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로 예상되는 7조8000억 규모 미니 이지스함 6척을 건조하는 KDDX(한국형 차기 구축함) 사업 입찰을 앞두고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HD현중)은 물론, 거제·울산 정치권과 경제계, 언론까지 관심이 뜨겁다. 

거제저널은 이 사업이 방위사업청(방사청)에 의해 발주된 2020년 5월29일 이후 4년이 넘게 70여 건의 관련 기사와 논평, 칼럼을 통해 면밀하게 다뤄왔다.

애초 'KDDX 사업'은 2018년 12월 방사청이 미니 이지스함을 우리 무기체계에 맞게끔 만들어 2030년까지 실전 배치하겠다는 계획에서 출발했다.

이보다 앞서, 2018년 4월 옛 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는 불시 보안감사를 통해 HD현중의 비인가 내부 서버에 KDDX 개념설계도를 비롯해 군사기밀 26건이 저장돼 있는 것을 적발했다.

당시 기무사와 울산지검 수사를 거쳐 재판에 넘겨진 HD현중 직원 9명은 2023년 11월30일 부산고법 울산재판부가 '군사기밀보호법위반' 혐의로 항소한 HD현중 직원의 원심을 확정하면서 전원 징역 1~2년, 집행유예 2~3년의 유죄 선고를 받았다.

방사청은 HD현중 직원들의 유죄 확정판결 이후 내부지침을 적용해 수상함 등 특수선 입찰에서 오는 2025년까지 HD현중에 1.8점의 보안 감점을 적용하는 제재를 부과했다. 

하지만 정작 방사청은 지난 2월27일 계약심의위원회 심사 결과 HD현중의 부정당업체 제재 심의를 '행정지도'로 의결했다. 'KDDX 개념 설계도' 도촬 사건에 대해선 사실상 면죄부를 준 셈이다. 

이에 한화오션은 크게 반발하며 '청렴 서약을 한 임원이 개입된 정황이 있다'며 지난 3월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수사과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반면, HD현중도 '한화오션이 기자회견을 통해 본질적인 사안을 왜곡하고 명예를 훼손했다'며 한화오션 법무팀 관계자 등을 역시 경찰에 맞고소해 놓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SBS는 방사청이 KDDX 사업 발주를 8개월 앞둔 시점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제안서평가업무지침'을 개정한 배경에 전 방사청장의 비위 혐의가 포착돼 조만간 사법처리 예정이라고 단독 보도해 눈길을 끈다.

방사청이 사업 발주 공고(2020년 5월29일) 8개월 전인 2019년 9월께 HD현중에 유리하도록 내부지침을 바꿔 특혜를 준 의혹은 그동안 언론 보도를 통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SBS는 HD현중과 당시 방사청장 사이에 수상한 청탁이 오간 정황과 함께  2020년 12월 전 방사청장의 퇴직 직후 주식 거래 사실을 포착했다는 것이다.

의혹의 중심에 있는 전 방사청장은 "여러 지인에게 안내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으나, 경찰은 조만간 소환조사 뒤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 HD현중 직원 개념설계도 도촬(盜撮)...방사청 직원도 연루   

해군과 옛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은 지난 2012년 11월부터 2013년 10월까지 KDDX 개념설계를 완성한데 이어, 첨단함형 적용 연구, 스마트기술 적용 연구 등 3대 국책과제를 수행, KDDX의 윤곽을 구체화했다.

이런 가운데 개념설계 공모에서 떨어진 HD현중 직원들이 2014년 1월께 3급 비밀인 KDDX 개념설계도를 몰래 동영상 촬영해 문서로 복원한 정황이 드러났다.

2018년 4월 옛 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가 불시 보안감사를 통해 현대중공업의 비인가 서버에서 적발한 군사기밀은 모두 26건이다.

이중에는 차기 구축함 KDDX 관련 비밀 2건, 차기 잠수함 장보고-Ⅲ 비밀 1건, 다목적 훈련 지원정과 훈련함 비밀 각 1건 등 16건이 있었다.

