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럴 줄 알았다. 새누리당은 비박(非朴)의 아이콘(icon) '유승민'을 자르다시피 내치고 친박(親朴)인사를 공천했다.

유승민은 "정의를 위해 출마하겠다"면서 탈당했다. 그는 "권력이 저를 버려도 국민만 보고 나아가겠다. 정의가 짓밟힌 데 대해 분노한다"고 말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민권력을 천명한 헌법 1조 2항입니다. 어떤 권력도 국민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원칙이 지켜지고 정의가 살아있고 상식이 통하는 세상입니다"

새누리당은 유승민의 '정체성’(正體性)'을 문제 삼았다. 공천작업 와중에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느닷없이 꺼내 든 잣대다. 그는 "당 정체성에 심하게 적합하지 않은 사람은 응분의 대가를 지불토록 할 것"이라고 언급, '정체성' 논란에 불을 붙였다.

'정체성'이 무엇인가. 사전적으로는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지닌 독립적 존재를 의미한다'고 돼 있다. 정당(政黨)은 공통된 원리나 정책을 가지고 일정한 정치이념의 실현을 위해 정치권력 참여를 목적으로 맺어진 단체다. 그렇다면 '정당의 정체성'은 그 정당이 추구하는 정치적 이념이나 본래적 가치, 정치철학 정도가 될 것이다.

새누리당 당헌 전문과 1장(총칙) 1조(목적)에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추구, 개인의 자유와 창의 발현, 자생적 복지정책 추진과 사회 양극화 해소, 한반도의 평화통일 등이 핵심 요지로 나타나 있다. '유승민'의 연설이 이 중에 어디와 배치 돼 '당 정체성'을 훼손시켰단 말인가.

원내대표 시절 대정부 질문을 통해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국정 기조를 비판한 게 가장 큰 이유라는 말은 왜 못하나. 한때 주군으로 모시던 대통령의 정책을 대 놓고 비판한 게 눈밖에 났고 결국 원내대표직에서 밀려난 것 아닌가. 또 수준 낮은 외교로 국제적 망신을 사던 청와대 참모진을 비판하고 당명 개정에 반대한 것이 '정체성' 부적합 이유라고 왜 당당히 밝히지 못하는가. 이런 관점에서 이 위원장의 발언은 유치하고 구차해보이기까지 하다.

유승민의 연설은 시원하고 명쾌하고 따뜻했다. 야당의원들은 그에게 기립박수를 보냈고, 방송을 지켜보던 많은 국민들도 심정적으로 동조했다. 심지어 보수성향의 종편채널조차 "지금까지 보수정당의 어떤 원내대표도 이런 연설을 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정치의 한 축인 야당에 대해 잘한 건 잘했다고 말한 그의 연설 어디가 잘못됐는가. 복지 추진과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왜 틀렸는가.

"10년전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양극화를 말했습니다. 양극화 해소를 시대의 과제로 제시했던 그분의 통찰을 저는 높이 평가합니다. 이제 양극화 해소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함에 있어서는 여와 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새누리당은 성장과 복지가 함께가는, 나누면서 커가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정당이 되겠습니다<2015년 4월 15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중에서>"

차리리 이 부분이 소위 친박(親朴)을 포함한 그들의 심기를 건드렸고 가장 듣기도 싫고 인정하기도 싫었다고 솔직해야 한다.

당 일각에서는 "논란 당사자가 끝까지 인기영합식 발언으로 해당행위를 하고 표를 깍아 먹는다"고 불만을 드러내는 모양이다. 자살골을 넣어놓고 골키퍼 나무라는 격이다. 누가 표를 깍아 먹었는지 두고 볼 일이다.

이러면 대한민국 보수는 모두 '수구'이거나 '꼴통'이 돼야 한다. '합리적 보수'나' 건전한 보수'는 설 자리가 없다. 입 바른 소리하는 자기네 식구 밉다고 그런 식으로 쫓아내는 건 왕조시대나 있을 법 한 저급한 정치 보복이다.

유승민이라는 정치인을 꼭 두둔해서가 아니다. 새누리당과 이 정권이 하는 짓이 너무 옹졸해서다. 이번 처사는 정치 선진화를 갈망하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수정>

<이 글은 서영천 대표기자가 거제타임즈 편집이사로 근무할 당시인 2012년 11월 2일자 게재한 칼럼입니다>

서영천 대표기자  gjnow32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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