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태, 박기련, 김동성 등 대표고발인 3명이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에서 고발장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거제지역 일부 시민사회노동단체가 지난 26일 권민호 전 시장과 정몽규 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 회장 등을 '제3자 뇌물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대표 고발인은 원종태 통영거제환경연합 공동의장, 박기련 (사)좋은벗 대표, 김동성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 등 3명이다.

2013년 7월 거제시민단체들이 권민호 당시 거제시장과 현산 정 모 대표 등을 '제3자 뇌물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으나 '무혐의' 처분을 받은 데 이어 두번째다.

이번 2차 고발에는 권 전 시장과 현산 정 회장 뿐만 아니라, 당시 사건 담당이었던 구승모 검사(현 안양지검 부장검사)를 특수직무유기 혐의로 피고발인 명단에 추가했다.

구 검사에 대해서는 '제3자 뇌물죄의 증거가 명백한데도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고 사건을 덮었다'는 취지로 피고발인에 포함시켰다.

앞서 이들은 지난 25일 보도자료를 통해 “현산 70억 뇌물사건은 권력과 돈으로 사회정의를 훼손한 대표적인 적폐”라며 “공소시효가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피고발인과 죄명을 추가해 2차 고발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앞으로 거제지역 정당, 시민·사회·노동단체와 시민들의 개별 서명을 받아 고발단에 추가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당시 사건의 경위와 전개과정, 처리결과, 전망 등을 간략하게 정리했다.

▲현대산업개발 측은 2013년 5월 22일 거제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05년 8월부터 2008년 4월까지 거제시가 시행한 장승포․옥포지구 하수관거 정비사업 공사 과정에서 관리감독 소홀로 가설시설물을 설치하지 않고 공사를 진행했음에도 공사대금을 수령한 불미스런 일이 있었다"고 머리를 숙였다. 사진은 당시 거제시청 브리핑룸에서 머리 숙여 사과하는 현대산업개발 임원(정 모 상무)의 모습.

◇사건 경위
5년여 전인 2013년 5월 거제지역에서는 현산에 대한 입찰참가제한 기간을 거제시가 5개월에서 1개월로 감경해 준 경위를 놓고 큰 논란이 일었다.

당시 현산은 2005년 8월 장승포, 능포, 아주, 옥포지역의 오수관로 매설공사(33.4㎞)를 162억4300만원에 수주, 공사 과정에서 설계도에 명시된 가시설물(H파일, 시트파일) 6.2㎞ 구간에 800m만 제대로 시공하고, 나머지 5400m는 사진으로 시공한 것처럼 속여 거제시로부터 44억7286만원을 가로 챈 비리 전력이 있었다.

내부자의 국가청렴위원회 고발 등으로 드러난 이 사건은 경남경찰청 광역수사대와 검찰의 수사를 거치면서 현산 현장소장을 비롯해 하도급업체 직원 등 9명이 구속되고 6명이 불구속 돼 전원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에 거제시는 2008년 12월 '부당이득금반환청구'소송을 냈고 2009년 9월10일 거제시 계약심의위원회가 현산에 대해 '부정당업자 입찰자격제한' 5개월을 의결 통보했다.

현산은 이 같은 거제시의 조치가 부당하다며 즉각 '행정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부정당업자 입찰참가자격 처분취소' 소송을 냈다. 당시 현산은 정부가 발주한 공사에 참여할수 없다는 등 5개월간 입찰참가 제한으로 입는 피해액이 1조 2천억 원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입찰참가 제한' 신청은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져 '집행정지'가 결정됐고 이런 소송과는 무관하게 현산의 관급공사 수주는 전국에서 계속 됐다.

2010년 5월6일 1심에선 거제시가 패소했으나 항소심 법원은 거제시의 손을 들어줬다. 현산측은 '원처분이 과중하다'며 즉시 상고했지만, 항소심 판결이 뒤집힐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선고기일 연기' 신청을 냈다. 그러면서 거제시에도 '입찰참가 제한조치'의 재심의를 신청했다.