유출 관련 혐의자 25명도 특정했다. HD현중 직원 12명은 울산지검으로 송치됐다. 이들 중 3명은 검찰수사를 거쳐 불기소 됐으나 9명은 항소심에서 모두 유죄 선고를 받았다.

방사청 직원인 해군장교 등 3명과 국방기술품질원 직원 등 민간인 10명은 군검찰로 각 송치돼 일부는 불기소 됐으나, 이들 대부분 역시 재판에서 유죄 선고를 피하지 못했다.  

◇ 그래도 '기본설계' 사업은 HD현중에

그런데도 방사청의 '기본설계' 사업 제안서 평가결과 KDDX 관련 국책과제를 한 건도 수행하지 않은 HD현중이 선정됐다. 대우조선해양과 점수 차이는 불과 0.0565점이었다.

탈락한 대우조선해양은 방사청을 상대로 부적절성을 따지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으나 소용이 없었다. 두 회사의 함정건조 실적과 기술력은 방산업계에선 엇비슷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제는 KDDX 개념설계도를 훔쳐 기본설계 사업 제안 준비를 해온 HD현중의 입찰 참가 자격이었다. 왜냐하면 HD현중의 당시 행위는 형사 범죄일 뿐만 아니라, 방위사업법 제59조에 따른 청렴서약 위반 또는 국가계약법령상 부정당제재 사유인 '부정한 행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가위원들은 일부 항목 평가에서 HD현중에 대우조선해양보다 0.1286점 높은 점수를 주었다. 이는 두 업체의 최종 점수차인 0.0565점에 비해 두 배나 높다.

방사청은 해당 항목은 상대평가이므로 구체적인 기재 내용을 참고해 점수 차를 둘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해명을 믿는 이는 별로 없었다. 방사청 내부에서조차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방사청  직원으로서 부끄럽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

유사함정 설계 및 건조실적 평가 분야에서도 평가위원들은 HD현중에 대우조선해양보다 0.28점 높은 점수를 주는 이해하기 어려운  평가를 서슴치 않았다.

당시 5년간 실적을 보더라도 대우조선해양은 기본설계 9건, 상세설계 10건, 건조 23건을 수행했다. HD현중의 기본설계 7건, 상세설계 8건, 건조 19건보다 오히려 다소 우위에 있었다. 그렇다면 두 업체가 함정설계 및 건조실적 평가에서 현저한 차이가 나올 이유가 전혀 없다.

게다가 대우조선해양은 KDDX 개념설계 등 국책과제도 성공적으로 수행해 왔다. 이러니 방산 업계에선 의도적인 '짬짜미'가 아니고선 HD현중의 실적평가 점수가 대우조선해양을 압도하긴 어렵다는 비판이 쏟아질 수 밖에 없었다.

더욱 기가 찬 건, HD현중 측의 반응이었다. "개념설계도 등을 소속 직원이 도촬한 건 맞지만, 평가된 기본설계에는 활용하지 않았다"는 변명을 내놔 실소를 금치 못했다. 

◇ 방사청 내부지침 개정 '오비이락(烏飛梨落)'?...왜 방사청장이 의혹 중심에

국가수사본부는 2020년 11월부터 이 사건 수사에 착수해 2023년 6월초부터 KDDX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전 방사청장의 유력한 비리를 포착해 수사를 벌여 왔다. 

경찰이 가장 의심하는 대목은 KDDX 기본설계 입찰공고(2020년 5월29일)가 있기 불과 8개월 전인 2019년 9월 방사청이 '제안서평가업무지침'을 바꿨다는 지점이다.

방사청이 당초 '방첩사의 처분 통보 접수시' 최대 1.5점까지 감점하도록 한 기준을 '기소유예 처분 또는 형벌 확정시' 감점으로 변경했다.

