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 곳곳에 내 걸린 승강기 관리업체 규탄 현수막>

거제경찰서(서장 김영일)는 지난 6일 거제시 상동동 한 고층아파트 승강기 시스템을 조작해 고의로 고장 낸 승강기 관리업체 팀장인 A(43)씨와 또 다른 팀장 B(42)씨를 재물손괴‧주거침입‧업무방해 혐의로 각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과 아파트관리사무소 등에 따르면, 국내 유수 승강기 관리업체 간부들인 이들은 사전에 공모, 자신들이 유지‧관리‧보수를 맡아오던 아파트와 재계약 입찰에 탈락한데 앙심을 품고 일부러 승강기 시스템을 조작해 고장 낸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의 범죄행각은 아파트관리사무소 및 주민들의 집요한 노력과 이를 예사롭게 여기지 않은 경찰의 주도면밀한 수사로 전모가 드러났고, 방송과 언론을 통해 전국적인 개망신을 당했다.

이 아파트는 1754세대가 사는 거제에서도 손꼽히는 대형 아파트 단지로, 모두 59대의 승강기가 설치돼 있다. 이들은 승강기 관리비로 지난 10년간 매년 1억원 가량을 입주민들의 호주머니에서 꼬박꼬박 챙겨 왔다.

이들이 '배은망덕'한 범행을 계획한 건 재계약에서 탈락하면서 부터다. 관리사무소측은 지난 2월부터 세 번의 공개입찰을 했으나 번번이 유찰되자 규정에 따라, 지난 4월 수의계약을 통해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은 관리업체로 바꿨다.

자질구레한 사정도 있지만, A씨 등이 속한 업체가 계약기간 갱신 조건으로 아파트관리사무소측에 관리비 4천만원 인상을 요구하면서 재계약이 결렬된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이러자 이들은 앙심을 품고 야비한 계책을 꾸몄다. 기술적으로 다시 자신들의 업체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될 기가 막힌 꼼수를 찼아냈다. 오랫동안 관리해 왔고 누구보다도 승강기 내부 기능을 잘 아는 터라 이들의 범행은 아주 손쉬웠다.

하지만 아파트 현관 곳곳에 CCTV가 설치돼 있고, 팀장인 B씨를 포함한 직원들의 얼굴을 관리사무소와 주민들이 아는 게 문제였다.

경남지역 팀장인 B씨는 주민들이 얼굴을 전혀 모르는 경북지역 팀장 A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평소 승강기 내부 시스템을 꿰뚫고 있는 A씨는 단 몇분 만에 범행을 마치고 유유히 사라졌다. 이 바람에 지난 5월에 이 아파트 8개 통로, 지난 7월에는 1개 통로의 승강기가 멈춰 서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고장신고를 받은 신규 관리업체로서는 기술력 부족은 물론, 내부 시스템을 궤뚫고 있는 이들의 범행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당황 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밞히는 법.

아파트관리사무소와 신규 업체도 만만치 않았다. 승강기를 재가동시키는데 무려 10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발품과 수소문을 통해 전문가를 찾아 내 기어이 승강기 고장 원인을 밝혀냈다. 이때부터 의혹의 시선은 자연스러웠다.

관리사무소측으로부터 그간의 사정을 들은 경찰은 망설임 없이 즉시 수사에 들어갔다. 사건을 맡은 수사팀은 다른 사건을 거의 팽개치다시피 한 채 이 사건에만 매달렸다. 끈질긴 경찰 앞에 이들은 결국 한달여만에 손을 들었다.

수사결과 이들의 ‘파렴치’함은 지난 5월 일부 승강기의 시스템을 조작해 정전되면 재가동할 수 없도록 고장 내면서 극에 달했다. 실제 정전이 돼 승강기에 어린이나 노약자, 임산부 등이 갇혔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누구보다도 그런 위험을 잘 아는 이들이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셈이다.

이들은 경찰의 거듭된 추궁에 7월 사고(승강기 1대 고장)는 순순히 시인하면서도, 5월 사고(승강기 8대 고장)는 자신들과 상관없다며 한참을 버텼다. 결국 경찰이 완벽한 증거를 들이일자 마지못해 털어 놓는 교활함을 보였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줄 아니 양심은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경찰은 당연히 구속영장 신청을 검토했다. 하지만 뻔한 진실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다 궁지에 몰린 이들은 매우 얍샵했다. 경찰의 강공 모드를 눈치 채고는 재빨리 아파트관리사무소를 찾아가 본사 차원의 사과 약속과 함께 승강기 보수비용 1천여만을 물어주고 합의서를 받아내고, 국내 유명 로펌 변호사까지 선임했다.

일본계로 알려진 이 승강기 관리업체 간부들은 경찰에서 자신들끼리 우발적으로 범행했을 뿐 회사 차원의 지시는 없었다고 극구 변명했다. 그러나 해당 아파트 주민들은 이들의 말을 전혀 믿지 않는 분위기다.

사건이 발생한지 꽤 지났지만 요즘도 이 아파트 단지 입구와 관리사무소 등지 곳곳에 승강기 관리업체를 규탄하는 현수막을 걸어두고 있다. 언뜻 보면 무슨 큰 시위라도 하는 줄 착각할 정도로 살벌하다. 이같은 주민들의 분노는 여간해서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그 짓을 저지른 사람들이 팀장급들인데, 자기들 내부회의를 거쳐 회사에서 사과하겠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동안 경찰조사 때문에 아파트 주민들의 대응이 늦어졌다. 앞으로 그들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본 후 추가 대응수위를 정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번 사건은 어떻게 보면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고 좀 황당해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이면(裏面)을 들여다보면 기술력을 가진 거대기업이 정당한 경쟁이 아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형적인 ‘갑질’ 횡포가 우리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나아가, 다중(多衆)이 이용하는 승강기 안전을 책임진다는 유명 기업이, 정작 자신들의 이익 추구에만 눈이 멀어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쉽사리 팽개쳐 버리는 비정한 행태를 그대로 보여 주었다.

26일 오전 이 아파트를 찾은 기자에게 한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고양이한테 생선가게를 맡겨도 요즘 고양이들은 똑똑하고 의리가 있어 주인집 생선에는 손 안댄 답니다. 이들은 고양이 몰래 생선 훔쳐가는 쥐새끼 같은 인간들 아닙니꺼"라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범인들이 고의로 사고를 내 멈춰섰던 승강기>

<승강기 내부에 붙여 놓은 안내문>

<KBS 방송화면 캡처>

<KBS 방송 화면 캡처. 이하 같음>

서영천 대표기자  gjnow3220@hanmail.net

<저작권자 © 정의로운 신문 거제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