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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양득] Mucho Trabajo Poco Dinero(쌔(혀)가 빠지도록 일하고 월급은 쥐꼬리만 하지)
거제저널 | 승인 2022.07.18 13:59

원단 컷팅 작업장에 낯선 노동자가 오면 몇 주 지나서 필자가 처음으로 건네는 인사말이다. “무초 트라바호 뽀코 디네로” 이 말을 듣고 미소를 머금지 않는 남미 노동자를 본 적이 없다.

마찬가지로 한국말을 조금 알아듣는 이주 노동자들에게 “일은 쌔(혀)가 빠지도록 일하고 월급은 쥐꼬리만 하지”라는 농담에 자신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아 고마워하지 않은 이방인이 또 누구겠는가!

몇주 전 저녁에 해성고 학생이 늦어 전화하니 차가 막혀서 오늘은 학원에 못 가겠다고 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터질 게 터진 모양이다. 낮은 임금에 견디다 못한 하도급 (00면민 입장에서 하도급으로 표기) 노동자들의 시위에 민노총까지 원정을 와서 합세 데모를 하니 참다못한 대우 협력사 및 직영의 인력까지 맞불 실력행사를 한 정면 대치였다.

저임금으로 지금 양대 조선소에는 일할 사람이 없다고 한다. 일할 사람은 저임금의 알바 및 물량팀을 지칭하는 말일 것이다.

생각해보니 필자가 미국에서 경험한 노동은 전부 알바 및 물량팀이었다. 토요일 아침 6시쯤이면 3, 4살인 딸과 아들을 차에 태우고 5불짜리 도너스 12개를 사서 30분 정도 운전을 해서 도착을 하면 먼저 대여섯 명의 남미, 주로 멕시칸 노동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전날 금요일까지 정규 시간 노동을 하고 일이 많으면 토요일 근무를 하곤 했다. 금요일 야간 및 토요일 근무는 시간 외 수당이니 필자 같은 학생 알바(불법 노동자)를 관리인으로 채용을 한다.

주 임무는 고급 원단을 훔쳐 가지 않는지 감시 및 관리다. 원단을 넓게 몇십 겹으로 깔아서 디자인마킹 페이퍼에 맞게 잘라서 재봉질 공정 전까지 상·하의 짝을 맞추어 묶음까지 만들어 주는 일이었다.

가끔 디자인이 변경되거나 원단이 교체되는 등 긴급 사항이 원청회사(한국인)로부터 오면 작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필자의 일이었다.

처음 한두 달은 일을 계속 지켜봤으나 작업자들과 친분이 쌓이니 사무실에 들어가서 TV 나 보라고 권한다. 지켜보는 눈에 더 부담되어서 자신들의 능률도 안 오른다는 설명이었다.

주 임무가 간식이나 식사를 챙겨주는 일로 바뀌었다. 그 덕택에 타코도 많이 먹어보고 할라페뇨라는 고추며 다양한 멕시칸 음식을 먹어보았다.

그들이나 필자가 제일 기쁜 날은 금요일 저녁부터 야간 일을 하고 뒷날까지 이어져 토요일 저녁 식사 전까지 일하는 것이었다. 그런 토요일이면 저녁 청소일을 하는 교회까지의 운전이 캘리포니아 드림의 콧노래로 절로 신이 난다.

20여 년 전 당시 캘리포니아 최저임금은 7불이 넘지 않은 기억이다. 본인은 군 출신의 웃돈이 붙어서 시간당 10불 정도 받았다. 일정치는 않았지만 꿀알바였다.

아내마저 토요일도 치과에서 보조로 일을 하였기에 아이들은 필자가 데리고 나갔다. 그들과 본인은 꿈이 있었기에 서로 즐겁게 일을 했다. 한 번도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없었다.

