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대 강돈묵교수

알프스의 산촌은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버스를 타고 달리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주택이 괴기하고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아무리 농촌이라 해도 몇 집이 모여, 사람과 부대끼는 맛이 있어야 할 터인데, 벼랑의 끄트머리에 덩그렇게 한 채 지어 놓고 외따로 산다. 도회지에서 살다가 몹쓸 병에 걸려 쫓겨왔다던가, 그렇지 않으면 무슨 죄라도 지어 몰래 숨어들어 사는 듯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들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조상 대대로 이곳에서 살아오고 있다. 중세국가 시절 외침을 피해 이토록 요새지를 찾아 집을 짓고 조상대대로 그들의 삶의 터전을 일구어 왔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산 중턱에 집이 있기도 하고, 심지어는 고속도로 터널 위에도 그림 같은 집 한 채가 거짓말같이 서있다. 산비탈을 개간해 조성한 과수원에서는 포도, 사과, 자두가 익어 간다. 단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닌 수백 년의 역사를 두고 조상 대대로 일구어 놓은 삶의 터전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산 중턱에 있는 과수원집은 물론이고, 이곳저곳 농장에 이르는 길도 차가 다닐 수 있다. 경사가 심한 비탈이지만 마음대로 오르내릴 수 있다. 특이한 것은 버스를 타고 가면서 이 도로를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도로를 내기 위해 생채기를 낸 곳엔 나무를 더 심어 산의 속살이 드러나 보이지 않게 조경해 놓았다.

고속을 요구하는 도로를 내기 위해 그들은 산의 옆구리에 생채기를 내는 일이 거의 없다. 생채기를 내야 할 곳은 터널을 뚫어 자연의 파괴를 최소화 하고 있다.
고속도로 변의 방음벽도 우리의 눈을 끌기에 충분하다. 방음벽 하나 마구잡이로 만든 것이 없고, 자연의 곡선을 활용하고, 자연의 색을 찾아 채색한다.

하이델베르크 성은 많은 관광객이 모이는 곳이다. 고대의 문화가 한곳에 모여 있는 곳이라 하이델베르크 대학과 더불어 하나의 명소를 이루고 있다. 하이델베르크 성안의 풀밭은 젊은이들이 나와 선팅을 즐기기도 하고, 사랑의 문을 지나 마로니에 나무 아래서 사랑을 나누기도 하는 곳이라 뭇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이 풀밭에 가면 어떠한 역경에도 잘 견디어내는 풀이 여덟 종이나 파종되어 있다. 기후의 변화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여러 종을 심은 것이다. 비가 많이 오면 물을 좋아하는 풀이 살고, 가물면 가뭄에 잘 견디는 풀이 살아남아 있도록 한 것이다. 그리하여 하이델베르크 안의 풀밭에는 언제나 푸른 풀이 덮여 있다. 잔디도 있고, 질경이도 있고, 오랑캐꽃도 있고, 클로버도 섞여 있다. 푸름을 갈구하는 그들의 마음을 현실로 옮겨 놓고 즐기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유유히 물이 흐르는 라인강가를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이 지나도록 달려 보아도 다리는 눈에 띄지 않는다. 강의 폭이 평균 일백 미터를 넘고, 깊이는 이십여 미터나 된다고 하는 이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하나도 없다. 이네들이 경제원칙도 모르고, 편리함을 몰라서 다리를 놓지 않았을까? 이들은 자연 경관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 다리를 놓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도 라인 강변에는 예저기 보트가 닻줄을 내리고 서 있다. 개인 자가용이다. 화물을 싣던 크레인이 강변에서 오백년의 역사를 웅변하면서 지나는 길손의 손목을 이끈다. 신이 우리에게 준 자연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나름대로 삶을 윤택하게 하는 그들의 지혜에 탄성이 저절로 나올 지경이다.

움츠렸던 계절이 봄바람에 밀리어 가면 나는 가끔 여행을 즐긴다. 바닷가도 좋고, 산이 엉겨 붙은 산촌도 좋다. 그때마다 나는 편리하게 나 있는 도로 위를 달리면서도, 그 편리의 위세 속에 망가져 간 산악의 생채기에 고개를 내젓곤 한다. 편리를 위하여 우리는 그토록 많은 출혈을 감내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얼마든지 편리를 도모하면서도 그 자연에 흠집을 내지 않는 인간의 기본적 양심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 고향 마을이 생채기 남을 안쓰러워하는 한 여학생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자신의 그림 같은 바닷가 고향 마을이 도로를 내기 위해 산이 송두리째 파헤쳐지고 있음을 가슴아파하는 글이었다. 그 여학생은 어린 날 길가에서 달리기도 하고, 고무줄도 하고 놀았는데 이제는 폭파음만이 마음을 뒤흔든다고 탄식하고 있었다. 갈매기와 같이 놀고, 솔바람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지금은 중장비 소리에 시달리고, 미래에는 질주하는 승용차들의 매연에 시달릴 것이라며 안쓰러워하고 있었다.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 그 자연을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우리는 개발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개발이란 미명하에 부서져가는 우리의 자연을 어떻게 어루만져 줄 수 있을까? 도로 건설을 위해 산의 옆구리에 생채기를 내기보다는 경비가 더 들고 우리의 땀이 더 요구된다 하더라도 터널을 뚫어 자연 파괴가 적도록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겠다.

세월이 흐를수록 벌겋게 드러난 자연의 깊은 상처에 붕대를 감아 주고 싶은 충동이 이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그 상처 위에 떠억 버티고 서 있는 ‘자연보호’의 입간판이 나를 슬프게 한다. 사실 산머리에 덩그렇게 세워 놓은 ‘자연보호’ 입간판도 자연 훼손의 범주에 속하는 것은 아닐는지.

이제는 건설의 욕구보다는 자연 보존의 욕구를 앞세워야 할 때가 되었다. 서구인들의 지혜로움에 우리도 감명 받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찾아 나설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한다.

 

편집부  news@geojejournal.co.kr

<저작권자 © 정의로운 신문 거제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