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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열] 일곱 손가락 사랑전 거제교육장 이승열
거제저널 | 승인 2019.08.19 08:59

어머니는 1933년 6월 23일에 태어나서 2019년 7월 25일에 떠나셨다.

86년 33일을 사시다 간 셈인데 마지막 3년 정도는 삶이라기고 하기에는 너무 메마르고 피폐해서 83년 정도를 살고 가셨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생몰 연도는 유골을 모신 유골탑의 작은 비석에 아버지의 생몰 연도와 함께 새겼다. 산소 가는 길이 험해서 자식들의 발길이 뜸해지는 아버지를 이참에 이장하여 합장해 드렸다.

아버지는 거의 40년 만에 어머니를 만나셨을 건데, 이 사태에 대해서 동생은 너무 늙어버린 어머니를 못 알아보시면 어떡하냐며 걱정을 했지만 형은 ‘걱정 마라, 귀신처럼 알아보실 거다’라고 답했다.

우리 후손들은 욕심을 부려 외손자까지 이름을 새겨넣기를 고집한 탓에 얼핏 보면 비석은 상형문자로 빽빽이 차 있는 듯하다.

그리움을 담고자 하는 의도이니 별 상관은 없을 것이다.

어머니나 아버지에 대한 나의 그리움은 순전히 나만의 개별적인 슬픔이기에 글로써 동네방네에 떠들고 다닐 일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부모를 잃는 것은 애통하고 허망한 것이라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나의 아픔을 내 식대로 말하는 것은 무례하고 경망스러운 일이다.

단지 망인이 되신 어머니의 가르침이 당대뿐만 아니라 후대에도 소용이 있을 듯해 용기를 내어 글을 쓴다.

아마도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1 때쯤으로 기억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당시의 어머니들은 한가할 때, 친구 집에 몰려다니시며 푼돈 화투도 치고, 군것질거리도 만들어 드시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남편 흉도 보며 화를 삭였다.

남편과 자식들의 뒷바라지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희생적이었으니 쌓였던 화병이 오죽했겠나 싶다.

집마다 자식들이 보통 다섯 명 이상씩 바글대던 시절이었음을 상기하며 글을 읽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어머니의 친구분이 나에게 물었다.

- 엄마가 너희 7형제 중에서 누구를 가장 좋아한다고 생각하니?

나는 망설이지 않고 “나요”라고 대답했었다.

훗날, 그 대화를 상기하며 다시 깊이 생각해 본 때는 내가 어른이 되어 중학교 교사가 되고 나서도 몇 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우리 형제는 5남 2녀이다. 당시의 양육 방식은 딸보다는 아들에게 더 투자하고 편애하며 집안의 가운을 아들에게 기대곤 하던 시절이었지만 어머니는 그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지만 일곱 자식 중에서 더 손길과 눈길이 가는 이는 있었을 것이다.

큰형은 맏이라는 존재만으로도 어머니의 편애 대상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6.25둥이인 형을 품에 안고 동란의 피난길을 거쳐 왔으니 그 애착이 지극할 것은 당연했을 것이고, 작은형은 일찍 서울로 유학을 떠난 큰형의 빈자리를 채운 큰 기둥으로서, 동생들은 전부 명문대에 합격할 정도로 지역에서 소문난 수재였기에 당연히 어머니의 자랑거리였겠지만. 셋째인 나는 중간에 끼여 말썽만 부리는 철부지 사내아이에 불과했다.

동네 아이들과 멀고 가까운 낯선 곳을 싸돌아다니며 온갖 장난 거리를 찾아다녔고, 엄중하고 치열한 중학교와 고교입시 시대에 공부보다는 어른들 틈에 끼여 축구시합장을 찾아다닌다든지, 등산이나 캠핑 다니는데 더 열을 내며 지냈다. 고교 시절, 시험 기간에 동네축구시합장에 있던 나를 잡으려 형과 어머니가 출동한 적도 있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보면 내가 형제 중에서 어머니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을 리가 없건만 어째서 그 나이에는 망설이지 않고 그렇게 대답했을까를 깊이 생각했다.

그랬다. 답은 간단했다.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다른 형제들에게 묻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원래 그런 모양이었다.

자식들에게 골고루 나눠준 사랑은 그것을 받는 자식들에게는 똑같이 공평한 만족을 주는 정도를 넘어 온통 통째로 다 받는 행복을 주는 모양이다.

아주 훗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알았지만, 며느리들도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다른 집안의 어머니들도 똑같은지, 아버지의 사랑도 그런 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하여튼 나는 그런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성장하면서 사랑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알며 지냈다.

나는 교사 시절에,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며 그 방식대로 학생들에게 실천해 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재주와 열정이 부족해서 결국 이루지 못하고 미적거리다가 은퇴했다.

자식 사랑과 제자 사랑의 생태적 근원이 달라서 그런 것이라고 위안을 하기도 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아닐 것이다. 사랑은 공평하고 공정하게 주되, 바라지 않는 이치는 같을 것이다.

후배 교사들이여.

아이들에게 물어보라,

- 우리 반 아이들 중에서 선생님이 가장 신뢰하고 기대하며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만일 절반 이상의 학생이 자신이라고 답하면 성공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처럼 실패한 것이니 더 정진하시라.

이 제안은 자식을 키우는 세상의 모든 젊은 부모들에게도 유효하다.

어머니로부터 태산같이 받았지만 자식으로서 티끌만큼도 갚지 못한 채 보내 드린 내가 이 말을 하기에는 민망하지만, 적어도 어머니의 자식 사랑과 스승의 제자 사랑에는 이런 준거 정도는 녹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외람된 글을 쓴다.

나는 너무 늙어서 깨달았지만 젊은 후배 교사들은 마땅히 이 어머니의 사랑을 알아야 하며 또 실천해야 한다.

내 어머니의 생애와 그리움, 당대의 시대적 아픔은 따로 개별적인 공간에 모아 쓸 예정이지만, 사십구재의 삼재를 겨우 지낸 시점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끄집어내 다급한 글을 쓰는 불효를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단, 젊었으나 늙으나 선생티를 벗어나지 못하고, 더구나 퇴직한 지 반년이 지나도 교장 선생님의 훈화처럼 잔소리한다는 타박 정도는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거제저널  gjnow32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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