또, 감점 적용 대상 기간도 '최근 2년 이내' 사건에서 '최근 1년 이내'로 변경한 부분도 주목했다. 경찰은 당시 이 과정에서 전 방사청장 등이 개입한 정황을 포착하고 구체적인 혐의 확정을 위해 2023년 8월17일 이들의 자택과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를 벌였다. 

이 부분은 당시 거제시민대책위나 옛 대우조선해양측도 가장 핵심적인 의혹으로 지목했다. 당시로선 HD현중이 옛 대우조선해양의 KDDX 개념설계도를 불법 도촬한 혐의에 대해 기무사 수사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이 때문에 만약 방사청의 내부 지침 개정이 없었다면, HD현중이 이에 상응하는 감점을 받아 옛 대우조선해양이 KDDX 기본설계 사업자로 선정됐을 것이란 지극히 합리적인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방사청은 "특정 업체에 특혜를 주기 위해 지침을 삭제한 바 없다"고 밝혔다. 민관합동규제개선추진단의 기업 현장애로 개선과제 검토 요청과 국민권익위원회의 제도개선 의결 통보사항 등을 검토해 보안사고 감점기준을 개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방사청은 이후 2021년 12월 보안 감점을 최대 1.5점에서 2.0으로 늘리고, 감점 적용 대상 기간도 3년으로 확대했다. 이 역시 "2020년 10월 KDDX 사업 관련 보안사고 규제가 약하다는 국회 국정감사 지적 후속조치"라는 설명이었다.

방사청의 이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방산업계에선 의도적인 '짬짜미'가 아니고서는 HD현중의 실적평가 점수가 대우조선해양을 압도하긴 어렵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 정권 차원 HD현중에 KDDX 사업 몰아주기? 

무엇보다도 당시로선 HD현중에서 분리된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을 정부가 별다른 결론도 내리지 못한채 2년이 넘도록 질질 끌고 있는 가운데 이 사건이 불거졌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당시 정부가 주도하던 두 회사 간의 합병이 성공적으로 추진됐다면 '기본설계' 사업자 선정은 물론, 이후 최종적으로 KDDX 사업 전체를 HD현중에 물아줘도 아무런 뒤탈이 없는 쪽으로 귀결된다.  

납득이 안가는 건 당시 방사청도 마찬가지였다. 공정한 기준으로 평가해도 뒷말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치열한 경쟁 판에서 도저히 정부기관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HD현중을 감싸고 돌아 '도대체 왜?'라는 끊임없는 불신을 자초했다.

이와 관련 지난 2월 거제 지역구 서일준 국회의원은 성명을 통해 "이는 결단코 방사청이 단독으로 행할 수가 없었고, 정권 차원의 비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라고 질타했다. 

◇ 방사청, HD현중에 '행정지도'...솜방망이 제재

방사청은 지난 2월27일 계약심의위원회 심사 결과 HD현중의 부정당업체 제재 심의를 '행정지도'로 의결했다.

사상 최대 방산비리를 저지른 회사에 강력한 제재를 가하기는커녕, 방산 분야 입찰 참가자격 제한을 완전히 풀어 준 것이다.

특히 방사청 계약심의위는 핵심 쟁점으로 꼽혔던 '임원 등 윗선의 조직적 지시' 여부에 대해 해괴한 결론을 내려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들은 "방위사업법 59조에 따른 제재는 청렴서약 위반의 전제가 되는 대표나 임원의 개입이 객관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아 제재 처분할 수 없는 것으로 봤다"고 해명했다.

◇ 방사청의 해괴한 '청렴서약서' 해석 

통상 방사청 주관의 무기체계 개발 및 도입 사업에 참가하는 업체들은 대표(또는 임원) 명의의 청렴서약서를 작성한다. '입찰 중 불공정행위나, 관계공무원에게 뇌물을 주지 않고,방위사업 관련 특정정보의 제공을 관계공무원에게 요구하거나 제공받지 않는다'는 따위다. 만약 이를 어기면 정부 사업 참여 자체가 봉쇄되는 '부정당제재'를 받는다.