결국 거제시는 '민원재심의 자문위원회'라는 임시 기구를 만들어 하수관거공사 비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현산에 대해 관급공사 입찰참가 제한 5개월을 1개월로 감경처분 했다.

◇전개 과정
이같은 감경처분 이면에는 현산측에서 거제시에 대한 사후 70억원 상당의 사회공헌약속이 결정적 이었다. 

이를 두고 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해 법조계 일각에서는 현산이 3년 반 동안의 법정소송에서도 얻지 못했던 경감처분을 70억원 사회공헌을 거제시에 대가로 제공해주기로 약속해 1조원대가 넘는 공사수주 손실방지의 뜻을 이룬 '제3자 뇌물죄'가 성립한다며 반발했다.

의결과정의 부적법성도 거론했다. 거제시가 '민원 재심의 자문위원회'라는 1회성 임시 기구를 만들어 현산의 경감신청서를 민원실을 거치지 않고 회계과에서 직접 접수해 처리하는 꼼수를 부렸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계약심의위원회 8일 만에 4차례 회의를 거쳐 입찰제한 기간을 전격적으로 감경해주었으며, 그 대가로 현산이 제시한 70억 상당 사회공헌약속이 담긴 의향서를 공증했다고 주장했다.

거제시는 사전에 이같은 과정의 문제성과 논란을 염려한 듯, 현산이 경감처분의 대가로 제시한 70억 상당 사회공헌약속이 담긴 의향서 공증본(공증의향서)을 접수하지 않은 비상식적인 태도를 보여 더 큰 의혹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자 이행규 시의원은 '거제시의 정의가 죽었다"며 시의회 앞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상주를 자처하며 1인 상복 시위에 나섰다. 야권과 시민단체협의회는 '거제시 장례위원회'를 구성하고 격렬하게 반발하면서 연일 거리 촛불행진을 벌이는 한편, 감사원에 공익감사 청구와 함께 검찰에도 고발장을 제출했다.

지역정가의 여론도 분분했다. 거제시의 감경처분을 지지하는 쪽은 "시장이 개인적으로 돈 한푼 받지 않았고 공익을 위한 것인데 무슨 문제가 되느냐"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반대측은 강경했다. 형법 제130조(제3자뇌물공여죄)는 "공무원이 제3자에게 뇌물을 공여하게 하거나 이를 요구, 약속함으로써 성립되며  제3자가 뇌물을 수수하였을 것을 요하지도 않고, 또한 제3자가 그 정을 알았는가도 문제되지 않는다. 공무원이 직무에 관해 부정(당)한 청탁을 받았다면 이 죄의 성립에는 영향이 없다"는 기본적 주장을 견지했다.

'부정(당)한 청탁'이 바로 70억 공익환원을 전제로 한 현산의 입찰참가제한 기간 감경 요청이며, 그 이후 법적 근거도 없이 '민원재심의 위원회' 니 '자문회의'니 하는 일련의 수순을 통해 감경처분 해 준 사실로 범죄는 이미 성립했다고 해석했다.

다만, 거제시가 무슨 이유에선지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방법을 동원해 결과적으로 현산에게만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 준 논란과 의혹을 자초했다는 지적에는 양측 모두 일치된 견해를 보였다.

결국 감사원은 특별감사반을 보내 시가 왜 민원서류(경감처분신청서) 접수 전 입찰제한 처분을 돈으로 대체하는 과징금 처분으로 바꾸고자 애를 썼는지, 현산의 경감처분신청서 접수(4월15일) 5일전 거제시가 현산으로부터 이미 예비신청서를 받은 이유등에 대해 거제 현지에서 감사를 벌였다.

또 거제시의회도 '현산조사특위'를 구성해 집행부 관계공무원과 법조인 등 관계자를 상대로 감사에 나서는 등 지역사회 가장 큰 이슈로 부상했다.

