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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양득] 산다(山茶) 배길송
거제저널 | 승인 2022.06.28 11:53

국어사전에 '산다'는 곧 동백나무다. '산다'는 배길송 옥포대첩기념사업회 회장의 아호이다. 낯선 아호지만 '산다'가 동백을 지칭한다는 말에 다시 한번 눈길이 간다. '산다'와 본인은 일이 년에 한 번 정도 우연히 마주치거나 전화 통화를 하는 사이다.

올해는 “내일을 위한 희망의 새 노래”라는 자서전 성격의 회고록을 보낸다는 통화 후 책을 우편으로 받았다. 지난 6월 초 필자가 모교 방문 행사 때 시간이 나서 책을 찬찬히 읽어 보았다.

육사 졸업 및 임관 30년의 감동과 그리움이 우리 '산다' 선생의 50년 애환과 보람의 거제사랑에 비기겠는가! 거제의 큰 바위 얼굴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로시난테의 힘겨움도 모른 채 박차를 가하는 돈키호테라고 해야 하나?

처음 '산다'의 이름을 접한 때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열린우리당 변광용, 한나라당 김한겸, 민주노동당 변성준, 무소속 윤성기, 설계현, 배길송, 그리고 황양득. '산다'의 책에는 2006년 거제시장 선거가 빠져있다.

아마 잊고 싶은 선거였는지 아니면 수많은 낙선으로 기억이 흐려졌는지 다음에 만나면 물어볼 참이다.

'산다'는 1995년, 1998년, 그리고 2003년에는 거제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해 낙선했고, 2000년에는 지역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고배를 마셨다. 2006년 선거 때에는 옥포 사는 친고모의 "오빠 우째 또 나왔노?"라는 안타까운 격려와 아쉬움에 장승포 출신임을 짐작했다.

당시는 타 후보의 인적사항이나 시정 공약을 확인할 틈도 없었다. 시장 후보였던 필자의 선거 사무실은 거주 중인 아파트의 작은방이고 아내는 셋째를 3월에 출산했고 선거는 5월31일이었다. 선거 사무원 한 명 없이 선거를 혼자서 준비했지만 선거가 임박해서는 사촌 여동생을 불렀다.

입후보 및 선거사무 서류, 시정 공약집, 방송출연 연설 및 토론회 등 최소한 공식적인 일정도 제대로 치러내지 못해 관내 언론의 취재에는 전혀 응대하지 못한 기억이 선하다.

본격적인 선거 운동 기간에는 선친의 흉상까지 메고 다녔으니 윤영 전 국회의원의 첫인상처럼 “또라이”. 아마 '산다'도 지난 50년간 뒤통수 너머로 이런저런 비아냥에 오해도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의 자전적 스토리를 읽으면서 그가 꿈꿔온 세상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고 궁금했던 지난 사실들과 숨겨진 이야기들의 실타래가 하나하나씩 풀려나가는 시원함과 경외심마저 들었다. 그날이 1973년 10월11일이었다.

아주동 탑골의 허씨 가문인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헬기 프로펠러의 바람이 휘몰아치는데도 요즘의 폴리스 라인인 새끼줄을 뒤로 잡아당기며 수많은 인파와 함께 소리 지르며 달려가서 기억엔 없지만, 박정희 대통령을 만난 날이 그날이었구나.

남문 앞 큰 골리앗에 '대우조선'이었나 'DAEWOO'였나? 어린 시절에 듣기로 철자 하나에 페인트값만 2백만 원 들었다고? 대우조선 노사분규로 선친과 친분이 있었던 당시 故 옥00 과장이 노조의 습격으로 하수구로 피신을 했다는 긴박했던 무용담 등이 이해가 되었다. '산다'는 옥포 조선산업의 산파였다.

1960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의 풋내기 신입생 시절 4·19혁명의 도화선의 주역으로 한국 정치사의 대 변곡점에서 중앙 정치인으로서 성공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고향 거제의 발전과 비전을 보는 혜안이 있었던지, 더 큰 포부와 야망으로 옥포 조선의 태동에 서울에서 낙향하여 거제 정치, 경제, 문화의 최일선과 중앙에서 외풍과 저항에 맞서 전진을 했다.

장승포시의 출범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고 또 김영삼 정부의 도농통합 행정 개혁의 소용돌이에서 신생 장승포시와 거제군과의 통폐합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며 동거제(연초, 하청, 장목, 장승포, 일운면) 잉태를 위한 백방의 노력에도 실패한 점은 지금도 다시 돌이켜보면 천추의 한으로 다가온다. 철저하게 거제를 위해서 살았다.

지난 78년 대우그룹의 옥포조선소 인수 이후 김우중 회장과의 친분으로 자신에게 주어질 합당한 대가도 마다하고 거가대교의 구상과 건설 약속으로 먼저 거제의 내일을 생각했다.

80년대 여객선 타고 부산으로 가본 사람들은 다 한 번씩 들은 얘기거나 상상이다. 장목면 유호리 앞 형제섬으로 해서 가덕도 등대까지 다리 못 놓나? 모든 이의 상상을 현실로 만든이가 산다이다. 산타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거가대교는 거제에 내려진 큰 축복이자 선물이다. 故 김우중 회장을 향한 산다의 고마움과 그리움이 거가대교에서 바라보는 태평양처럼 넓고 멀다.

산다의 필생의 바람이 있다. 옥포만 앞바다에 옥포대첩기념사업회를 국민 관광단지로 조성 발전시키는 일이다. 앞으로 가덕신공항의 건설과 함께 충분히 고려해볼 대목이다. 필자도 거제 지역의 관광은 밀리터리 관광에 좀 더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임란의 승전과 패전의 본고장이며 러일 전쟁 때 거제의 여러 섬이 전초기지로서의 역사적, 군사적 가치가 있고 장승포 및 거제 전역이 흥남부두 피난민들의 고향이며 6·25동란 시 전쟁 포로들을 수용한 곳으로 국민(특히, 초중고생) 교육의 장으로서 손색이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최근의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이 현대 도시 전투에 시사하는 점이 많다. 앞으로 좀 더 연구해야 할 사안이지만 군경율행(軍警律行)의 통합 사관 교육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군인, 경찰, 법조인, 행정공무원을 통합 교육으로 양성해서 군경이 전시에 현대시가전에 대비하고 평시는 치안에 전력해야 하며 경찰과 법조인과의 수사권 기소권도 재설정되어야 한다.

연금개혁과 아울러 박 대통령 시절 이후 내려오는 관료제의 변화를 위해서 기존의 공무원 체계도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런 취지가 범국민적 설득력이 있을 때 거제에는 해군사관학교 출신들이 목놓아 부르는 “옥포만 푸른 물결과 충무공” 교가처럼 옥포만에 해군, 해경, 해사법, 해양공무원으로 통합된 해군사관학교를 유치할 수 있으리라 상상한다.

산다의 거제 사랑은 신앙과 성악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다음 생에서는 못다 한 성악가의 꿈을 이룰 것이라고 한다. '배길송' 그 이름은 거제 조선(배) 50년 발자취(길)를 따라 부르는 희망의 새 노래(송)다. 

거제저널  gjnow32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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