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날, 즉 ‘복달임(midsummer)’이 시작된다는 초복이 지난다. 유난히 짧았던 장마가 지나가니,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는 본격적인 복더위가 시작된 것이다.

복(伏)이란 서늘한 기운인 금기(金氣, cool energy)가 뜨거운 화기(火氣)를 무서워해 고개도 못 들고 엎드려 있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즉 복(伏)은 개(犬)가 사람(人) 옆에 엎드려 있는 형상이고 숨어있는 형상이다.

하지부터 세 번째 경일(庚日)이 초복이고 네 번째 경일이 중복이며, 입추 이후 첫 번째 경일이 말복이라고 한다.

“어지간하다 한 점 바람도 없는/이 적막 속을 코 하나 달랑 밀어내 놓고/복날을 넘기는데 매미 울음이 하늘 끝을 돌아나가면서/더위를 감아올렸다가 풀어놓았다가 하긴 하는데/복더위는 복더위다/가을의 쇠 기운이 세 번 굴복한다는 뜻이라 석(三)에 엎드릴 복(伏)자를 쓴다.”

시인 박주일(1925- )의 ‘삼복은 여름 불기운에 복더위’라는 시를 들출 것도 없이 소나기라도 내리면 반갑다고 인사라도 하고 싶을 만큼 더운, 한 올의 실오라기마저 무겁게 느껴지는 계절인 까닭이다.

이 더위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복날 벼 크는 소리에 개가 놀라 짖는다’는 속담처럼 이날은 바로 ‘벼(학명은 Oryza sativa L.)’가 한 살씩 나이를 먹는 날이란 점이다.

즉 복날마다 벼줄기에는 마디가 한 개씩 생기고 생긴 마디가 세 개가 되어야 비로소 이삭(ear)이 패기 때문에 벼 마디가 생기는 것을 나이를 먹는다고 표현한 말이다.

그러나 올 초복 날은 며칠째 계속되고 있는 초가을 같은 저온현상으로 첫 마디가 생길지 걱정이다. 게다가 앞으로 이어지는 삼복더위는 서민들에게 피서걱정을 빼놓을 수 없게 한다.

이런 표현도 있다. “푸른 기운 뚝뚝 떨어지니 나무숲이 젖어 있고/물소리는 요란한데 봉우리들은 날아갈 것만 같구나/그늘진 시내 골짜기에 한가롭게 말을 매어두고/펄렁이는 밭 아래 옷을 벗어 걸었네/우두커니 앉아 있는 그것으로도 족하나니.”

이것은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세검정을 거니며’라는 시의 일부이다. 태고의 이끼가 숨 쉬는 바위, 흐르는 물소리가 우렁차고 운치있는 풍광 아래에서 피서를 즐겼을 선조들의 지혜가 감춰져 있는 것 같다.

이렇듯 태양이 이글거리는 시즌이 되면 누구나 각자의 방법으로 피서를 간다. ‘바캉스의 천국’이라는 프랑스에선 최소 5주간(평일 기준으로 25일)의 의무 유급휴가제도를 가고, 독일에서도 5~6주의 휴가를 떠난다고 한다.

바캉스(vacances)는 라틴어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해방되는 것”이라는 뜻으로 바카티오(vacatio)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본래 학생, 교사나 법관 등에게 주어진 긴 휴가였다. 영어로 ‘방학, 휴가’를 가리키는 vacation도 같은 어원이다. 휴가를 가리키는 영어 leave와 스페인어 permiso는 ‘허가’란 뜻도 있어 어감이 다르다.

그런데 한자말의 휴식(休息)은 나무에 기대어 나와 이야기하다는 뜻이다. 이때 ‘휴(休)’는 풀어보면 사람(人)과 나무(木)가 함께 있다는 뜻으로, 사람이 나무에 기댄 형상이어서 신기하고 흥미롭다. ‘휴‘는 쉰다, 즉 나무 아래 앉거나 누워 쉬는 것을 말한다.

식(息)은 숨 쉰다는 뜻이다. 역시 한자를 풀어보면 나(自)의 마음(心)이다. ‘숨’은 곧 나의 마음이다. 숨을 고르며 마음까지 고르는 휴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많은 것을 하는 것이다.

복날이면 우리 조상들은 시원한 개울가에 수박이랑 막걸리를 띄워 놓고 솥을 걸어 몸보신 음식을 끓였다. 불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쇠 기운이 강한 개장국을 끓여 먹었고, 이를 복달임‘이라 했다. 복달임은 허허해진 더위를 물리치기 위한 보양식이었다. 농가월령가에는 “황구의 고기가 사람을 보 한다”고 해 개고기가 보신탕의 대명사가 됐다고 전해져 온다.

그러나 늑대의 시간을 지나 가축이 되고 가축의 시간을 지나 애완견이 되고 반려견이 된 개(犬)들이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때에, 그들을 먹어도 될 더 이상의 면죄부는 없다고 보여 진다.

‘복(伏)‘은 가을의 서늘한 기운을 여름의 더위가 잡아서 굴복시킨다는 뜻도 있다고 한다. 코로나19가 창궐하는 2021년 여름, 한자 '休(휴)'자의 모습처럼 나무에 기대서서 며칠만이라도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는 절제된 피서를 즐기면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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