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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처서(處暑) 단상(斷想)서영천 / 거제저널 대표기자
거제저널 | 승인 2022.08.23 16:06
<필자의 집 앞에 있는 수령 60년의 은행나무. 필자가 초등학교때 키만한 묘목을 옮겨 심었는데 이토록 우람하게 자랐다. 50대 후반 불의에 쓰러져 보행이 불가했던 어머님이 생전 창가에서 유일하게 계절의 변화를 볼 수 있는 나무였다>

'더위를 처분한다'는 뜻을 가진 처서(處暑)는 1년 24절기 중 열네 번째 절기다. 입추(立秋)와 백로(白露) 사이 양력 8월23일 무렵, 음력으로는 7월15∼20일쯤이다.

처서는 '여름이 지나 더위도 가시고 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의미를 지녔다. 이때쯤이면 기승을 부리던 폭염도 물러가고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과 함께 밤에는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에는 '땅에서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는 말도 있다. 이처럼 처서는 여름이 가고 가을이 드는 계절의 순행(順行)을 뜻한다.

조상들은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드는 처서가 되면 논두렁에 나가 풀을 깍고 선대(先代) 묘소에 벌초를 한다. 청명한 날에는 여름 내내 습기찼던 옷가지와 이불을 햇볕에 내다 말리며 가을맞이 준비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절기를 종잡을 수 없다. 처서인데도 서늘한 바람은 커녕, 한 낮엔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에 숨이 턱턱 막힌다. 밤에는 열대야(熱帶夜)로 잠을 못 이룰 때가 부지기수다. 벌써 석달째 에어콘과 선풍기를 신(神)처럼 떠받들고 산다.

끈질기던 모기 녀석들도 근래는 폭염에 진저리가 났는지 구경조차 쉽지 않다. 다행히 며칠전부터 선선한 기운이 느껴지지만, 보름 남짓 남은 추석(9월10일)까지 더위가 순순히 물러갈지 모를 일이다.

괴팍스런 날씨 탓에 농사는 더욱 가늠키 어렵다. 파종 시기를 조금만 놓쳐도 농작물이 시름시름하거나, 웃자라버려 수확을 망치는 일이 점점 잦아진다. 다행히 아열대 기후에 맞는 벼농사만 해가 갈수록 대풍이라 양식 걱정없어 좋긴 하다.

열흘전 미수(米壽·88세)의 어머님을 떠나보냈다. 그 작고 초라한 고향집에서 가난한 목수의 아내로 억척의 삶을 이어 온 어머님! 50대 후반에 불의의 병마로 쓰러져 앉아서만 보낸 31년의 세월.

늘 햇빛 잘드는 창가에 앉아 오가는 이웃들에게 허허로운 웃음과 손짓을 보내던...이제 그 휑한 빈자리엔 그리움만 켜켜이 남았다.

어머님이 앉았던 그 자리에서 가만히 창밖을 바라본다. 생전에 유일하게 계절의 변화를 보았을 그 자리에서...생자필멸(生者必滅).

그래도 가을은 어김없이 오겠지. 문득 안도현 시인의 '9월이 오면' 시가 떠오른다.

그대/ 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중략),

그대/ 9월의 강가에서 생각하는지요/ 강물이 저희끼리만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을/(생략).

거제저널  gjnow32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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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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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현호 2022-08-24 12:50:02

    어머님! 생각만해도 그냥 눈물이 납니다. 돌아가신지 10년이 넘었지만 너무도 그립습니다. 대표님의 심정을 헤아립니다. 부디 모친께서 편히 영면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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