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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 사망.. 48살 대통령서 90살에 끝난 '권력무상'
서영천 대표기자 | 승인 2021.11.23 15:04
<왼쪽부터 : 1979년 12.12 군사반란 당시 48세의 전두환 보안사령관,  제11대 대통령 취임 당시 49세,  1987년 1월12일 국정연설 모습 당시 56세, 2014년 자택에서 당시 83세, 지난 8월9일 당시 90세로 항소심 재판 출석 모습>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사망했다. 향년 90세.

그는 자택 화장실에서 갑자기 쓰러져 오전 8시55분께 경찰에 신고됐다. 경찰은 이날 오전 9시12분께 사망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치매와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 확진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었다. 최근 건강 상태가 악화돼 서울 서대문구 연대세브란스병원에서 통원 치료를 받아왔다. 빈소도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될 전망이다.

국가보훈처는 이날 "전두환 전 대통령은 내란죄 등의 실형을 받았기에 국립묘지법상 국립묘지 안장 배제 대상"이라고 밝혔다.

1931년 1월18일 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 빈농의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5살 때 대구로 옮겨 대구공고를 거쳐 육군사관학교 11기를 졸업했다.

1961년 서울대 학군단 교관 시절 5·16 쿠데타가 일어나자 육사 생도를 동원해 군부 지지 시가행진을 벌였다. 이 일로 신임을 얻어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의 비서관이 됐다.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집권하자 노태우, 정호용 등 육사 동기들을 주축으로 육군 사조직인 '하나회'를 결성해 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출세가 보장된 핵심 보직인 청와대경호실 차장보(준장)를 거쳐 1979년 3월 국군보안사령관(소장)에 임명됐다.

그 해 10.26 사건이 터지자 계엄법에 따라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아 육참총장 정승화, 대통령 비서실장 김계원 등을 체포하는 등 하나회를 중심으로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사실상 군과 국정을 장악하고 중장으로 스스로 진급해 제10대 중앙정보부장까지 겸직했다.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5.17 민주화운동을 유혈 참극으로 강제 진압 후, 국가보위입법회의 상임위원장을 맡아 최규하 당시 대통령을 사임시키고 육군대장으로 예편했다. 이어 이른바 체육관 선거로 불리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치러진 간접선거를 통해 제11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후 7년 단임 대통령제를 골자로 하는 새 헌법을 통과시킨 후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제12대 대통령 선거(간접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며 제5공화국을 출범시켰다.

그러나 임기 말이던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시위가 거세지자, 이를 불식시키고자 4.13 호헌조치를 발표했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아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결국 위기를 크게 느낀 당시 여당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가 6.29 선언을 발표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발표하자 국민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그는 대통령 임기를 모두 마치고 퇴임했다.

퇴임 후에는 권력을 누린만큼 삶도 굴곡졌다. 1995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에 의해 노태우와 함께 군사반란 등 혐의로 검찰수사를 거쳐 구속기소 됐다. 이후 반란수괴죄 및 살인, 뇌물수수 등으로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 나선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 등 유력후보가 모두 전두환과 노태우 등에 대한 사면을 공약을 내걸어 결국 대선이 끝난 후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결단으로 사면됐다.

그는 퇴임 후 사망할때까지 지낸 기간이 33년이다. 이는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중 최장 기록에 해당된다. 지난해까지는 나이에 비해 상당히 건강했으나, 2021년을 기점으로 건강이 크게 악화되면서 급격히 수척해졌다. 2014년 치매 판정에 이어, 최근 악성 혈액암인 다발성 골수종 확진 판정을 받아 숨진 이날까지 투병해왔다.

이와 함께, 그는 생전에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공수부대 발포명령을 지휘한 것에 대해 사실상 부인했다. 그는 또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가리켜 "신부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를 끝까지 모셨던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앞에서 ‘5·18피해자 유족에게 따로 남긴 말은 없느냐’는 질문에 "어떤 부대에 어떻게 지휘했는지 사실이냐 아니냐를 먼저 따져야지 무조건 사죄하라는 것은 잘못됐다"고 밝혔다.

이어 "5·18 민주화 운동 당시 많은 희생자 나왔고 희생자 가운데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도 많다"며 "전두환씨가 대통령이 되고 상처 치유하기 위한 여러 조치가 충분치 못했기에 그 점에 유감스럽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지, 구체적으로 발포명령을 했기에 사죄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마지막 유언은 회고록에 담겨 있다"며 "북녘땅이 바라다보이는 전방의 어느 고지에 백골로라도 남아 있으면 기어이 통일의 그날을 맞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덧붙였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이'의 경우 전직 대통령 예우 대상에서 제외한다. 그는 내란죄 등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에 사회 일각에서는 예우는 물론, '전 대통령'으로 부르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6일 12·12 군사반란 동지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망한 데 이어 한 달도 되지 않아 그도 결국 세상을 떠났다. 이로써 20세기에 집권했던 대한민국 대통령은 모두 역사속으로 사라져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이치를 깨우쳐 주고 있다.

한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전 전 대통령의 사망을 두고 정반대 입장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 후보는 "전두환씨는 명백하게 확인된 것처럼 내란 학살 사건 주범"이라며 "이 중대범죄 행위를 인정하지도 않았다. 참으로 아쉽게 생각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조문 계획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후보는 이어 "우선 전두환씨라고 하는 것이 맞겠죠. 대통령 예우에서 박탈당했으니까"라며 "아직도 여전히 미완 상태인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의 진상이 드러날 수 있도록, 당시 사건 관련자들의 양심선언을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윤 후보는 이날 전 전 대통령 사망 소식에 "(조문은) 준비일정을 보고 전직 대통령이니 가야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 관련 별다른 사과도 하지 않고 세상을 떴다'는 질문에, 윤 후보는 "돌아가셨고 상중이니까 정치적인 얘기를 그분하고 관련 지어 얘기하는 건 시의적절하지 않은 거 같다"고 즉답을 피했다.

앞서 윤 후보는 지난달 19일 "전 전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를 잘했다는 분들도 있다..호남에도.."라고 그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이로 인해 수차례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해명 과정에서 개 사과 논란까지 불거져 큰 비판을 받았으며, 광주를 직접 찾아가서 사과하는 등 곤욕을 치러기도 했다.

<전두환과 12.12 군사반란 주역들이 거사 이틀 후 찍은 사진. 당시 이들의 나이가 모두 40대 초반에서 50대 초반이었다>

서영천 대표기자  gjnow32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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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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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의 기억 2021-11-24 09:17:59

    살인마가 죽었는데 애도는 무신 애도! 조중동 보수 꼴통 꼰대들은 섭섭하겠지. 지 할배가 죽었으니..시퍼렇던 목숨을 총칼로 빼앗아 일개 육군소장이 1년만에 대통령이 된..그런 치욕의 역사 앞에 부끄러움도 없는 인간들이 더 큰 문제지..살인마야 지옥 불구덩이에 떨어져 먼저 가 있는 광중ㅢ 영령들에게 불의 심판을 받아라! 에라이 인간아~천년 만년 살줄 알았제!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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