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돈묵 거제대교수

직립보행이 가능한 인간들은 두 손을 활용하여 노동할 수 있기 때문에 부귀영화를 누리고 산다고 말한다. 노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역시 무한한 행복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노동이란 생산 활동을 일컫는 말일 게다. 물건을 생산하니 삶이 여유로워지고 윤택해짐은 당연하다. 그리고 노동 후에 갖는 휴식은 사람들에게 행복의 부피를 한층 두텁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나는 사람이 오늘의 위치에 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궁둥이 뒤에 붙어 있는 꼬리를 과감히 잘라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일을 누가 했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참으로 위대한 결단이었다. 사람들에게 꼬리가 그대로 남아 있다면 직립보행의 현재 모습을 갖기에도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그 꼬리에 의존하여 살았으면 되지도 않은 것이 자만에 빠져 경거망동을 했을 것이 뻔하니 오늘의 부귀영화는 가당치도 않았을 것이다.

흔히 꼬리는 몸의 균형을 잡아주고, 언제나 앞으로 나아갈 때에 뒤를 책임져 주는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위급할 때엔 적에게 공격할 수 있는 무기로도 활용된다. 꼬리가 긴 동물일수록 그 활용도는 더 컸다. 소나 말과 같이 꼬리가 긴 초식동물들이 들판에서 풀을 뜯다 보면 피를 빨아먹겠다며 쇠파리들이 달려든다. 이럴 경우 그 무리들을 단번에 내칠 수 있는 무기는 단연 꼬리가 으뜸이다. 그 긴 꼬리를 상모 돌리듯 한번 돌리고 나면 모두 줄행랑을 치고 만다. 얼굴에 붙은 것들이야 귓바퀴로 설레설레 내쫓으면 그만이지만 몸통에 달라붙은 것은 그래도 꼬리가 나서야 효과적이다.

그런데 짐승들은 내쫓을 것이 없는데도 늘 꼬리를 흔들고 있다. 길짐승도 그렇고, 날짐승도 그렇다. 심지어는 물 속에서 사는 어류들까지도 늘 꼬리를 흔들고 있지 않은가. 왤까. 이 같이 꼬리를 늘 흔들고 있는 것 중에서도 가장 우리의 시선을 움켜쥐는 것은 돼지다. 그는 한시도 꼬리를 그냥 놔두는 법이 없다. 넉넉한 엉덩이에 보기에도 남세스럽게 달린 꼬리를 흔들어댄다. 더구나 뒤뚱거리면서도 꼬리를 늘 흔들어대는 모습은 보기에도 민망스럽다. 소나 말처럼 꼬리가 길게 늘어졌다면 점잖기라도 하지, 겨우 한 뼘도 되지 않는 것이 도래송곳마냥 꼬여서 흔들어대는 꼴이란 참으로 희극적이다. 그 꼴을 바라보다 보면 왜 저런 꼴불견을 계속 자행하고 있을까 의문을 아니 할 수 없다.

한참을 생각하던 나는 엄청난 사실을 발견한다. 정말 저 행동이 그런 행위였구나 생각하니 무릎이 저절로 쳐진다. 내가 얻은 결론은 순전히 동물과 사람의 비교에서 얻어낸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의 인간들에게서 꼬리를 잘라버렸다는 것은 위대한 결단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동물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삶을 그 순간 꼬리로 지우면서 살고 있다. 살아가면서 바로 제 모습을 꼬리로 썩썩 쓸어버리는 것이다. 가장 자발스럽게 지우는 것이 돼지이고, 소나 말 같은 동물들은 슬금슬금 다른 것들의 눈치를 보면서 지우고 산다. 하늘을 나는 새들은 지우개밥을 공중에 날리듯 제 행동을 지워버리고, 물속의 물고기들은 하늘하늘 부드럽게 물결 따라 흘려보내며 잊어버리고 산다.

그러니 조금 전에 한 일도 그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꼬리로 쓸어버렸기에 머리에 남은 것이 하나도 없다. 조금 전에 한 실수도 처음 하듯 다시 반복하는 것이 그들의 삶이다. 마치 까마귀 고기가 정력에 좋은 이치와 너무도 흡사하다. 자신이 한 행동을 아예 모르니 그들의 행동을 뭐라 탓할 것인가. 조물주가 그들을 빚어낼 때에 꼬리를 주어 자신들의 행동을 무작정 지우도록 해 주었으니, 그들은 그렇게밖에 살 수가 없다.

하지만 사람은 다르다. 아예 몸의 뒤에 붙어 있던 꼬리를 과감히 잘라낸 것이다. 그것은 과거를 지우는 도구를 제거해 버린 것이 된다. 사람만이 그래서 자신이 한 행동을 지우지 못하고,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며 살고 있는 것이다. 늘 지난 행동에 대해 되새겨보고, 뉘우치고 반성하고 더 좋은 것을 향해 노력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인간이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는 것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사람들은 인간답게 살도록 하는 생각이란 것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특성을 가졌으니 사람들은 그것을 잊은 척하며 사는 것도 가능하다. 자신의 고통을 잊은 척하며 사는 것은 미덕이 될 수도 있으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이나 실수를 잊은 척하는 것은 직무유기이고, 죄악이다. 대개의 경우 바르지 못하면 자신의 허물을 덮기 위해 잊은 척하기에 인간 사회에는 범죄가 상존한다. 그러나 이것을 바람직한 쪽으로 활용한다면 무한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보다 나은 삶이 도래하고, 끝없는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니 오늘날 인간이 이 위치에 와서 만물의 영장이라며 으스대고 있는 것은 바로 꼬리를 과감히 잘라낸 덕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짐승들처럼 꼬리가 아직도 남아 있어 제 행동을 수시로 지워버렸다면 과거를 볼 수 없고, 그로 인해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갖지 못하였을 것이 뻔하다. 인간의 꼬리를 잘라낸 것은 인간에게 가장 혜택을 준 용기 있는 결단임이 분명하다.

앞으로는 사람의 탈을 쓰고 짐승과 같은 행동을 하는 자에게는 인간 최대의 벌인 꼬리를 다시 붙여주어, 짐승처럼 과거를 잊고 살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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