팀장인 엘리자르도는 멕시코 이민자로 집도 장만한 부지런한 기술자였고 영어를 잘하는 호세는 돈을 벌면 항공 학교에서 자격증을 취득한 후 멕시코로 가려는 계획이 있었다. 그 외 근무자들은 계절마다 나타나고 비수기에는 고향 멕시코나 남미로 사라지곤 했었다.

사장님은 여유가 있는 교포로 일감을 수주하는 데에 신경을 덜 쓸려고 했었다. 젊은 사장들의 등장과 최저임금의 상승으로 일을 그만두고 공장을 팔고 은퇴를 늘 염두에 두었다.

라틴계 동료들이 자신들의 집에 필자를 초대한다고 서로 약속만 한 채 그 이후로 만나지는 못했다. 방 세 개에 화장실이 셋인 주택에서 많게는 30명이 산다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그 원단 절단 공장 일이나 보수가 좀 많았지 보통의 다른 일들은 최저 시급에서 조금 더 받았다. 최저 시급 및 그 이하는 주로 라틴계 및 아시아 아프리카 이민 불법 노동자들의 몫이다. 출장 뷔페에서 함께 한 어린 아미고(amigo)와 아미가(amiga)들은 주방에서 접시 닦고 설거지 뒷정리만 하였다.

필자는 주로 결혼식장 출장 뷔페 일로 토요일 오전부터 야간까지 12시간 일하면 100불을 받았다. 남미의 어린 노동자들은 최저 시급의 70~80% 정도 받았다. 미국에서는 식당 종업원(버스 보이)들에게 음식을 먹고 나면 팁으로 음식값의 5-10%의 현금을 놓는 것이 일반적 상식이다.

왜 그럴까? 최저 시급이 갖는 최저생계 보장이라는 노동자의 입장과 사업주의 처지도 유연하게 잘 조화 시켰기 때문이다.

미국은 노예를 비롯한 값싼 노동의 이민역사가 깊고 넓은 나라다. 남북전쟁 후 흑인 노예 공급이 막히자 미국은 인도나 중국에서 이민 노동자들을 데려와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만들었다. 120년 전 우리의 선조 121명도 하와이 사탕수수밭으로 처음으로 이민의 발걸음을 내디뎠다.

출장 뷔페 알바를 하면서 중국인들의 우아한 춤솜씨와 기품있는 만찬 모임을 볼 때마다 그 조상들의 고생과 억척같은 삶의 기운이 느껴졌다. 초창기 미국에 이민을 간 노동자들의 후손과 최근의 이민 세대가 잘 섞이지 못하는 근본적 역사적 이유일 것이다.

우리도 이런저런 이유로 이민자들이 계속해서 국내로 유입되고 있다. 힘든 바닷일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외포항에 가면 쉽사리 만날 수 있다. 월급이 만만치 않다는 선주들의 입장도 들을 수 있다.

정부도 이민 노동자들을 우리 경제의 축으로 인정하고 지속적인 유입 확대 정책을 펼치고 있다. 설 자리가 날로 좁아지고 불안해지는 하도급 노동자들의 주장과 파업이 거제 조선 경제 및 사회 전반에 큰 몸살을 몰고 올 것이다.

참고 인내하고 견뎌낸 지난 시절의 궁핍과 고통을 조선 경기 호황으로 거제 시민 모두가 보상받길 원한다.

그래서 해답이 보이질 않는다. 결국, 하도급 노동자들은 전방위적인 압박이라는 지뢰지대에 봉착할 것이다. 캘리포니아나 뉴욕주는 합법이든 불법이든 이민 노동자들이 많다. 최저 시급도 높다.

그러나 미연방 정부의 최저 시급 기준액은 위 두 주 정부의 반값인 7달러 선이다. 우리도 최저 시급이 좀 유연하게 적용이 되길 바란다. 작금의 사태가 익히 들어본 '고통분담'이라는 미봉책으로 마무리될 공산이 크다.

Poco Trabajo, Mucho Dinero 는 참 꺼내기 힘든 이슈다!

거제저널  gjnow32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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