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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무시 하지마라"[칼럼] 서영천 / 거제저널 대표기자
거제저널 | 승인 2023.06.07 15:01

엊그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게 하는 법원 판결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군 복무 시절 상관을 모욕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전 병장이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병장은 2년전 복무 당시 부대 생활관에서 점호 준비를 하던 중 동료들에게 여성 장교를 모욕하는 발언을 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그는 당시 상관인 여성 장교를 지칭해 "사진과 목소리는 이뻐서 기대했는데...실제로 보니 개 못생겼다"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당시 발언은 객관적으로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한 것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고 봤습니다.

'법리 오해'라며 1심 무죄선고에 불복해 항소한 검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거지요.

앞서 1심도 "순수한 사적 대화에서 이뤄진 의견 표명이나 경멸적 표현에 대해 상관모욕죄를 적용할 경우 헌법상 보장되는 표현의 자유가 과도하게 제한되는 결과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1심은 또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관모욕죄 공연성을 인정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면서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검사의 무리한 기소를 지적했습니다.

여기서 주목되는 건 무죄 판결 자체보다 '개 못생겼다'는 말입니다.

말이나 글자 앞에 '개'를 붙이면 좋은 말이라곤 거의 없습니다. 대개 욕이나 경멸한다고 여기며, 적어도 나이 든 기성세대에선 더욱 그렇습니다.

사전적으로도 '개는 질이 떨어지거나, 헛되거나, 쓸데없는 등 매우 부정적인 의미'라고 돼 있습니다.

요즘 어린 학생들이나 젊은이들이 쓰는 말이나 글을 보면 기성세대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게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런 그들에게 '개'라는 용어나 말은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의미와 전혀 다릅니다. 단지 '매우' '아주' '꽤' 등 어떤 현상을 강조하는 뜻으로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언어일 뿐이지요.

그 여군장교의 용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 가지 않지만, 이번 판결은 적어도 젊은 세대의 시대적 언어 트렌드를 잘 반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 출처=Daum 백과>그

그렇다면 '개'라는 짐승이 왜 욕바가지는 물론, 천박함과 냉대의 상징처럼 됐을까요.

늑대가 조상인 개는 인간과 가장 오래전부터 가까이 지내온 동물입니다. 약 1만년 전부터 인간의 필요에 의해 길들여져 살아왔습니다.

개는 성질이 온순하고 영리할 뿐만 아니라, 냄새를 잘 맡고 인간보다 귀가 4배 이상 밝고 후각이 매우 뛰어나 특히 도둑을 잘 지키고 사냥과 군사용으로 부려왔습니다.

인류는 그동안 160종 이상 되는 개 품종을 오로지 인간의 의도와 목적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육해 특성화 시켰습니다.

대신 개는 인간으로부터 양질의 음식과 안전한 거주처를 보상으로 제공받으면서 공생했습니다. 

개와 인간의 밀접한 사회적 관계는 반려견처럼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로 비쳐지고, 다양한 교육 이론을 시험하거나, 인간을 위한 의학용으로 연구돼 오기도 했습니다.

이토록 인간을 위해 헌신해 온 개가 제 몫을 다하지 못하거나, 말을 안듣고, 늙고 병들어 효용 가치가 떨어지면 어떻게 했을까요. 더욱 기가 찬 건 인간이 시키는대로 잘하고 멀쩡한데도 말입니다.

다 그런건 아니겠지만, 한편으로 개는 춥고 배고팠던 시절 가장 가까이에 비축된 양식이었습니다. 그것도 그냥 양식이 아니라, 인간이 쾌락을 즐기는데 필요한 보양식 쯤으로 여겨졌습니다.

따라서, 잡아 먹어야 되겠는데 그동안 부려먹은 걸 생각하면 미안하니까 욕을 하면서 '개'자를 앞에 붙여 매도해 때려 잡은 것입니다.

개 입장에서보면 진짜 억울합니다. 싫컷 부려먹고 '토사구팽(兎死狗烹·토끼사냥이 끝나고 나면 충실했던 사냥개도 쓸모 없어 잡아먹는다)'이라니...그런 개보다 못한 인간을 개들은 어떻게 봤을까요.

결국 사악한 인간들은 아무 죄도 없는 개를 잡아먹을 구실을 찾다보니 '개'가 인간사회의 일상적인 욕의 상징으로 굳어진 것입니다.

다행히 반려견 인구가 1500만 명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제는 개가 그동안 자기네들을 능욕해 온 인간에게 이 말을 들려줄 차례입니다.

"개무시 하지마라! 좋은 말 할 때..."

거제저널  gjjn322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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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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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독자 2023-07-06 13:34:42

    의미있는 칼럼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삭제

    • 지나가다 2023-06-08 11:51:04

      개무시 당하고 살면 가만 있지 말아야죠. 언젠가 빡시게 되갚아 주어야죠! 화이팅 거제저널~   삭제

      • 김용락 2023-06-08 10:00:33

        개 못생겼다" 는 개는 "걔"의 잘못 표기 아닐까요? 걔는 그아이의 준말이니까요. 상사를 개에 비유해서 말한것은 아니기때문에 그녀또는 그애 정도로 격이 낮게 표현했다고봅니다. 풀이하자면 "그녀는 못생겼다"가 맞는 말이겠지요. 아니면 그 상사가 개로 돌변했다는 말이 되는데 모순된 표현입니다.   삭제

        • 백합 2023-06-08 09:04:37

          시원한 컬럼 잘 보았어요. 아주 적절한 비유입니다. 마지막 구절이 마음에 확들어 옵니다요   삭제

          • 최상병 조치원60 2023-06-08 08:48:01

            서 대표님 오랫만에 명칼럼 올렸군요.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칼럼입니다. 마지막 칼침이 아주 시원하군요. 멀리서 늘 응원합니다. 건강하시구요^^   삭제

            • 독봉산지기 2023-06-08 06:42:34

              시원하고 통쾌한 칼럼! 돼지같은 인간, 교활하고 사악한 인간들이 건들거리며 사는 꼴! 진짜 역겨워 못 봐 주겠다 쌍~^^   삭제

              • 시민 2023-06-07 16:13:34

                ㅋ ㅋ 비유가 참! 딱 맞아 떨어집니다. 오랜만에 대표님 칼럼 잘 읽고 갑니다. 건필 하시길~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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