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권민호 거제시장이 19일 열린시장실을 방문한 고현초교 어린이들과 인터뷰하고 있다>

제19대 대선을 보름 앞두고 선거판이 한창 달아오르는 와중에 거제 지역정가 한켠에서는 때 아닌 ‘신경전’이 벌어져 시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발단은 지난 18일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권민호 시장에서 비롯됐다. 재선의 권 시장은 일찍부터 3선은 포기하고 경남도지사 출마를 공언 해 왔다.

권 시장은 탈당 직후 SNS에 “오랜기간 몸담았던 당을 탈당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국민의 사랑를 받지 못하는 당에서 시장으로 시민들에게 제대로 봉사할 수 없기 때문에 상당기간 고심 끝에 결단을 내렸다”고 적었다.

권 시장은 탈당 직전 함께 손발을 맞춰 오던 자유한국당 거제당협위원장인 김한표 의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거제발전을 위해" "현재 추진중인 각종 대형사업의 원만한 마무리를 위해"서라며 결국 탈당을 결행했다. 물론, 홍준표 전 경남지사에 대한 반감도 상당부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거제당협측은 권 시장 탈당을 겉으론 애써 무시했지만 내심 큰 충격을 받고 추가 탈당을 막기 위해 초비상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반대식 시의회의장도 한때 탈당 움직임을 보였다가 김한표 의원과 독대 끝에 접는 사건(?)도 발생했다.

권 시장의 탈당은 한편으로, 권 시장 이후를 준비하는 거제시장 지망생들에게도 상당한 혼란과 충격을 안겨 줬다. 이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갑자기 복잡한 셈법에 얽혀 곤혹스런 입장이 돼 버렸다.

이런 가운데, 평소 권 시장과 사이가 시원치 않던 자유한국당 황종명 경남도의원이 권 시장을 향해 일격을 날렸다. 황 의원은 내년 지방선거에 시장 출마를 준비중인 걸로 알려져 있다.

황 의원은 지난 21일 SNS를 통해 권 시장의 탈당을 맹자의 ‘사단론’에 비유, 조목조목 빗대가며 신랄하게 비난했다. 그는 ‘자유한국당 황종명 경남도의원이 권민호 거제시장에게 보내는 글’에서 권 시장에게 “인간의 기본 도리를 전혀 찾아 볼 수 없다”고 퍼부었다.

하지만 권 시장측은 냉소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같은 체급도 아니고, 내년 시장선거를 의식한 ‘노이즈 마케팅’쯤으로 평가절하 했다. 여기에는 과거 황 의원의 시의회의장 시절 권 시장과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며 깊게 패인 감정의 골도 한 몫하고 있다.

아무튼 거제지역 보수 진영의 한축이었던 권 시장의 전격 탈당을 보는 시각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자유한국당을 주축으로 한 보수계는 ‘배신론’을, 야권에서는 ‘견제론’으로 각자 처한 입장에 따라 해석을 달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권 시장의 이번 탈당에는 대선 이후 ‘시장 3선’이나 ‘도지사’ 또는 ‘국회의원’까지 한꺼번에 겨냥한, 고도의 정치적 계산과 복선이 깔려 있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권민호 시장은 조만간 민주당 입당이 유력한 걸로 알려졌다. 하지만 약간의 걸림돌 때문에 속도를 조절하는 듯 하다. 한때 시장 선거 등에서 권 시장과 대결했던 더불어민주당 몇몇 지역 인사들이 입당에 강하게 반대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같은 움직임은 더불어민주당 중앙당과 문재인 후보의 결심 등 대세에서 밀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권 시장은 이미 중앙당 지도부와 교감을 갖고 소통해 왔고 적절한 입당 시기만 남았을 뿐이라는 것.

이와 관련, 경남지사를 지낸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국회의원(김포갑)은 23일 창원 유세장에서 권민호 시장을 언급했다. 김 의원은 기자들에게 “아직 권 시장한테 격려 전화를 못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권민호 시장이 문재인 후보와 직접 통화를 했다고 들었다. 문 후보가 거제 출신 아니냐. 거제시장이 후보와 통화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면서 “물론 통화 때문에 탈당한 것이라 보지는 않는다. 권 시장은 자유한국당이 변화하지 않으니까 탈당한 것으로 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 됐다.

한 40대 야당 지역당원은 “서로 입장이야 불편하겠지만 편협한 생각이다. 여당이 되면 자연스레 우수한 인재가 몰려들게 돼 있다. 자신이 있으면 누구라도 경쟁 상대가 돼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지 개인적인 입장만 내세워 무조건 입당을 막아서야 되겠나”라고 지적했다.

또 거제에서 오랜 야당생활을 한 원로는 “이번 대선은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권시절 선거와는 차원이 다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민심은 이제 보수에서 완전히 등을 돌렸다"며 "거제 보수 정치인들이 이런 엄청난 위력을 아직 실감하지 못해 서로 눈치만 보고 있을 뿐이다. 대선이 끝나면 너도나도 제 갈길을 찾아 이합집산을 거듭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당에서는 권 시장을 배신자니 뭐니 하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어졌다”면서 “(권 시장의) 더불어민주당 입당은 자연스럽다. 거제가 지금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느냐. 문재인 후보가 거제사람 아니냐. 거제사람이 대통령 되면 시장과 국회의원은 어느 당이 되는게 나은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또 "한국당(보수측)이 다시 정권을 잡지 않는 이상, 이제 거제에서 과거와 같은 정치구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두고 봐라, 지금은 대선 때문에 다소 잠잠한 듯 보이지만, 권 시장 탈당과 함께 이미 그 움직임은 시작됐다"고 덧붙였다.

결국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측의 강한 부정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여권 성향을 보여 왔던 거제의 정치구도 역시 오는 5월9일 대선을 기점으로 ‘대변화’의 갈림길에 설 수 밖에 없어 보인다.

정치 전문가들은 대통령 파면에서 비롯된 이번 대선의 판세가 벌써 종반으로 치닫는데도 보수 후보의 반전은 커녕, 동반 몰락 현상을 확연히 드러내는 현실을 눈 여겨 보라고 한다. 민심이 과거 정권 교체기와 같지 않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번 권민호 시장의 선택은 대선 이후 '거제 재건론'과 맞물려 지역 정치구도의 '판'을 뒤흔드는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수정>

서영천 대표기자  gjnow32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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