 그래서 복지관에 직접 확인을 해봤다. 진실과는 동 떨어진 엉터리 변명이었다.

운영위원 그기 뭐시라꼬! 감사 인사는 고사하고 아무리 밉살스럽고 껄끄럽더라도 전화 한통 정도는 기본 아닌가? 시장 명의로 위촉해놓고 임기가 남았는데도 말한마디 없이 짜르는 그 배짱과 용기! 그래놓고 보도자료에는 "금번 위촉된 운영위원은 시설의 운영 또는 사회복지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으로...어쩌고 저쩌고"다.

내친 김에 위촉권자에게 직접 전화로 물어 보았다. "그기 무신 말이고?" 짐작한대로 매우 난감해 했다.

복지를 내세우는 복지관이 참 '쪼잔'하지 않은가. 이러면 갈등 해결은 커녕 점점 더 꼬일 뿐이다. 그건 윗분을 잘모시는게 아니라 욕먹이는 불충이다. 근본부터 다시 배웠으면 한다. 이번 일로 이쪽저쪽 애꿎은 실무자들만 흠씬 깨질 것 같아 괜히 미안스럽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트윗하기

새거제신문의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