앞서 HD현중은 2012년 KDDX 개념설계 사업 입찰 때 청렴서약서를 썼다. 당시 수주에는 실패했지만, 이후 HD현중 직원들은 2013년과 2014년 KDDX 개념설계 기밀을 훔치는 등 4년 간 해군의 함정 관련 군사기밀을 지속적으로 탈취했다.

이게 바로 "방위사업 관련 특정정보의 제공을 관계공무원에게 요구하거나 제공받지 않는다"는 청렴서약서 조항의 명백한 위반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데도 방사청은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

최근 한 매체에서 이 부분에 대해 눈길 끄는 기사를 보도했다. 당시 HD현중의 군사기밀 탈취에 협조한 해군 대령은 HD현중의 KDDX 개념설계 기밀탈취가 끝난 뒤 HD현중에 입사했다. 취업해서 받은 급료는 기밀탈취 협조의 대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는 5년 이상 HD현중에서 근무하다가 군사기밀법위반 혐의 확정판결로 복역한 후 퇴사했다. 이는 '입찰, 계약 체결 및 이행 과정에서 관계공무원에게 뇌물을 주지 않고, 그런 약속도 안 한다'는 청렴서약서 조항의 위반 소지가 크다. 이마저도 방사청은 눈을 감았다.

대표나 임원의 청렴서약은 사업에 참여하는 다수의 직원들을 대표하고 대리해서 서약하는 행위로 봐야 한다. 수많은 직원들이 일일이 서명하는 것은 불합리하기 때문에 대표나 임원이 도맡아서 서약하고, 이를 직원이 위반하면 회사가 당연히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 아닌가.

결국 방사청의 '청렴서약서'에 대한 논리는 "청렴서약서에 서명한 대표 등 임원이 직접적으로 불법 행위를 하거나, 범행을 공모해야만 서약서 위반"이라는 군색한 해석이다. 이런 행태는 직원들은 불법행위를 해도 괜찮다는 '면죄부'를 준 것과 다름없다.

이를 두고 방산업계는 물론 방사청 내부에서도 " '청렴서약은 대표등 임원의  직접적 가담이나 공모행위만 규제한다'며 HD현중에 면죄부를 준 방사청 유권해석이 너무 어이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 수의계약 아닌, 공정한 기회 보장돼야

최근 석종건 방사청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KDDX 사업과 관련해 수의계약과 경쟁입찰 중 어떤 방식으로 추진할지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그는 "만약 경쟁입찰로 가도 HD현중과 한화오션 중 어느 한쪽이 유리해지는 상황은 되지 않을 것"이라며 "최종 사업자가 선정됐을 때 KDDX 적기 전력화를 위해 업체들의 승복과 페어플레이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는 공정하게 사업을 이끌어야 하는 방사청장의 입장에선 흠잡을 데 없어보인다. 그러나, 정작 지금까지 KDDX 사업관리에 불공정했다는 의혹과 함께 적어도 HD현중의 군사기밀 탈취에 방사청이 연루됐다는 '고백'과 사과가 빠졌다는 지적이다.

어떤 측면에선 방사청이 그동안 KDDX 사업 추진과정에서 보여 온 도덕적 책임은 민간기업인 HD현중보다 훨씬 더 무거울 수도 있다. 

HD현중이 무슨 '빽'으로 줄곧 수의계약을 주장하는지 몰라도, 요즘 지자체의 웬만한 사업도 공정성을 담보로 하는 경쟁입찰을 하는데 국가기관인 방사청이 이를 회피할 이유가 전혀 없다.

방사청은 최근 국제적으로 뜨고 있는 K-방산의 위상과 KDDX 사업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서라도 경쟁입찰을 통해 공정한 기회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KDDX 사업 논란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방사청이 공범 의혹을 털어낼 마지막 기회임을 알았으면 한다.

서영천 대표기자  gjjn32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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