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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내리며[기고]강돈묵 거제대교수
편집부 | 승인 2011.05.23 09:41

   
강돈묵 거제대교수
산에 오른다.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산에 오른다. 아파트에서 나와 숲으로 들어서는 곳은 언제나 그렇듯 풀이 무성하다. 온갖 식물이 뒤엉켜 사는 모습이 한가롭다. 더러는 사람들의 이기가 바람에 날려도 평화롭다. 싱싱한 풀이 활기를 자랑하는 곁에서 시든 풀이 죽어가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연의 순환이다. 

이른 아침 산길은 풀벌레들의 향연장이다. 제 나름대로 목청을 돋워 노래한다. 영롱하기 그지없는 그 소리는 흉내도 어렵다. 벌레마다 개성을 가지고 부르는 노래. 우리는 얼마나 내 개성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아침 산길은 제 멋대로 부르는 벌레들의 소리 터널이다. 하늘의 나무 가지 터널은 벌레소리로 더욱 고상하다. 팔 벌려 심호흡을 하고 나니, 머리가 상쾌하다.

숲정이를 조금 오르니, 나무들의 기지개 켜는 소리가 들린다. 눈 비비고 하늘로 손 뻗어 일어나는 소리가 실바람에 실려 온다. 나무들의 이완된 뼈마디가 제 자리를 찾기 위해 푸드득 소리 낸다. 기지개를 켜다 비틀거리는 나무를 이웃의 동료가 받쳐준다. 나무는 서로 어깨를 비비며 살아간다. 그래서 재밌다. 나무들끼리만 사는 것도 아니다. 떡갈나무의 겨드랑이엔 동고비가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운다. 소나무의 허벅다리로 덩굴식물이 기어올라도 간지러움을 참아가며 같이 살 궁리를 한다. 도토리나무는 다람쥐에게 맛난 과일을 넘겨준다.

천천히 산에 오른다. 바쁠 것도 없고, 앞설 욕심도 없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이면 ‘반갑습니다.’ 인사하고, 지나치는 사람이면 ‘수고하십니다.’ 격려한다. 모두가 너그러운 표정이다. 천천히 오르는 귓전으로 골짜기의 물소리는 잦아들고, 골바람은 이마를 씻어 준다.

한 시간 정도 올라가다 보면 정상에 오른 사람의 ‘야호’소리가 들린다. 무심결에 응답한다. 야호. 신바람이 났는지 그 소리는 다시 내려온다. 또 다시 받아 올려 보낸다. 별 욕심 없이 오르던 사람들의 분위기가 뜨기 시작한다. 얼굴색이 상기되기 시작한다. 정상에 가까울수록 사람들의 모습에 변화가 일어난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사람, 바윗돌에 쭈그리고 앉아버린 사람, 그런 사람들을 보란 듯이 스쳐 지나가는 사람. 다른 사람보다 먼저 정상에 오르겠다는 욕심이 이는지 서두른다. 그들의 숨소리가 크게 와 닿는다. 옆 사람이 서두르면 자신의 마음이 조급한지 걸음이 빨라진다. 

그러나 나는 한번도 정상에 오른 적이 없다. 언제든지 산의 팔부능선에서 내려온다. 이곳에는 운동기구도 있어 잠시 몸을 풀고 내려온다. 팔굽혀펴기, 나무에 거꾸로 매달리기, 윗몸 일으키기도 한다. 굵은 나무에 등을 기대고 있다 보면 내려오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유난하다. 지축이라도 흔들듯하다. 그들의 팔은 필요 이상으로 너울거린다. 거드름이 있다.

정상을 정복했다는 만용일 수도 있다. 또는 정상에 오른 후에 오는 흐트러진 몸가짐일 수도 있다. 그들의 모습을 외면하고 나무 의자에 눕는다. 이쯤에서 정상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내려가는 것이 훨씬 즐거우리란 생각에 빠진다. 언제든지 그리운 미지의 세계를 남겨두고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나는 좋다. 나무 의자에 드러누워 헉헉거리며 내려오는 사람의 허기진 모습도 바라보고, 만용도 지켜보면서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도 소득이다. 역기를 들어올리며 드러누워 올려다 본 정상은 바위뿐이다. 바람은 보이지 않아도 섬뜩한 느낌이 든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보이지 않고, 가파른 바위만이 존재하는 정상. 그곳에 무슨 사랑이 있고 인간미가 있을까. 방자한 사람의 마음이 모든 것을 쓸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분명 이곳은 하느님의 사랑이 미치지 않는 곳이리라.

사람들은 왜 정상에 오르려 할까. 하느님에게 가까이 가기 위함일까. 하느님의 축복을 더 많이 받고자 하는 바람일까. 정상에 가까이 갈수록 풀 한 포기 없는 것을 보면 그곳에는 분명 하느님이 없으신 것 같다. 하느님은 보잘 것 없고 연약한 것을 사랑하기에 품안에 작은 미물 안기를 좋아하시리. 그래서 밑으로 내려갈수록 온갖 미물이 도란거리며 사는 것이 아닐까. 결코 우뚝 솟아 혼자 뽐내는 자보다 서로 살 비비며 살아가는 잡초를 사랑하는 것이리. 어쩌면 하느님은 낮은 골짜기에 계신지도 모른다. 비가 올 때마다 골짜기에 피어오르는 비안개는 하느님의 옷깃일 것이고…

골짜기로 내려선다. 작은 새의 울음소리가 오늘따라 감미롭다. 도르르 구를 것만 같은 새소리에 골짜기 물이 질세라 화답한다. 이 골 저 골에서 이따금씩 다람쥐가 끼어든다. 그러면 골바람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시원한 기운을 선사한다. 골짜기 안은 많은 미물들이 도란거리며 정을 나누는 소리가 한창이다. 

밑으로 내려오면 올수록 몸이 가볍고 상쾌한 것은 아직도 나에겐 미지의 세계가 있어 살아갈 의미가 남은 것이요, 하느님의 사랑이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서둘러 정상에 오르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는 자부도 한몫 했으리라.   <“현대수필” 2002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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