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1993년 5월22일, 거제개 보호육성회(당시 회장 신홍규)가 찾아 낸 거제개 ‘일순이(우)’와 ‘팔순이(좌)’

지난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거제의 오지(奧地)에는 드물게 한두마리 정도의 거제 토종개가 남아 있었다.

특히 1990년대 초반까지 도로가 개통되지 않아 외지 문물 유입이 더디던 남부면 쌍근마을 등 일부 지역에는 할아버지 개가 손자개로 대를 이어가며 그 맥(脈)이 이어져 왔다.

1993년 5월22일, 거제개 보호육성회(당시 회장 신홍규)가 찾아 낸 거제개 ‘일순이’와 ‘팔순이’는 쌍근마을 김수근씨(1992년 당시 67세)가 6.25 전쟁 이전부터 길러오던 개를 씨받이 식으로 길러 온 대표적인 거제 토종개 였다.

김씨는 개가 새끼 몇 배를 낳고 나면 어미는 팔고 새끼 한 두 마리를 골라 키워 왔다고 말했다.

일순이이도 이 중의 한 마리 개였고 팔순이는 일순이의 동태로 김씨의 사위인 남부면 탑포리 양정민씨(당시 53)에게 분양했다. 특히 일순이와 팔순이는 당시 주변에서 사람의 말귀를 알아듣는 개로 소문이 자자했다. 

때로는 일순이가 주인을 따라 밭에 왔을 때 밖에 나가 길에 앉아 있으라면 그대로 했고 들에 메어 둔 우리 소가 잘 있는지 보고 오라면 소를 메어 둔 곳까지 가서 확인하고 왔다고 했다.

그 개들은 30마리가 넘는 고라니를 사냥했었다는 주민들의 증언도 있었다. 특히 팔순이는 새끼를 낳으면 산에 가서 사냥을 하고 그 고기를 먹고 와 새끼들에게 토해 내 주었는데 하루는 주인 양씨가 개를 보고 “자기 새끼에게만 고기를 먹이고 주인은 주지 않는 못된 것”이라고 나무라자 다음날 아침 개는 산으로 가더니 고기 한 덩이를 물고 왔다”고 주민들이 이구동성, 증언 했다. 

1994년, ‘거제개 보호육성회’의 부탁으로 잠시 동안 ‘일순이’를 맡아 기르던 거제시 둔덕면 거림리 마장부락 반순자씨(2008년 작고)와 거제개 ‘팔순이’를 사육하던 아주동 김광덕 전 거제시의회 시의원(62. 아주동)도 “거제개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사람의 행동도 미리 파악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반씨는 어느 날 밭에 김을 매러 가는데 일순이가 따라왔다. 곡식을 심은 밭에까지 일순이가 따라 오자 개를 보고 말했다. “왜 곡식을 밟노, 저기 길에 가서 가만히 앉아 있지”

말하기가 무섭게 일순이는 조용히 나가 밭 윗길로 가더니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고 말했다. 또 반씨 집에는 당시 약간의 소와 돼지를 사육했는데 반씨가 소에게 먹일 사료를 광주리 등에 담아 머리에 이고 나가면 집 앞에 두 갈래의 길에서 개는 앞서서 축사가 있는 북쪽방향 길로 향해 가고 돼지사료를 이고 가면 돈사가 있는 동쪽 방향으로 앞서 갔다고 말했다.

김광덕 전 의원은 1994년 어느 봄날, 자신이 맡아 기르던 팔순이가 주인의 꾸지람을 듣고 닭을 모두 물어 죽인 사실을 증언했다.  그는 팔순이의 그날 행동은 정말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갑자기 주인이 바뀌고 사육하는 환경도 달라진 팔순이는 이곳으로 온지 보름이 다돼도 활기를 찾지 못했다. 더구나 매일 주는 먹이를 네 마리의 닭들이 달려들어 쪼아 먹었지만 본체만체했다. 때문에 개의 사료를 주고 나면 삽시간에 밥그릇이 비었다.

화가 난 김 전 의원의 부인이 하루는 팔순이를 향해 “이 바보야 닭이 먹이를 뺏아 먹으면 확 물어 죽이지 바보처럼 보고만 있냐”하고 꾸지람을 했다.

그런데 정확히 그 다음날 아침, 개의 먹이를 주고  부인이 이웃에 잠시 다녀오니 닭 네 마리는 모두 개집 옆에 죽어 있었다.

사람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지만 부인은 팔순이를 나무라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미 잃은 고양이새끼까지 보살피기도

2002년, 연초면 한내리 서영구씨(당시 72세)는 자신이 기르던 거제개 ‘검둥이’는 사람처럼 영리했다고 증언했다.

60년대 후반, 검둥이는 집에서 함께 기르던 어미를 잃은 고양이 새끼도 젖을 먹이고 특히 어른들이 이웃집에 모내기를 하러 가면 아이들이 따라 가 밥을 함께 먹 듯, 개도 고양이를 물고 따라가 밥을 얻어 먹이고 다시 집에다 물어다 놓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먼 길을 찾아오는 초능력까지 겸비

거제시 사등면 장좌부락 조규봉씨(68)는 소년 시절부터 여러 마리의 개를 기르며 거제개의 매력을 체험한 사람이다. 그 중에서도 ‘봇지’, ‘에스’, ‘독구’ ‘워리’ 등 수 마리의 사냥개는 전국으로 명성을 떨쳤다.
1970년대 후반, 조씨는 무척 사랑하고 아끼던 에스를 인근 통영의 박준열씨(작고)에게 팔았다. 그 때 조씨 집에는 이제 사냥 맛을 들인 ‘에스’의 자견 ‘워리’가 성장하고 있었다. 

에스를 팔 때 정확한 액수는 모르지만 조씨는 당시 황소 한 마리 값과 맞먹는 가격의 거금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조씨는 눈물을 흘리며 에스를 택시의 트렁크에 태웠다. 평소 영리한 에스였기에 화물차에 태웠다가는 가는 길을 익혀두었다가 행여 되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에스를 판지 정확하게 16일째가 되던 날 새벽, 조씨는 귀에 익은 두 마리의 개짓는 소리에 눈을 떴다. 밖으로 나가보니 마당에는 에스와 워리가 함께 뛰놀고 있었다. 에스는 갓 놓인 거제대교까지 건너 옛 주인 집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그 길로 조씨는 두 마리의 개를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 두 시간여 만에 노루 1마리를 잡아 성포에 팔러 갔다. 

그날 아침, 통영의 박씨가 조씨를 찾아왔다. 조씨 부인은 에스와 워리가 노루를 잡아 팔러 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씨는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지난 보름 동안 에스를 데리고 사냥을 시켜보았지만 도저히 사냥개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간 통영 미륵산과 도산면 등지의 산에서 6마리의 노루를 발견했지만 멀리는 2km 정도, 가깝게는 5~6백m 정도 추격하다가는 되돌아오는 게 고작이었다.

더구나 에스는 언제나 기운 없는 것처럼 축 늘어진 모습으로 먼 하늘만 바라보는 행동을 계속했다. 개를 잃어버린 그 날도 박씨는 에스를 데리고 미륵산으로 사냥을 갔으나 노루를 쫓는 척 하다가 갑자기 거제 쪽 먼 하늘만 바라보더니 왔던 길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조씨 집을 찾은 박씨는 그날 에스를 다시 데리고 갔지만 이후 8차례나 되돌아오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박씨는 에스를 되 물릴 수밖에 없었다.  <계속>  

반용근  gjnow32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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