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조선 대국(大國)의 상징이었던 거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지난해말부터 몰아치기 시작한 조선 불황의 파장은 끝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한 지역의 건강성은 사회적 지표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위기를 반영하는 사회지표 중 가장 두드러진 게 사건사고의 급증이다. 속칭 ‘묻지마’ 범죄를 비롯한 충동성 범죄의 증가는 지역사회 안전망이 무너지고 있다는 중대한 신호(signal)다.

자살율 또한 공동체 붕괴 현상을 대변해 주고, 위기에 빠진 사회일수록 출처불명의 유언비어가 급격히 퍼지면서 혼란을 더욱 가중시킨다. 이런 현상은 최근 우리지역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요즘 거제에는 ‘자고나면 억(億)!’이라는 말이 푸념처럼 시중에 떠돈다. 과거에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대형사건들이 자주 터지니 이런 말이 나도는 모양이다. 물론 거제지역은 신흥 중소도시의 특성 그대로 범죄발생율이 원래 높은 편이다. 조선경기가 호황일때는 웬만한 사건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묻혀 넘어갔다.

하지만 최근들어 줄 잇는 대형사건은 근래 보기 드문 현상이다. 210억을 꿀꺽한 조선소 직원 사건부터 80억대에 달하는 전세보증금 사기, ‘벤츠’를 자전거 보다 쉽게 살수 있다며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150억대 외제차 공동구매사기, 10억대 일가족 보험사기, 8천만원대 취업 사기사건 등은 대도시에서도 좀체 사례를 찾기 힘들다. 덩달아 거제경찰서는 몇년에 한번 할까말까 하던 사건브리핑을 올해 들어 벌써 너댓번이나 열 정도다.

경찰과 함께 위급현장에 출동하는 119구조대의 통계에도 이런 현상은 잘 나타나 있다. 거제소방서는 올해 상반기까지 1,185회의 구조현장 출동이 있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786건에 비해 무려 44%나 급증한 것이다. 소소한 구조활동이야 구조서비스 차원이라 별 문제가 될게 없다. 그러나 생생한 현장을 접하는 소방구조관계자들은 요즘 눈에 띄게 충동적인 사건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것 같다고 전한다.

이와함께 자살률의 증가는 공동체 붕괴의 명백한 위험 지표다. 올해 상반기 거제에서 발생한 변사사건은 거의 70건에 달하고 있다. 변사는 사망원인이 불명한 경우지만 대개 자살을 뜻한다. 불과 몇년전의 1년치 통계에 버금 갈 정도다. 지난해와 비교할 때 3월까지는 비슷한 추세를 보이다가, 총선이 끝난 직후인 4월 중순께부터 자살률이 거의 두배로 급증했다. 교통사고로 한해 20명 남짓 희생되는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이 갈 것이다. 결국 시간이 갈수록 삶이 팍팍해지고 힘들어진다는 징후이다.

자살의 원인이야 제각기 다르고 그 사연마다 안타까움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특히, 조선현장에서 죽도록 고생만 하다 절박한 상황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근로자들의 사연 하나하나는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이 쓰리고 아프다.

과거 거제지역에는 대략 5년을 주기로 어쩌구니 없는 유언비어가 나돈 적이 있다.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내용의 유언비어가 숱한 억측과 소문을 양산하면서 언론이 취재에 나서고 경찰이 해명까지 할 정도로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

요즘은 SNS가 유언비어의 주요 매개체가 됐다. 모바일을 통해 지역사회의 온갖 소문을 퍼나르고, 때론 거짓말까지 갖다 붙여 SNS에 올려놓고 남의 치부를 시시각각 들여다보며 희희낙락거리는 모습을 보면 정말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시청을 비롯한 행정기관과 경찰, 소방당국은 지역사회를 지켜 나가는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

본연의 업무는 물론이고, 기관마다 지역사회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큰 안목과 각자의 역할에 더욱 충실할 필요가 있다. 큰 것 보다는 작은 것,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 거제의 구석구석을 잘 살펴야 된다는 뜻이다.

하찮게 여길지 모르지만,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지는 요즘은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가장세대 등 어렵고 힘든 이웃을 더욱 잘 챙기고, 언젠가 닥칠 태풍이나 지진 등 각종 자연재해에 대비해  위험요소 마다 사전에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도 지역사회의 중심을 잡아 나가는 중요한 일이다.

경기 침체는 어느 사회에서나 생활범죄의 증가를 불러 온다. 그런 차원에서 엊그제 거제경찰서가 도내 세 번째로 40여명의 기동순찰대를 발족한 건 매우 시의적절해 보인다. 경찰이 흔들리는 지역사회의 안전 고리를 보다 촘촘하게 챙기겠다는 의지로 풀이 된다.

그동안 크고 작은 사고현장을 원만하게 수습하면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 준 거제소방서 역시 더욱 기운을 내야 한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는 소방관들이야말로 위기의 순간에 거제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는 '수호자' 역할을 제대로 해야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런 때 일수록 우리 자신도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누가 나를 도와줄것이라는 나약함에서 벗어나, 어느 순간 나는 '혼자’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위기에 직면해도 좌절하지 않는 내공을 기르면서 희망의 미래를 기약하는 건강한 삶의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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