2013년 6월 20일 거제시민단체연대협의회 회원들이 현산측의 부당성을 시민에게 알리고 거제시의 사과를 촉구하기 위해 길거리 촛불행진을 벌이고 있다. 앞에서 두번째 변광용 현 거제시장 당선자의 모습도 보인다>

◇처리 결과
하지만 감사원은 '예비감사 결과 감사대상으로 부적정하다'는 이유로 '기각' 처리했다. 또 서울 서부지방검찰청 형사5부(담당검사 구승모)도 피고발인 전원에 대해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이후 검찰 항고 역시 기각됐다.

이에 대해 지역 법조계 진성진 변호사는 지난해 다섯 차례에 걸친 언론 연속 기고를 통해 이 문제를 체계적이고 깊이 있게 되짚어 시민들의 많은 관심을 이끌었다.

진 변호사는 “현산 문제는 부정과 불법, 무능과 무지가 켜켜이 쌓인 적폐”라며 “악덕기업과 꼼수 시장, 무능 검찰의 합작품에다 정의롭지 못한 시민단체 대표가 일조했다”고 이 사건의 성격을 규정했다.

또 “대놓고 뇌물을 주고 받겠다는 상상을 뛰어넘는 대담함과 새로운 유형의 범죄(제3자뇌물)에 대한 치밀한 법리검토 끝에 ‘약속을 미끼로 실리를 취해놓고 약속한 것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노회한 전략이 배어있다”면서 “시민단체가 뇌물죄에 해당한다며 고발했음에도 검찰은 증거가 명백한 사안을 무혐의 처분함으로써 전례 없는 불법거래에 부당하게 면죄부를 줬다”고 지적했다.

◇전망
이번에 재고발을 주도한 이들은 "현산의 부정청탁을 권민호 시장이 권한을 남용해 들어준 명백한 범죄"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 "검찰은 증거가 명백한 이 사건을 부당하게 무혐의 처분함으로써 현산과 권 시장에게 면죄부를 줬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어 "아직 공소시효가 살아있는 이 사건은 이제라도 무혐의 처분을 번복해 제3자뇌물죄로 기소해야 한다. 나아가 그 이면에 있는 비리커넥션도 수사해야 한다. 그것이 적폐청산의 올바른 길"이라고 말했다.

이번 고발로 이미 항고까지 포함해 두번의 수사를 거쳐 '무혐의'라는 결론을 내린 검찰은 부담을 다시 떠안게 됐다. 

그러나 정권이 바꿨다고 해서 새로운 범죄 단서가 나오지 않는 한, 검찰이 당시 법리적 판단을 완전히 뒤집을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고 보는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한편으로는 이번 재고발을 주도한 일부 인사들이 오랜기간 대척점에 서 왔던 권 전 시장을 향해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구원(舊怨)과 감정 섞인 정치적 견제구를 날렸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를 두고 한 지역 정치권 유력인사는 "지방권력이 교체됐다고 하나 자세히 보면 거제는 정말 웃기는 곳"이라며 "적폐로 지목된 일부 세력이 적폐청산을 주도하는 세력과 손을 맞잡은 꼴"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게 바로 지난 지방선거"라며 "그들이 앞으로 어떤 역할과 행동을 하는지 눈여겨 보라. 그러면 누가 더 나쁜 적폐인지 분명히 구분이 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결국 이번 재고발 사건은 그 결과가 나오기전에는 어떠한 예단(豫斷)도 부질없어 보인다.

다만, 한가지 명백한 건 막대한 이익을 얻은 현산측이 거제시와 약속한 '70억 사회공헌'을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이야말로 당시 거제시의 조치에 대해 시민들이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대목이기도 하다.<수정>

서영천 대표기자  gjnow3220@hanmail.net

<저작권자 © 정의로운 신문 거제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