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와 인사철이 겹치는 연말이나 정초에는 유난히 '점'을 보는 사람들이 많다. 대개 새해 운세가 궁금해서다. 이때 쯤 '용하다'는 점집은 단골로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룬다고 한다.

'점'을 보는 이유도 다양하다. 요즈음 같이 경기가 어려운 때는 취직운이나 사업운, 복권당첨 운이 인기다. 올해는 지방선거가 있어 그런지 선거 운세도 꽤 재미를 보는 모양이다. 심지어 이사나 개업 일자까지 소소한 일상사에도 '점'은 빠지지 않는다.

몇해 전 국회 인사청문회장에서 한 의원이 장관후보자를 상대로 희한한 내용을 물고 늘어졌다. 후보자가 소위 명당터로 주소 옮긴 것을 '주술적 행동'이라며 준엄하게(?) 꾸짖은 것이다. "승진 좀 해볼려고", "집안 흉조 막아볼려고" 기(氣) 좀 얻으려다 되레 호통을 당한 내정자는 답변도 못한채 머뭇거렸다. 더 웃기는 건 다 아는 '뻥'질문을 해놓고 마치 한건 올린 것처럼 당당한 그 의원의 표정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양반도 서울에서 유명한 점집 단골손님 이었다.

한 지방선거 출마예정자는 새해 벽두 서울의 이름난 점집에 들렀다가 대기자가 하도 많아 순번표를 받아 왔는데 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부인이 "그냥 포기해라"고 말했다가 큰 부부싸움으로 번졌다는 우스개도 있다.오죽하면 성직자도 신문을 펴면 가장 먼저 찾는 것이 '나의 운세'라는 농담도 있을까.

점은 이제 나이 든 세대의 전유물도 아니다. 젊은이들은 그들 나름대로 점에 대한 문화와 트렌드를 가지고 있다. 유명한 쪽집게 점집이나 로또당첨 명당 이야기는 인터넷 검색 인기순위고, 가입만 하면 수시로 스마트폰에 뜨는 퓨전 점괘는 젊은이들 사이에 상종가다.

서양사람들도 점성술에 매료 돼 있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임에도 일진(日辰)이 안좋은 날은 행사를 철저히 피했고, 레이건 대통령도 점괘가 좋지 않으면 공식 일정까지 취소시킬 정도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거물 정치인이나 유명 연예인들도 종교가 있건 없건 단골 점집 한 두곳은 기본이라니 '점'을 단순한 무속(巫俗)쯤으로 매도하면 뭘 한참 모르는 바보 축에 속한다.

초고속 디지털 시대에도 '점'이 이렇듯 끈질기게 자생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인간은 어떤 면에서 한없이 나약한 존재다. 한치 앞도 예측할수 없는 세상에 살다보니 뭔가에 기대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다. 높은 경지를 이룬 도인(道人)이라면 모를까 누구나 걱정거리가 없으면 점도 보지 않고 신앙(信仰)도 없을지 모른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근본적인 목표와 이유는 하나다. 웰빙(well-being), 즉 잘 사는 것이다. 어렵게 살든 쉽게 살든 삶의 방법만 조금씩 다르지 누구나 잘 살려고 한다. 종교인들은 뭐라 할지 몰라도 '점'보는 것은 교회에 나가 기도하고, 절에 가서 불공드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결국 문명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생활의 불편만 조금 덜어 줄 뿐 궁극적으로 미래의 불확실성까지 해소해 줄 수 없기 때문에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일반 종교를 신봉치 않고 점이나 운세, 사주에 의지한다고 나쁠 것도 없다. 하지만 어떤 결정을 위한 하나의 참고자료면 모를까 전부가 돼서는 곤란하다. '세상사 마음먹기 달렸다'고 하지 않는가. 점괘가 잘 나오면 열심히 살면 되고 나쁘면 좀 조심하라는 뜻으로 보면 된다. 복(福)도 아무에게나 찾아들지 않는다. 운세나 사주에 얽매여 요행을 바라거나 낙담하는 사람보다, 진실한 마음으로 삶을 올바르게 가꾸는 사람에게 저절로 복이 찾아 들 것이다.

다시 선거철이다. 대한(大寒)이 지나도 봄은 아직 멀었는데 지역정가(政街)는 서서히 꿈틀거리는 듯 하다.

평소에는 방약무인(傍若無人)처럼 행동하고 아는 척도 하지 않다가 오늘 당장 땅에 코 박고 읍소한들 누가 표 찍어주겠는가. 당선의 축복을 받으려면 일상생활에서 좋은 일 많이 해야 한다. 최소한의 복 받을 짓도 안한 인물이 혹 점괘나 믿고 나서지는 않았는지, 정치병에 중독 돼 한바탕 휘적거리다가 폐인이나 안될런지 괜한 걱정이다.

이 참에 선거에 나서는 사람들은 "권세 휘두르다가 신세 망치고(權多身圄), 이름 많이 날리다가 몸마저 더럽힌다(名多身汚)"는 옛말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민심을 헤아리지 못하고 '완장'에 눈이 어두운 채 운세나 요행을 바란다면 더 더욱 그렇다. 올바르게 처신할 목민관의 각오가 없다면 아예 처음부터 나서지 말아야 주변사람도 편할 것이다.

또 있다. 툭하면 "나라꼴이 엉망"이라고 정치인을 술안주 삼아 탓하지 말자. 우리가 잘 뽑고 제대로 감시했더라면 그렇게 됐을까. 다만, 민초의 힘으로도 어쩔수 없는 불법이나 부정이 있었다면 그건 얘기가 다르다. 있으나마나 하거나, 남의 말에 귀 닫고 고집불통처럼 제 잘난 맛에 사는 정치인들 덕분에 지금 우리는 얼마나 피곤한가.

잘 찍자. 제 할일은 다하지 않고 세상 탓만 하는 사람들은 "天下興亡 匹夫有責"(천하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책임도 있다)의 진리를 깊이 되 새겼으면 한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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