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로(寒露)를 지나는 요즘 시골은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이때쯤이면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차가워지고 찬 이슬이 맺힌다. 농촌에는 기온이 더 내려가기 전에 추수를 끝내기 위해 타작이 한창이다. 불과 닷새전에 태풍 ‘차바’가 매섭게 몰아친 탓에 알곡이 많이 떨어지긴 했어도 올해도 풍작이라니 참 반가운 일이다.

요즘이야 콤바인으로 수십 마지기 벼논을 후딱 해치우지만 예전 추수철에는 온 집안 식구는 물론, 이웃들까지 품앗이로 달려들어야 했다. 세상이 좋아져 농기계가 아무리 일손을 덜어 준다 해도 타작한 벼를 창고에 들이기까지 허드렛일은 아직도 농부의 손길이 필요하다.

엊그제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부산 광안리 해변에 쌓인 쓰레기를 치우는 외국인 세 모녀의 모습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엄마는 알록달록한 장화를 신고 긴 갈퀴로 쓰레기를 긁어모으고 이를 옆에서 도와주는 큰딸과 함께, 유치원생 쯤 돼 보이는 작은딸도 고사리 손에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이 사진을 찍은 시민은 아이들의 기특한 모습에 “도와줄까?”라고 물어도 아이들은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채 쓰레기 치우는 일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한 시간 뒤 다시 같은 장소를 지나갈때도 세 모녀는 여전히 비지땀 흘리며 쓰레기를 치우고 있어 함께 거들었다고 사연을 전했다.

사진 속에 비친 외국인 세 모녀의 행동은 너무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물론, 그들이 외국인이라서 더 눈에 띄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들이 머물고 있는 주변의 고운 백사장이 쓰레기로 뒤덮히자 스스로 치우겠다고 나선 그들의 모습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이 무엇인지 새삼 느꼈다.

매년 1백만 인파가 모이는 서울 불꽃축제는 이제 ‘쓰레기 축제’라는 오명(汚名)으로 유명해졌다. 지난 3년간 이 축제장에서 나온 쓰레기 처리비용만 4,663만원이 허비됐다. 먹고 마시다 버린 쓰레기가 해마다 수십톤씩 쏟아지고 그걸 치우느라 환경미화원 수백명이 이틀을 꼬박 매달린다니 정말 한심할 지경이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를 보면서 시민의식을 논하기 이전에, 이건 거의 병적(病的)인 추태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죽하면 “이럴 바엔 축제를 하지말자”는 비판까지 나오는 모양이다.

필자가 사는 고향마을에는 최근 몇년사이 아파트와 전원주택 단지가 급속도로 들어섰다. 인근 공단에 다니는 동남아계 외국인도 꽤 살고 있다. 덩달아 쓰레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보다 못해 필자가 몇년째 운동 삼아 매일 아침마다 쓰레기 버리는 장소를 정리해 왔다. 그런데 이젠 포기해 버렸다.

분리수거 개념이 없는 일부 외국인들은 가르치면 뜻이라도 알아듣고 수긍했다. 하지만 번듯한 전원주택에서 고급외제차를 굴리는 일부 이웃들의 무개념은 차마 입에 담기조차 싫다. 시청에서 감시용 CCTV를 설치해 놓았지만 이미 무용지물이 된지 오래다. 대신 툭하면 마을이장이나 관공서에 대놓고 고함을 지르고 호통을 친다. 간혹 양심을 호소해 봤지만 돌아온 건 욕설뿐이었다. 그들에게는 ‘내가 버리니까 치우는 너희가 먹고 살지 않느냐’는 개념이 확고히 각인돼 있는 듯 했다. 그들은 난생 처음보는 외계인들이었다.

지난 2일에는 가중되는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는 훈련을 하다 순직한 해군 링스헬기 조종사 3명의 영결식이 있었다. 이웃 통영 출신으로 초대 잠수함 전단장을 지낸 한 예비역 제독이 조문을 다녀온 뒤 SNS에 올린 추모글이 잔잔하게 심금을 울렸다. 그는 "시위 현장에서 죽은 농민에게는 정치권과 수많은 단체가 찾아가지만, 나라를 지키다 순직한 군인들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탄식했다.

헬기 추락사고가 있기 전날, 지난해 서울 도심 시위 도중에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혼수상태로 있던 백남기 농민이 끝내 숨졌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백씨 죽음을 놓고 들끓었고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정치인들은 물론 일반인 조문도 이어졌다. 억압받는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힘들고 어려운 농민으로 시위에 나선 절박한 사정은 헤아려야 한다. 또 공권력이 남용 돼 그가 숨졌다면 마땅히 정부는 원인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물론, 유가족과 국민에게 깨끗하게 사과했어야 했다. 마치 밀리면 끝장이라도 날듯, 주저하고 주춤거리는 사이 진상은 뒷전이고 새로운 논쟁과 의혹만 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세상에 슬프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죽음마다 의미가 똑 같을 수 없다. 천수(天壽를 누리고 행복하게 살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건 누구나가 바라는 소망이다. 하지만 내가 아닌 남을 위해, 나라를 위해 희생한 죽음은 너무나 고결하다. 이번 링스헬기 조종사 같은 군인들이나 경찰·소방관, 공무원이 직무를 수행하다 목숨을 잃거나,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남을 위해 생을 바친 의사자(義死者)의 죽음은 그래서 더욱 애통하다. 이런 죽음을 우리가 진심으로 기리지 않으면 이 나라는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

불황인데도 세금은 희한하게 잘 걷힌다는 소식이다. 국세청이 올 7월까지 거둔 세금이 150조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0조 1천억원을 더 거뒀다고 한다. 기업들이 허리띠를 졸라매 가며 비용을 절감하고, 각종 비과세·감면 혜택을 줄인 것이 세수 증대를 가져왔다. 뒷맛이 개운치 않지만, 일단 나라 살림에 보탬이 되는 일이니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다만, 일각에서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에게까지 강도 높은 세무조사 잣대를 들이대 세금을 쥐어짜 낸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세무조사를 줄였다고 하지만, 전체 추징액이 되레 늘어난 것을 보면 세무조사 강도를 짐작하고 남는다. 세금 추징에 불복해 심판을 청구한 건수도 2013년 5035건에서 지난해 5889건으로 오히려 증가했다. 이러니 정부나 세무당국의 변명이 군색하게 들린다.

특히, 지난해 세금을 잘못 거뒀다가 납세자들에게 되돌려준 세금이 전년보다 82% 늘어난 2조4989억원이나 된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세무당국은 세금을 잘못 걷었다가 돌려주면 그만일지 모르지만 당하는 기업과 국민은 심각한 고통과 분노를 느낀다.

정부는 최근 조선불황으로 힘든 거제시민들에게 콜레라 발표로 엄청난 고통을 안겨 주었다. 어민들 대부분은 생업을 포기했고 거의 모든 횟집이 문을 닫았다. 그래놓고도 아무런 대책도 없다가 엊그제 ‘콜레라가 종료됐다’며 슬그머니 발을 뺐다. 그 사이 수많은 영세사업자들은 피눈물을 짜내가며 세금을 꼬박꼬박 납부했다. 이렇게 받아 챙기니 세금이 많이 걷힐 수밖에.

국민이 세금 때문에 고통을 받아서는 안 된다. 백성이 조세에 불만을 갖거나 저항하게 될때 어떤 결과를 몰고왔는지 지난 역사가 말해 주고 있다. 불황속에서도 늘어난 세수(稅收) ! 그 뒤에는 고단한 국민들의 땀과 눈물이 녹아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KBS 뉴스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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