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 10월1일은 건군 74주년 국군의 날이었다.

TV 앞에 앉은 시청자 중 일부는 조마조마 한 심정으로 또는 혹시나 하는 매서운 눈빛으로 중계방송을 보았을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의전을 소홀히 한 독재자도 없다.

중국은 10월1일 건군 열병식으로, 러시아는 2차 세계대전 종전을 기념해 전승절 행사로, 북한은 조선인민혁명군 창설과 노동당 창건일에 국가적 열병식을 한다.

일견 공산 사회주의 독재 국가의 전유물 같지만, 영국의 버킹엄 근위병의 임무 교대식이나 여왕의 장례식에서 격이 다른 서양의 의전 행사도 보았을 것이다.

미국의 프로야구 월드시리즈 때는 거창한 애국가 제창에 맞춰 미 최신예 전투기가 야구장 상공을 종횡하는 장면들은 압도적인 미국의 군사 경제 문화 스포츠의 과시이다.

의전이라 하면 유교의 우리 조상들을 언급하지 않으면 지하에서 섭섭하고도 남을 일이다. 의전은 조직의 뿌리이기도 하고 역사다. 의전은 소프트웨어의 축을 이루기도 한다. 군대로 따지자면 의전은 곧 드러날 가상의 전투력이다.

그래서 의전상 잦은 실수는 불안감을 조성하고 사기 저하를 심화시키고 곧 패배로 이어질 개연성도 높아진다. 비록 5년 만의 열병식을 겸한 큰 행사이기는 하지만 여러 의전상 실수는 반복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군 미필의 현직 대통령이라 대한민국의 현역이나 예비역들은 예리한 눈으로 자신들의 과거 경험과 기억을 되살려 가면서 진지하게 시청을 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몇 시간 지나지도 않았는데 언론 매체를 타고 검색어에 오르고 있다. 서너 가지가 대통령을 비롯한 행사 중 의전상 실수로 지적이 되고 있다.

필자도 과거 생도 시절을 떠올려 보면서 다행스럽게 생각한 것이 행사 당일 바람이 많이 불지 안았다는 점이다. 더운 날씨에 전자 장비가 부착된 기갑병이나 특수전대의 방탄모는 보기에도 무거워,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러나 행사장에 제법 바람까지 강하게 불었더라면 육해공군과 간호 사관생도들의 흰 깃털이 달린 긴 예모가 바람에 벗겨지지 않도록 생도들은 고개를 이리저리 숙이고 돌리고 입으로는 턱 끈을 물었다가 뱉었다가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니다.

1991년 3월 육사 47기 졸업식에서 처음으로 다리가 후들거리는 긴장감을 맛보았다. 당시 필자는 생도대 기수단으로 좌우 소총 호위 생도와 생도 연대기, 육군기, 그리고 태극기로 이뤄진 기수단으로 필자는 육군기수였다.

식순에 의해 국기에 대한 경례 때 연병장 중앙에 위치한 기수단은 힘찬 제식동작과 함께 대통령 단상 정면의 생도 지휘부를 지나 대통령에 근접해 모든 졸업식 참석자가 잘 보이는 곳으로 이동한다.

처음 느껴보는 긴장감 때문에 보폭과 다리의 각도가 다 일치했는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떨렸다. 눈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노태우 대통령의 거수경례를 보고 있자니 더 떨리고 옆자리의 김옥숙 영부인의 예쁜 모습도 긴장감을 풀어주지는 못했다.

한 치의 실수라도 있을까 봐 전전긍긍 그 자체였다. 애국가 제창이 끝나고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오기 위해 기수단이 방향을 돌릴 때 5명 개개인의 종아리와 무릎의 각이 90도로 정확히 일치해야 한다.

다리가 천근만근이었다. 어떻게 왔는지 실수는 없었는지 확인은 고사하고 여전히 다리가 후들거렸다. 본인만 그런 게 아니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옆 동기생들도 다리가 떨려 죽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연습과 훈련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었다. 노대통령 이전까지는 매년 국군의 날 행사를 여의도에서 거행했다. 일반 야전 참가 부대들은 3개월간 여의도 광장에서 텐트 생활을 하면서 국군의 날 행사를 준비했다.

행진할 때 군에서 말하는 오와 열(세로와 가로)을 칼같이 맞춰야 한다. 여의도 행사처럼 대규모인 경우는 3, 4학년 생도들이 함께 오와 열을 맞추고 이번처럼 계룡대에서 진행될 경우는 4학년만 구성된다.

필자가 3학년 때인 1990년에 건군 42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여의도 광장에서 있었다. 필자는 아침 일찍 미사리 조정 경기장으로 가서 행사를 준비하는 일정이 불안해서 삼군사관학교 체육대회 카드섹션 응원단으로 자원했다.

당시 육해공군사관학교 체육대회 시기는 노태우 정권이 큰 정치적 난관에 봉착한 상황이었다. 3사단 출신 윤석양 이병의 보안사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이 연일 언론에 대서특필되던 때였다. 국방부 장관과 보안사령관이 경질되고 명칭도 국군기무사령부로 변경이 됐다.

코너에 몰린 노정권은 결국 야당과 협상에 나서고 하나회 해체 및 지방자치제 실현에 선행하는 진일보한 조치를 내놓게 되고 더 나아가 민간인 사찰이라는 비민주적인 정치적 유산들이 하나씩 청산이 되어가는 계기가 됐다. 범죄와의 전쟁도 이때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세월은 흘러 당시의 생도들이 건군 74주년의 주역이 되었다. 제병협동부대(국군의 날 행사부대) 지휘관이 육사 47기 손식 소장이었다. 앞서 작년 12월 말에 부산 출신으로 3사단장인 손소장이 윤석열 대통령 후보(민간인)의 DMZ 부대 방문을 극비리에 실행에 옮겼다.

이는 유엔사 정전협정 위반이었지만 필시 이런 해프닝에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통수권자가 부대열중쉬어 구령을 잊었지만 재치있게 잘 넘어가 지금 한직에 있는 손소장의 남은 군 생활에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대통령 표창의 두 육군 소장은 육사 48기로 필자와 동기생들이다. 생도 시절부터 점잖은 두 동기(김경중, 손광제)들의 앞날에 무운장구를 염원한다.

지난 국군의 날 행사장에 비치는 장성들의 면면을 보니 문정권에서 출세한 호남 출신 장성들의 입지가 확실히 좁아져 정권이 바뀌었음을 실감케 했다. 좌우 시소(seesaw)같은 정권의 운명에 군 인사도 하늘로 날기도 하고 땅으로 꺼지기도 한다.

군에서 이미 성공한 장성임에도 하늘을 더 높이 날고자 “날리면‘이라는 편에 아부하고 줄을 서지는 않는지? 일거에 전복을 꾀하려 없는 말도 지어내는 편에 서지는 않는지? 과거 어느 개그맨이 농담의 소재로 올리비아 뉴턴 존의 피지컬이라는 가사로 우리들이 이렇게 세뇌당했다.

“냄비 위에 밥이 타아? 파리똥?“. Let me hear my body talk. 요즈음은 귀가 어두워야 편한 세상이다.

거제저널  gjnow3220@hanmail.net

<저작권자 © 정의로운 신문 거제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