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천의 세상보기] 아웃도어(outdoor) 유감


△서영천/ 본지 사장

「아침에 샤워를 하고 나오다 사타구니가 시려 살펴보니 살갗이 벌겋게 부풀어 있었다. “왜 이렇지”하는데 옆에 있던 아내가 “아이구 청바지에 쓸렸네”라며 안쓰럽게 쳐다 봤다.

지난 주말 고향 친구들과 지리산을 다녀왔다. 여름 계모임에서 누군가 ‘올 가을에 단풍구경 가자’는 말에 선뜻 맞장구는 쳤지만 서로 바쁜 탓에 차일피일 하다 나선 깜짝 여행이었다.

그런데 말이 단풍구경이지 지리산은 아직 단풍철이 아니었다. 햋볕 잘 드는 언덕배기 몇 그루만 겨우 단풍 흉내를 낼 뿐이었다. 산에는 단풍보다 울긋불긋 차려입은 사람들과 차량으로 온 종일 북적댔다. 모두들 화려한 원색 아웃도어(outdoor) 차림에 무엇이 들었는지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었다. 등산복을 제대로 안 입은 사람은 나와 아내뿐이었다.

평소 산을 좋아하고 가끔 산행도 즐기지만 변변한 등산복도 없다. 솔직히 완전무장 한 채 고봉(高峰)을 오를 일이 거의 없어서다. 그날도 청바지에다 면티를 입고 조끼 한 장 달랑 걸친 상태였다.

산마을로 가기 위해 탐방로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는 도중에 마주치는 사람들도 한결같이 아웃도어 스타일이었다. 아내는 거의 모두가 해외 유명브랜드 제품이라고 했다. 청바지 차림으로 이곳에 온 사람은 우리뿐이라면서...」

요즘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아웃도어 등산복이 평상복이나 여행복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 산이든 바다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가벼운 산책을 나가도 아웃도어 차림이다.

최근들어 시들하지만 한때 중고생들에게 가장 인기있었던 한 아웃도어 브랜드는 거의 모든 국민들이 한 벌씩 갖고 있어 ‘국민복’ ‘단체복’으로 불렀다. 게다가 우리나라 노숙자들도 다 입고 있다해서 일명 '노숙페이스'라고 부르기도 했다.

해외여행지에서도 아웃도어 집착은 변함없다. 편하다는 이유로 해외 공항에서부터 유명 관광지와 도심으로 몰려다니는 한국인들은 천편일률적으로 아웃도어 등산복을 입는다. 해외 여행 관계자들 사이에서 '몸에 딱 붙는 원색컬러의 등산복장'이 한국 단체여행팀의 상징이라고 할 정도다.

여행사 관계자들은 단체 해외여행객들을 인솔하면서 외국 도심을 구경 할 때는 등산복을 입지 말도록 당부까지 하고 있다.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고 활보하는 모습이 도시 미관을 망친다는 현지인들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이다. 외국에 나가 주위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편하고 고가'라는 이유로 한 옷차림이 '어글리 코리안' 이란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시장이 급성장 하다보니 유명브랜드의 아웃도어 제품 가격에 대한 불만 역시 급증하는 모양이다. 일각에서는 해외 아웃도어 브랜드 기능성 제품이 국내에서 50~120% 더 비싸게 팔리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렇듯 값비싼 아웃도어 등산복이 국민 나들이복, 일상복이 된 것은 아웃도어업체들의 지나친 광고도 문제지만, 공중파 매체의 각종 예능과 드라마 프로그램에서 아웃도어 의류를 일상복으로 입는 모습을 자주 방영해 국민을 집단 최면화시켰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아웃도어(야외) 활동은 유럽에서 일찍이 발달했다. 유럽에서도 야외에서 착용하는 아웃도어 제품은 화려한 원색 컬러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이는 설산(雪山)이 많은 지리적·환경적 특성을 적극 고려한 것이다. 즉, 기능성 보다 조난을 당했을 때 쉽게 눈에 띄기 위해서다.

무엇보다도 유럽인들은 아무데서나 아웃도어 제품을 착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도심이나 근교에서 등산복 차림을 하면 때와 장소에 맞지 않는 이상한 옷차림으로 생각한다.

어떻든, 편리한 기능성이 장점인 아웃도어 제품이 우리사회에서 인기 끄는 걸 굳이 참견 하는게 아니다. 신발에서부터 모자까지 고가의 아웃도어 브랜드로 치장해야만 등산을 하고, 편하다는 이유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짜리 제품을 입고 어슬렁대는 건 왠지 조화롭지 못하다.

비록 가난했지만, 검소하고 부지런하던 우리네 생활습속이 유별나게 편한 것만 찾고 겉모습의 화려함에만 치중하는 게 아닐까. 정작 넉넉해야 할 마음마져 ‘겉치레의 풍요’에 구속돼 가는 건 아닌지 한번쯤 되돌아 볼 일이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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