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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喪家) 가는 사람들
편집부 | 승인 2011.06.07 09:48

   
강돈묵 거제대교수
요즈음은 사람들이 잘도 죽는다. 대화 좀 하려고 시간 요청하면, 사람이 다들 죽어서 상가에 가야 한다는 핑계다. 왜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죽는지 모르겠다. 아침에도 죽고, 점심에도 죽고, 저녁에도 죽는다. 또 작년에 죽은 사람도 죽고, 한 달 전에 죽은 사람도 죽고, 엊그제 죽은 사람도 또 죽는다. 그렇게 사람들이 자주 죽고, 반복해서 죽으니 상가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토록 많은 상가를 빠뜨리지 않고, 이 집 저 집 찾아다니며 문상을 해야 사람 구실을 하는 것이 된다. 다 챙기려면 일할 시간마저 없게 된다. 

아마 그 많은 사람들이 찾아다니는 상가를 다 보태어 보면 지구상에서 아직 숨쉬고 있는 사람 수보다도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평상시에는 대인 관계가 그리 부산하지 않던 사람도 저녁 무렵만 되면 상가에 간다며 나서는 것을 보면, 우리는 떠나보냄에 대해서는 유별났던 민족인 것 같다. 아무리 바빠도 문상만은 거르지 말아야 한다. 우리들 마음속에 이런 관념이 내재해 있기에 모든 사람들이 상가 핑계를 대면 더 캐묻지 않고 덮어주는지도 모르겠다. 

간혹 죽은 사람이 다시 죽어서 문상객을 당혹스럽게도 한다. 죽은 사람의 사망신고서라도 비치해 두고 치밀하게 활용했다면 이런 봉변은 없었을 것이다. 부산하게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는 생활 속에 그런 치밀함이 있을 리 없다. 편한 대로 이 사람 저 사람 둘러대다 보니 그 꼴이 되고 만다. 상가에 간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처럼 우둔하면 천만다행이겠으나, 만에 하나 컴퓨터 같은 두뇌를 가진 사람이라면 낭패하고 만다. 한 달 전이 아니라 일 년 전에 문상 간 것까지 줄줄이 꿰는 날이면 이 어찌 낭패가 아니겠는가. 이런 땐 죽은 사람이 또 죽었다며 멱살이라도 잡힐 일이다.

상가에 가는 사람들은 별의 별 사람 다 있다. 걸음도 희한하고 가는 곳도 다양하다. 이리 휘청 저리 휘청 가서 머무는 곳이 상가인 것을 식구들이야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상가에 간다던 사람이 선술집 목로에 걸터앉아 코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소주 한 잔 붓거니 마시거니 일어설 줄 모른다. 정중하고 숙연해야 할 상가가 선술집으로 바뀌었으니 복장인들 온전할까. 낮 동안 부아 지른 과장 놈 씹다보면 옷소매가 저절로 올라가고, 주기에 무너진 다리는 흔들리며 뒷간을 드나든다. 걱정을 내려놓고 실룩이며 나오는 꼴이 영락없는 오리 궁둥이다. 다시 소주잔 기울이며, 사내 맘 알아주지 못하는 마누라 탓하지만, 소름이 돋고 진저리가 쳐진다. 화덕 연기에 흐르는 콧물은 내려올 땐 완행열차요, 올라갈 땐 급행열차다. 쿨럭 쿨럭 기침하며 마신 술에 정신이 몽롱하여 ‘상가’를 잊고 나면 비시시 일어서는 사람들. 상가에 간다던 사람들이다. 

한 무리는 끼리끼리 모여 음침한 골방으로 문상 간다. 방 안은 담배연기가 절어 있고, 예저기서 한숨소리 절로 난다. 빙 둘러앉아 사생결단이라도 낼 눈빛으로 숨죽이고 앉아 있는 모습이 귀신은 저리 가라다. 뭐에 그리 미쳤는지 마누라에겐 문상 간다 하고 골방에서 그림 공부에 열중이다. 어떤 이는 동양화에 미쳐 있고, 더러는 서양화에 미친 사람도 간혹 보인다. 죽었다는 사람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제 자신이 사생결단이다. ‘고’와 ‘스톱’을 가려하며 천당과 지옥을 왕래하는 꼴이 죽은 사람 버금간다. 밤이 깊도록 이런 문상 거듭하니 그 무릎인들 견뎌낼까. 

세상이 하 어수선하니, 요즈음은 상가와 러브호텔이 서로 왕래한다. 집에다 멀쩡한 마누라 앉혀 놓고, 남의 여자 탐하느라 러브호텔 상가에 찾아간다. 퇴근 시간만 되면 누구네 상가라고 핑계 삼고, 사업 상 어쩔 수 없다며 마누라 윽박질러 대문 안에 가둬두고, 한걸음에 달려가는 곳이 러브호텔이다. 호텔방에 들어서니, 여기도 상가라서 침대는 흰 천으로 깔려 있다. 흰 천을 걷어내고 알몸으로 문상한다. 엎드려 곡하는 소리 나다 말다 거듭한다. 침대 위에서 꿀맛 같은 딸기를 따다가 목이 쉬면 하도 슬퍼 목이 잠겼다고 하면 되리. 이 맛 저 맛 즐기면서 상가 다니기도 꽤나 힘들구나. 저녁마다 상가로 돌고 돌아 몸은 쇄락해지고, 부실하기 그지없다. 술에 맞고 고스톱에 찌들고 여자에 곯았으니, 놓친 것은 건강이요, 남은 것은 허망이다.

참 묘한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어제는 죽은 사람이 다시 죽는 꼴을 보았고, 오늘은 문상 간다는 사람들이 술집으로 골방으로 러브호텔로 드나드는 꼴을 바라보게 된다. 그러니 기막힌 세상이 아닌가.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돌아가신 조상을 정성껏 모시는 것을 자식 된 도리로 알아왔다. 그래서 망자의 떠나는 자리에 경건한 마음으로 모두 참예한다. 이것이 사람 된 도리고, 우리가 아무리 못 되었어도 이것만은 꼭 챙기는 것을 미덕으로 알아 왔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 마저 주위 사람에게 안심시키고 다른 짓을 하는 방편으로 쓰고 있다니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을 죽여가면서 문상을 가니, 어쩌면 사람이길 포기한 것은 아닐까. 그냥 껄껄 웃으며 ‘죽었다 헛소문 났으니 장수할 겨.’ 하고 둘러대기도 민망한 일이다.  소문의 희생양은 맘 좋은 분들이다. 한평생 법 없이도 살아갈 분이고, 들판에 홀로 서 있는 간이역처럼 없는 듯이 살다가는 분들이다. 이런 분들이어야 별 탈 없이 넘어가는가 보다. 그래서 장수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헛소문 덕이 아니라 원래 그러실 분들이기에 장수하시는 것이다.

이러다간 제 입으로 주위 어른들을 죽인 자들도 몇 해 가지 않아, 아들놈의 친구한테 몇 번 죽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다른 구실 다 좋아도 사람 죽었다는 놀이만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이 아무리 제 편리를 추구한다 해도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이렇게 막 가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오늘도 나는 멀리 있는 자식의 친구들에 의해 죽었는지 알 수 없다. 언제 죽었는지 본인도 모르게 죽고, 몇 번 죽었는지도 모르게 자꾸 죽어 가는지도 모를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수필시대” 2005년 9, 10 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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