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등지에서 보이스피싱에 속은 피해자들로부터 수십회에 걸쳐 현금 약 3억원을 받아 상부조직책에게 전달한 수거책이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가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아 눈길을 끈다.

부산지법 제3형사부(재판장 성기준 부장판사)는 지난 24일 보이스피싱에 속은 피해자들로부터 23회에 걸쳐 현금 2억9391만 원을 교부받아 편취(사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 A씨에게 무죄로 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피고인 A씨는 구인광고를 보고 연락한 성명불상의 상부조직책의 지시에 따라 2020년 6월 중순께 금융기관 직원 행세를 하면서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돈을 받아 상부조직책이 지정한 계좌로 송금해 주고 그 대가로 일당을 받기로 공모했다.

성명불상의 상부조직책은 전화로 “저금리로 2천만 원까지 대환대출이 가능하다’, ‘저금리로 대환대출을 하는 것은 계약위반이니 기존 대출금을 상환해야 된다’, ‘대출을 받으려면 보증료를 송금해야 한다’ 등으로 수십명의 피해자들을 속였다.

이에 속은 피해자들은 금융기관 직원인것처럼 행세한 수거책 A씨에게 2020년 6월24일경부터 7월14일경까지 거제, 부산, 울산, 김해, 밀양, 창원, 대구 등지에서 23회에 걸쳐 현금 2억9391만 원을 건넸다. A씨는 전액을 상부조직책에게 온라인으로 송금했다.

이를 두고 1심은 A씨가 이 사건 당시 보이스피싱범죄에 가담한다는 점을 알지 못한 채 피해자들로부터 받은 돈을 상부조직책에게 송금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또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보이스피싱 사기 범행에 가담했다는 점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단정하기에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검찰은 "피고인은 보이스피싱 범행에 가담한다는 사실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교부받았다"면서 "그럼에도 이 사건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다"며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단을 배척하고 결국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피고인 A씨의 이례적인 구직 과정, 통상적으로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의 현금수거 및 전달책이 수행하는 전형적인 수법에 해당하는 비정상적인 편취금 송금 방식, 짧은 기간 동안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23회에 걸쳐 현금 2억939만원을 편취한 점, 성명불상 조직원의 지시로 대부업체 직원으로 행세한 점 등을 유죄 이유로 봤다.

또 A씨가 적어도 미필적으로나마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이 피해자들을 속여 금원을 편취하는 범행을 저지르고 있음을 인식하고도 상부조직책과 공모해 사기 범행을 저지른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재판부는 그러면서 "보이스피싱범죄는 경제적·사회적 약자들을 주요 범행 대상으로 삼아 그 궁박한 처지를 이용하여 이들을 더욱 어려운 상황에 이르게 하는 등 죄질이 매우 불량한 점, 보이스피싱 범행은 개개의 피해자로 하여금 재산상 손해 외에도 상당한 정신적 후유증을 겪게 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금융거래 질서에 혼란과 불신을 초래해 사회 전반의 신뢰를 저하시키는 등 그 해악이 매우 큰 점, 피해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 등은 불리한 정상으로 봤다.

이와 함께 "피고인이 미필적 고의로 이 사건 각 사기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인이 이 사건 각 범행을 통해 직접 취득한 이득은 비교적 소액인 점, 피고인이 동종범죄나 벌금형을 넘는 형으로 처벌받은 전력은 없는 점" 등은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다만,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하고 있어 추후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고심 재판 과정에서의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 및 무죄추정의 원칙 등을 고려, 실형을 선고하되, 현재 불구속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이번 재판에서는 2인 이상이 범죄에 공동 가공하는 공범관계가 주요 쟁점이 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공모는 법률상 어떤 정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2인 이상이 공모하여 어느 범죄에 공동 가공해 그 범죄를 실현하려는 의사의 결합만 있으면 족하다"고 본 것이다.

이는 비록 전체의 모의과정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수인 사이에 순차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상통하여 그 의사의 결합이 이루어지면 공모관계가 성립한다. 이러한 공모가 이뤄진 이상 실행행위에 직접 관여하지 아니한 자라도 다른 공모자의 행위에 대하여 공동정범으로서의 형사책임을 진다.

결국 공모에 대하여는 직접증거가 없더라도, 정황사실과 경험법칙에 의하여 이를 인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2004.12.24. 선고 2004도5494)' 판결 등을 인용했다.

서영천 대표기자  gjnow3220@hanmail.net

<저작권자 © 정의로운 신문 거제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