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늦게 일어났습니다. 매번 일요일에는 늦잠 자던 버릇이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이번 주 미사만은 절대로 늦지 않으리라 하던 엊저녁의 다짐도 허사입니다. 잠만 들면 모두 나의 머리 속에서 지워지나 봅니다.

아침 식사도 못 하고 허겁지겁 성당에 갈 준비를 합니다. 성가집과 성서를 챙겨듭니다. 현관을 나서는데 문득 헌금 봉투를 잊었다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 미리 준비해 둔 봉투를 챙겨 나옵니다. 매번 주일마다 가는 미사인데, 번번이 헌금 봉투를 잊고 나오니, 내가 생각해도 참 안 된 일입니다.

마음속에서는 차분한 마음이 되어 성당에 나가고 미사에 임하자 하면서도 잘 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고치려 노력합니다. 매번 다짐도 하고, 준비도 합니다. 그러나 내 맘처럼 되지 않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주일은 모두 비워놓고 차분한 마음으로 성당에 가리라 다짐하지만, 난데없이 주례가 들어옵니다. 일생에 한번 하는 제자의 결혼식 주례를 거절하기가 어렵습니다.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주례의 거절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다 보면 새벽 미사에 참여합니다. 그러나 내 마음은 편치를 않습니다. 왠지 쉬운 길로 돌아가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고 불안합니다.

그래도 오늘은 다행입니다. 낮 미사에 가는 중입니다. 오랜만에 나선 낮 미사인데도 늦잠에 떨어져 이렇게 허둥대고 있습니다. 밖에 나와 보니, 하늘이 잔뜩 찌푸린 채 울상입니다. 부지런히 성당을 향합니다. 이제 겨우 반밖에 오지 못 하였는데 빗방울이 하나 둘 듣기 시작합니다. 머리 위로 내리는 비의 차가움이 전달됩니다. 나도 모르게 성가집과 성서로 머리를 가립니다. 조금 차가움이 덜합니다. 성가집과 성서가 나의 머리에 내리는 비를 가려줍니다. 더러는 차가움이 전달되기도 합니다. 부지런히 가다 보면 손이 흔들릴 때마다 비의 차가움은 비집고 들어옵니다. 나는 다시 손을 바로 하여 비를 가립니다. 훨씬 차가움이 덜합니다. 성서의 쓰임이 이런 것도 있다는데 웃음이 나옵니다.

한참을 오다보니, 바지의 지퍼를 올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길 위에서 지퍼를 확인하고 올리기에는 부끄럽습니다. 이것을 아무도 모르게 처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눈치 채면 부끄럽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얼마나 사람이 칠칠찮으면 지퍼를 열어 놓고 다니느냐 할 것이 분명합니다. 문득 나는 황당한 입장이 되어 고심에 빠집니다. 걸음이 잘 되지 않습니다. 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한참을 고심하며 걷던 나는 대책을 세웁니다. 성가집과 성서로 앞을 가리고 지퍼를 확인합니다. 조바심한 대로 열려 있습니다. 나는 성서로 앞을 가린 채, 지퍼를 올립니다. 

허둥대며 들어선 미사시간이 온전할 리 없습니다. 숨은 아직 거친데, 성가는 불러야 합니다. 신부님의 말씀이 잘 들리지 않고, 좀 전에 있었던 민망스러움만이 떠오릅니다. 누가 보지나 않았을까 두렵습니다. 그는 나를 볼 때마다 그 생각을 떠올릴 것이 아니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고개를 들 수 없는 민망함입니다. 자꾸만 잡념이 일어 나의 뇌리를 움켜쥡니다. 한 주일의 삶을 회개하기는커녕 신부님 말씀 한 마디 머리에 남은 것이 없습니다.  

미사를 끝내고 돌아오면서 깊은 생각에 잠깁니다. 지금까지 나의 신앙생활이 떠오릅니다. 한번도 차분한 마음으로 미사를 보지 못할 정도로 허둥대면서도, 어려움에 처할 때나 나의 허물을 가릴 때면 으레 신앙에 의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빠집니다. 길을 가다 비가 내리면 그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성가집과 성서로 머리를 가렸듯이 내 삶에 어려움이 파고들면 그 때마다 엄청난 신앙인처럼 하느님을 찾았습니다. 길을 가다 내 지퍼가 열린 것을 가리기 위해 성가집과 성서를 동원했듯이 내 삶에서 부끄러운 점이 있으면 하느님을 찾으며 그것을 숨기려 했습니다. 어디까지나 하느님은 내가 필요할 때만 부르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신앙생활이 엉망이었다는 것이 이제야 눈에 들어옵니다. 자신의 알량한 욕심과 사심에서 하느님을 찾는 신앙생활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어떻게 하면 즐겁게 해 드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은 전혀 없이 욕심만 부린 생활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늘 하느님께 내 가슴을 채워 달라고 애원하는 기도만 올렸던 것입니다.

신앙을 갖기 전, 나는 별생각 없이 살다가도 곤경에 처하면 하느님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나의 힘으로 이겨낼 수 없는 일이면 하느님의 힘을 빌려 했던 것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공경하는 마음이 평소 있던 것도 아니고, 다만 내가 필요하면 저절로 입에서 불려지던 하느님입니다. 내가 해야 할 도리는 전혀 챙기지 않고, 자신의 욕심만 채우고 싶을 때 찾던 하느님입니다. 

지금 신앙인이 되어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아니, 신앙인인 척하는 자신을 생각해 봅니다.  더 노력하여 모자람을 채워야 온전한 신앙인이 되리라 믿습니다. 지금은 많이 모자라도 언제나 하느님을 즐겁게 해 드릴 일을 생각하며 사는 삶을 꾸렸으면 좋겠습니다.       <“영성문학” 제6집  200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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