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불황이 깊어지고 있는 거제에서 최근 모 대형조선소 차장이 210억원의 회삿돈을 빼돌려 충격을 준데 이어, 이번엔 원룸 수십채를 보유한 건물주 부부가 세입자를 속여 전세보증금 110억원 가량을 가로 챘다는 주장이 제기 돼 큰 파장이 일고 있다.

거제경찰서(서장 김영일)는 지난 11일 거제시 옥포동에 사는 원룸세입자 80여명이 건물주 A(51‧거제시 능포동)씨 부부를 상대로 사기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해 수사중이라고 15일 밝혔다.

경찰은 이 사건 고소인들이 “지난해 말부터 이미 전세 계약기간이 끝나 보증금을 받아야 하는데 건물주 A씨 등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잠적해 연락이 두절됐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

또 전세 계약기간 만료가 임박하거나 아직 계약기간이 남았지만 건물주 A씨가 연락이 되지 않자 위기감을 호소하는 30∼40명의 세입자들이 추가로 고소장을 제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범죄수사팀 19명으로 수사전담팀을 구성한 경찰은, 이번 사건의 피해금액이 큰 이유는 건물주 A씨 부부가 2세대를 제외한 나머지 세대에게 이른바 ‘올 전세’ 계약금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또 이들 부부가 전세계약시 세입자들을 상대로 “다른세대는 모두 월세를 살고 있다. 올 전세로 계약하자”면서 안심시키는 한편, 단 한세대도 ‘확정일자’가 없다는 점에 상당한 범죄 혐의점을 두고 있다.

건물주 A씨는 부인 B(여‧42)씨와 지난 2012년부터 거제시 옥포동에 13채, 능포동 2채, 장평동에 1채 등 16채의 원룸을 소유하고 세입자들을 상대로 임대업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잠적 상태인 이들 부부를 지난 14일 출국금지 조치하고 주거지 및 대구 본가 등지에서 행방을 찾고 있으나 아직 정확한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15일 오후 경제범죄수사팀 사무실에서 고소인 40명을 상대로 피해경위에 대한 진술조서를 작성하는 한편, 아직 고소장을 제출하지 않은 나머지 세입자에 대해서도 조만간 피해경위 파악에 나서기로 했다.

한 세대당 전세보증금이 적게는 5천만원(원룸)에서 많게는 1억원(투룸)이 넘는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건물주 A씨가 건물 신축과정에서 대출 등으로 금융권에 근저당이 설정 돼 있어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의하더라도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일부 원룸은 이미 은행 대출이자를 연체중이고, 청소업체도 돈을 받지 못해 청소를 중단했으며 엘리베이터 관리비를 내지 않아 운행이 중지되고 건물의 각종 공과금 체납도 진행중에 있어 세입자들의 위기감이 점점 고조되고 있다.

고소인들은 건물 하자에 대해서도 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은 A씨가 건물 준공후 방쪼개기와 불법 증축 등을 통해 세대수를 늘이는가하면, 비가 오면 방안에 물이 샐 정도였으나 건물주가 연락이 되지 않아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고 호소했다.

이번 사건은 올 초부터 일부 세입자들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문이 옥포시내에 퍼지자 A씨 소유 원룸 세입자들이 SNS 등을 통해 정보를 공유, 긴급모임을 갖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공동 대처해 나가기로 뜻을 모았다.

한 30대 독신 세입자는 "한달에 40만이 넘는 월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5천만원을 내고 전세를 산 것"이라며, "만약 건물이 경매에 넘어간다면 전세금을 몽땅 떼일  판"이라고 울먹였다.

이처럼 피해를 주장하는 고소인(세입자) 대부분은 혼자 지내는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근로자나 젊은 부부들인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경찰은 건물주 A씨 등에 대해 일단 사기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진행 하되, 증거확보 등 수사전개 상황에 따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죄 적용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

경찰은 이와함께, 일부 공인중개사가 이같은 문제를 사전에 알고도 부동산 중개행위를 했다는 고소인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공인중개사법 위반 여부를 따져 볼 계획이다.

한 경찰관계자는 "언젠가 터질 사건이었으나 최근 조선 불황 여파로 조금 일찍 터진 것 같다. 건물주 A씨는 대출을 받아 무리하게 건물을 늘려가며 '깡통원룸'이라는 폭탄을 안고 있었다“면서, “조선경기가 좋을때는 전세계약자 돈을 받아 나가는 전세만료자에게 돌려주는 식으로 자금융통이 됐다. 하지만 최근들어 많은 근로자들이 거제를 빠져 나가면서 세입자 역시 크게 줄어들자 결국 폭탄이 터진 셈“이라고 풀이했다.

한편, 공인중개사 거제지회 한 관계자는 "이번 옥포사건은 규모가 커서 빨리 소문이 났지만 최근 고현 ,장평, 옥포, 아주 등지에서 원룸 몇동씩 소유한 일부 건물주들이 비슷한 곤경에 처해 있다"고 귀뜸했다.

그는 "조선경기가 좋을때는 은행대출까지 받아 앞다투어 원룸, 투룸을 신축했다가 불황으로 세입자들이 대거 빠져 나가자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법적인 갈등을 빚거나, 대출이자를 못내 건물을 날릴 형편에 처한 사람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서영천 대표기자  gjnow32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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