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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양득] 박사〈육사〈율사〈검사 ?황양득 / 에이펙 아카데미 & 어학원장
거제저널 | 승인 2022.04.26 13:55

80년대 초 정규 육사 11기 출신들이 대한민국 권력의 중심에 있을 때였다. 빨간 육사 반지를 내보이며 대통령과의 인맥을 과시했다고 한다.   

지금은 '검사빽'이 대세이지만 40여 년 전에는 소위 '정규육사빽'이 판치는 세상이었다. 더더군다나 육사 졸업 반지 외에는 졸업생이 맞는지 확인할 방법도 딱히 없었으니 말이다.

1951년에 육사 11기는 진해에서 가입교생 228명을 뽑았다. 입학 성적 227등으로 입교한 생도가 전두환이다. 육사 11기가 4년제 정규 육사 출신이다. 육사 1기부터-10기까지는 상당히 복잡한 역사가 있다. 속된 말로 짬밥(?)으로 육사 1-10기는 1955년에 슬그머니 정규 육사 기수 위로 끼어들게 되었다.

1945년 해방 후 육군은 만주군과 일본군 출신들이 주축이 된 군사영어학교를 시작으로 이듬해 조선경비사관학교가 문을 열어 1~6개월의 각기 다른 군사교육 기간을 거쳐 육사 1기가 1946년 6월 15일 88명의 첫 장교를 배출하게 되었다.

육사 2기로는 박정희, 김재규가 있다. 육사 5기에 정승화, 6기에 박태준, 8기로는 김종필, 김형욱 그러나 1950년에 입교한 비운의 1, 2기수 생도들은 전투에 투입되어 많은 사상자를 내고도 정규 육사 기수에 포함이 되지 않았으나 1996년 이후 그 명예와 희생이 인정되었다.

광복 후 군사영어학교 출신들이 육군을 주도했다. 이응준, 백선엽, 김백일이 대표적 인물이다. 나이 차이가 크지 않았던 육사 1-10기와 반목과 질시가 많았었다.

5·16 군사혁명(필자 기준)의 한 원인도 육사 기수 중 가장 많은 장교를 배출해 자부심 만큼 진급에 불만이 많았던 8기의 든든한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시 중장인 장도영 참모총장은 김종필 중령보다 3살 위였다. 이러한 군의 대립과 알력을 박정희 대통령은 견제세력으로 정규 육사를 중용함으로 해결하려 했다.

5.16 후 국가재건 회의, 방첩대, 특전사, 청와대 비서실 또는 경호실에도 근무하게 했다. 육사 1-10기 출신들에게 정규 육사 출신들은 6.25 전투 경험이 없는 온실 속의 화초라는 비아냥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정규 육사 출신 생도들은 6·25 이후 밴 플리트 장군의 전폭적인 지원과 배려 속에 미 육사의 선진 교육이 도입되어 명실공히 정예 호국 간성의 장교로 교육받았다.

한국전 이후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 제도에 대해 그 어느 교육 단체나 기관보다 먼저 경험한 집단이 정규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었다. 당시 군내에 만연했던 부정과 비리를 눈감아 줄 수 없는 청백리 육사 출신들이었다.

1980년 12월 12일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연행을 이런 정규 육사 11기들의 구국의 일념에 의한 대한민국군의 정상화라고 하면 너무나 지나친 미화일까?

80년대를 정치평론가들은 육법당의 전성시대라 표현한다. 육법당이란 육사 출신들과 법조계(주로 서울대) 인사들의 득세를 말한다. 81년 이후 당시 민정당을 지칭하는 말이다.

육법당은 1961년 서울대 ROTC 창설을 준비하던 전두환, 노태우 대위로부터 시작한다. 쇼맨십이 있었던 전두환은 5.16 당시 육사에 가서 육사 생도들의 혁명 지지 행진을 성사시킨다. 이 대목에서 전통이 먼저 대통령이 되는 쇼맨쉽이랄까? 아님 리더쉽이랄까? 필자도 중위 시절 보직 흐름으로는 육사 출신 중위가 학군단에 가기가 어려웠으나 정치에 목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서울대 학군단 배정을 위해 학군교 (구, 육군종합행정학교) 실무자 대위에게 단호하게 요구해서 서울대 배치를 받았다. 본인도 당시 학군단 후보생 명단을 면밀히 보았다. 아쉽게도 최근 몇 년 동안 법대 출신은 없었다고 했다.

학군단 창설 당시에는 법대 출신이 제법 있었다고 한다. 그 후보생 중 한 명이 노태우 대통령 시절 청와대 사정수석비서관을 지내고 후일 비자금 사건에 변호인으로 임무를 수행한 김유후 변호사다. 여담으로 이건산업 박영주 회장도 서울대 경제학과 학군단 1기 출신이다.

요즘 장안의 화제가 검수완박이다.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의 줄임말이다. 검사들의 대약진 싹은 5·16 이후라고 한다. 물과 거름은 전통과 노 대통령 시절에 흠뻑 먹었을 것이다. 지금 검찰 출신 대통령의 당선으로 개화의 최절정에 있다.

80년대에는 이런 노래가 있었다. 학사위에 석사, 석사 위에 박사, 박사 위에 육사, 육사 위에 율사. 아마 당시 육사 출신들은 이런 노래를 들어도 위기감을 느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실권은 육사가 거머쥐고 있었으니 말이다.

후일 12.12와 5.18은 성공한 쿠데타라서 처벌을 할 수 없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육사 출신들은 남미나 아프리카, 일부 동남아시아처럼 군부 독재의 길을 가지 않았다. 80년대 중반 당시 전두환 대통령 재임 시절 육사 12기의 선두 주자이자 최측근인 박희도 육참총장은 군의 사기와 복지를 위해 계급정년 연장을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돌아온 대답은

“야! 박희도 군대를 양로원 만들일 있어!”

그날 이후로 두 번 다시 입 밖에 내지 않았고 2인자는 권좌에서도 멀어졌다. 아마 전통의 진심을 알아서였을 것이다.

검찰의 2 인자가 나타났다. 대통령 당선인의 입을 주목하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거제저널  gjnow32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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