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의 기세가 대단하다. 한낮엔 몇발짝만 걸어도 숨이 턱까지 차 오를 지경이다. 괴상망측했던 장마가 끝났다니 이제 본격적으로 땅도 사람도 모두 구워 삶을 모양이다. 앞으로 한달쯤은 잘 버텨야 요행히 이 계절에 살아 남았다고 할수 있겠다.

매일 인터넷을 자주 접하다 보니 혹 청량한 소식이라도 없나 싶어 이리저리 뒤져봐도 별 신통치 않은 기사만 수두룩하다. 더우기 정치권을 들여다 보면 짜증의 압권이다. 삼복(三伏)에 지친 국민들에게 희망은 커녕, ‘정치’라는 말만 들어도 괜히 머리가 '띵'하고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그 중에서도 검찰을 뺀 이른바 3대 권력기관, 즉 국정원과 경찰, 국세청은 완전히 더위를 먹고 제 정신이 아닌것 같다. 지난 정부 말기에 한동안 정신없이 얻어 터지고 깨지던 검찰은 요즘들어 겨우 제 일을 찾아 하는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대선 전 부터 여직원 댓글 파문으로 그토록 시끄럽던 국정원은 아직도 논란의 한 가운데를 헤매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은밀한 정보기관 본연의 모습을 스스로 팽개치고 아예 정치판에 뛰어 들어 '국가정치원'이 돼 버렸다. 국정원의 이같은 행태에 대해 우리 사회 최고 지성인 서울대 교수들은 시국선언을 통해 이렇게 질타했다.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새 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국정원은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기는 커녕, 또 다른 위법행위로 자기조직을 보호하려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남북정상회담 기록물 공개는 현행 대통령기록물에 관한 법을 위반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제외교의 기본 규범조차 무시하고 국가 최고 기밀에 속하는 기록물을 공개함으로써 정부기관 스스로 나라의 격을 떨어뜨린 자가당착적 행위에 다름 아니었다"

국정원의 원훈(院訓)은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 이후 줄곧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였다. 1998년 김대중 정부는 37년만에 '정보는 국력이다'로 바꾸어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경계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원세훈 前원장은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으로 또 바꾸었다. 한 네티즌은 국정원의 최근 처사를 빗대 '자유(여론조작의 자유)와 진리(집권자와 새누리당)를 향한 무명(요원)의 헌신(댓글달기)'이라고 비꼬았다.

경찰도 '오십보 백보'다. 그저 몇몇 전직 수뇌부의 잘못으로 치부하고 애써 모른척 해봐야 국민들은 이미 다 안다. 검찰수사를 통해 드러난 결론은 지난 대선기간 서울경찰청장의 주도로 진행된 '국정원 여직원' 수사에서 사건의 진실은 의도적으로 축소·왜곡되었다는 것이다.

국정원 출신 김용판 前서울경찰청장을 비롯한 일부 고위직의 빗나간 충성(?)은 경찰에 희망을 걸었던 국민들과 패기 넘치던 수많은 전국 경찰관들에게 크나 큰 실망과 돌이킬수 없는 좌절을 안겨 주었다. 나아가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경찰이 한 단계 도약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 차 버렸다.

현직시절 필자와 알고 지내며 누구보다도 열심히 수사권 현실화를 위해 동분서주했던 한 일선간부는 "저런 인간들이 우리의 상사였고 지휘관이었다는게 통탄스럽습니다. 이제 더 이상 수사권 문제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살겁니다. 왜? 이미 경찰은 20년 전으로 되돌아 갔으니까요" 당분간 국민 앞에 수사권 '수'자 조차 꺼낼 자격이 없음을 반증하는 말이다.

국세청 역시 여름 한복판에 불거진 전현직 수뇌부의 '부패 잔혹사'에 국민들은 전율할 따름이다. 역대 국세청장 8명이 구속되거나 검찰수사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국가 재정징수 담당기관으로서 자격이 없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특정기업에 칼을 들이 댈땐 온갖 굴레를 씌워 거의 절딴을 내다시피 한다. 그러다가 '검은돈'을 뒤로 갖다 바치기라도 하면 어느새 '우리가 남이가'로 변한다.

혹 재수없게 뇌물잔치가 들통나면 요란스럽게 청렴서약을 하고 자정대회를 열어 다시 얼굴에 철판을 깐 다음 뒤론 또 검은손을 내 밀곤 했다. 뇌물공무원들이 하는 짓거리는 청장부터 차장, 지방청장에서 일선 직원까지 끝이 없고 똑 같다. 어느 누가 이런 꼴을 보면서 꼬박 꼬박 세금 낼 기분이 들겠는가.

국정원이나 경찰, 국세청같은 권력기관들이 지난날 수많은 학습을 통해 겨우 5년짜리 정권에 목숨거는 것 보다, 국민에게 충성하는 게 훨씬 '수지 맞는 장사'라는 불변의 이치(理致)를 왜 아직도 깨우치지 못하는지 참으로 딱할 뿐이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저작권자 © 정의로운 신문 거제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