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를 곧 ‘망할 도시’로 알던데 맞나?” 최근 한 지인이 사석에서 필자에게 불쑥 던진 말이다.

엊그제 수도권에 사는 50대 중반 누이가 전화를 해 조선소에 다니는 자신에게 걱정스럽게 안부를 묻기에 “아직은 괜찮다”고 대답했더니, 그녀가 “아이구 오빠! 요즘 매일 뉴스를 보니 거제는 인자 망할 것 같더라”는 것이다.

그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니 걱정마라”고 전화를 끊었지만, 최근들어 조선 위기를 지나치게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에 반감이 더 커졌다며 필자를 몰아부쳤다.

근 30년을 억척스럽게 노동현장에서 일하고 곧 은퇴를 앞둔 시점에 찾아온 ‘조선위기설’에 대한 그의 불만과 불안을 이해할만 했다. 매일 비슷한 뉴스를 접하는 필자 역시 혼란스러운데...

요즘 포털에 ‘거제’를 검색하면 ‘조선 위기’ 관련 뉴스가 엄청나다. 특히 거제지역에는 ‘조선 빅2’가 있다 보니 이들이 악전고투하는 현장의 ‘먹잇감’ 뉴스는 그야말로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뉴스라기 보다 내용이 거기서 거기다. 비슷비슷한 소식에다 일부만 살짝 비틀어 놓은 ‘도미노 기사’가 대부분이다. 일부 인터넷 언론은 ‘조선업이 곧 망할 것’처럼  아예  뉴스 어뷰징(Abusing‧자기표절)까지 해 대고 있다.

언론이 왜 이런지 조선소 홍보팀에 근무하는 직원의 말을 들어보면 대충 짐작이 간다. 중앙에서 오는 취재팀에게 조선소의 정확한 실상을 전해주면 그저 ‘듣는 둥 마는 둥’ 고개만 끄덕이다가, 뜬금없이 오후 3∼5시께 시내로 나가 거리 모습을 촬영했다.

데스크로부터 어떤 지시를 받았는지 몰라도 그 한산한 시간에 식당가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또 저녁에는 굳이 불 꺼진 주점가를 기웃거리더니 그 다음날 신문에 ‘구조조정을 앞둔 쓸쓸한 거제 거리’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 왔다고 한다.

이런 행태는 메이저 신문이나 지상파 방송도 별반 다르지 않다니 꽤나 실망스럽다. 그나마 거제에 취재라도 오거나 전화를 해서 물어라도 보면 다행이다. 단 한번 통화한 적도 없는 기자가 “거제 모 조선소 관계자에 의하면”이라고 시작해 조선소 실상을 터무니없게 쓴 기사를 보면 어이가 없더라고 귀뜸했다.

이렇듯 명확한 근거도 없는 기사를 특정 언론을 중심으로 쏟아 내다보니 일각에서는 정치적 '음모론'까지 제기 한다. 그도 그럴것이 총선전에는 별다른 언급없이 조용하다가, 총선이 현 정권의 참패로 끝난 직후부터 별안간 위기설과 구조조정설이 집중적으로 부각되니 이런 말까지 나오는 모양인데, 이 역시 사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아무튼 다른지역 사람들이 언론보도만 보면, 그 잘나가던 거제는 이제 '유령의 도시'로 느껴지는 모양이다. 더구나 '거제의 눈물'이 어쩌니, 스웨덴의 몰락한 조선도시 ‘말뫼의 눈물’이 저쩌니까지 하는 걸 보면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일이 없어 짤린 노동자들은 일찌감치 보따리를 싸 원룸은 텅텅 비었고, 외국인들의 이사 행렬로 줄을 잇는데다 시내 식당이나 주점에는 아예 손님의 발길이 끊겼으며, 부동산은 매물이 거의 없고 아파트는 분양이 안 돼 매일 쪽박 차는 건설사가 속출하는 것처럼 과도하게 묘사되고 있다. 정말 거제가 이 정도로 참담한가?

'조선 위기'라는 말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일감인 수주가 제대로 없고 대형 해양플랜트 프로젝트가 종료되는 6월 이후 고용 위기설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런 불안감이 지역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다보니 소비심리도 위축되고, 덩달아 식당가나 부동산 경기 등도 함께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우리에게 조선 위기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그동안 기술력에 비해 지나친 과(過)투자로 얻은 쓰라린 경험은 앞으로 더 큰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될수있다. 구조조정도 필요하지만, 현장의 숙련된 인력은 업종전환 등 재배치를 통해 적절하게 관리해 다가 올 조선 호황기에 대비해야 한다.

한때 ‘강아지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특혜(?)를 누려온 거제경제도 마찬가지다. 모두들 힘들고 어렵지만, 상인들은 왜 유독 거제물가가 그렇게 비싼지 당국과 머리를 맞대고 상생하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과열된 부동산 경기도 이제 거품이 걷히고 실수요 위주로 가고 있다는 전문가 진단도 있다. 조선소 땜에 잘나가던 원룸 등의 과잉 투자 위험성은 행정에서 그동안 꾸준히 지적해 왔다.

또 불경기라지만 옥포나 고현 시내에 나가보면 손님이 늘 북적이는 곳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 곳은 다 이유가 있다. 가격이 저렴하거나 맛이 좋고 친절하며, 다른데 보다 차별화 된 영업전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이 이런 실상은 제대로 짚어보지 않은채 사안을 부풀리거나 너무 호들갑을 떨어서는 곤란하다. 지나친 취재경쟁과 알량한 특종에 집착한 나머지 ‘조선 위기’를 과장하거나, 거제를 마치 '죽음의 도시'쯤으로 몰아가는 선정적인 보도는 과연 누구에게 득이 되겠는가.

이름깨나 하는 언론까지 이 따위니 참으로 한심할 뿐이다. 지난 '세월호' 사건을 통해 진실은 제쳐두고 언론의 입맛에 따라 보도 했을때 국민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게 되었는지 잘 알것이다. 그저 조선(造船)의 힘들고 어려운데만 골라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봐야 우리의 조선경쟁국인 중국과 일본만 좋은 일 시킬 뿐이다.

앞날에 닥쳐 올 위험이나 위기에 미리 대비하는 건 현명한 처신이다. 조선업의 장기 호황 끝에 찾아 온 불황이 조금 고통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그 원인을 정확히 알고 대처한다면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되돌릴 수 있다. 어려울 때는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함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격려와 협조의 자세가 절실하다. 언론 역시 예외일 수 없다.

거제저널  gjnow32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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