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돈묵 거제대교수

면도를 한다. 하루하루 살아가듯 면도를 한다. 출근 전 아침이든, 퇴근 후 저녁이든 턱밑이 껄끔껄끔하다 싶으면 나는 면도를 한다. 맨손으로 얼굴을 쓰다듬다가 감촉이 거칠게 느껴지면 나는 어김없이 면도를 한다.  

어쩌다 면도를 잊고 출근한 날, 바쁜 일과 중에서도 문득 거친 수염에 손이 닿으면 온 종일 마음에 밟히어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무슨 시간을 내든지 방법을 모색하여 기어이 면도를 하고 나서야 마음이 편안하다. 이런 때를 대비해 연구실에 면도기까지 마련해 두었다.

매일 한 번씩 하는 면도이니 대충해도 되련만 손으로 문지르면서 수염을 깎는다. 건전지를 사용하는 전기면도기는 깔끔히 깎이지 않아 마음에 차지 않는다. 나는 일회용 면도기를 자주 사용한다. 이것은 사용하기 간편해서 좋고 말끔히 깎을 수 있어 좋다. 우리 집에는 거울이 있는 곳에는 으레 일회용 면도기가 있다. 세면장에 들렀다가 턱수염이 길다 싶으면 시도 때도 없이 면도를 하기 때문이다. 면도한 지 얼마 되지 않아도 턱밑 어느 부위가 덜 되었다 싶으면 다시 면도를 한다.

턱의 수염은 돋아난 결이 있다. 대부분 위에서 밑으로 향해 있다. 결을 따라 위에서 밑으로 방향을 잡으면 별 탈 없이 수염을 깎을 수 있다. 여간하여서는 상처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면도하고 한나절이 지나면 면도하지 않은 듯이 얼굴이 거칠고 거북스럽다. 결대로 쉽게 면도하고 나면 왠지 모르게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그래서 나는 아예 면도기를 밑에서 위로 거슬러 올리는 면도 방법을 쓴다. 수염의 결을 거역하고 거꾸로 밀어야 손으로 피부를 문질러도 수염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고 깔끔하다.

그러나 수염의 결을 거부하며 밑에서 위로 면도를 한다는 것은 위험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조금만 방심하여도 상처를 입는다. 얼굴의 말끔함을 위해 결을 무시하고 거꾸로 밀다보면 면도칼에 살이 밀리고 피부가 상하기 싶다. 턱 주위가 벌겋게 되거나 상처가 나서 지저분하게 된다. 이런 날은 마음이 편치 않고 심란하다.

사실 나는 면도를 하다가 자주 상처를 입는 편이다. 면도한 곳이 말끔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 매번 밑에서 위로 면도한다. 위험이 따르더라도 깨끗하게만 된다면 어떠한 방법이든 동원하여 이를 도모한다. 그러다 보니 상처가 자주 난다. 한번은 턱 주위에 상처를 입은 채 모임에 나갔더니 동료는 안됐다는 표정으로 내게 면도 방법의 수정을 요구했다.

“위에서 밑으로 하면 상처가 나지 않는데….”

물론 알고 있다. 알면서도 내 성미가 그리 편히 살지를 못하고 언제나 제일을 추구하여 온 것이다.
이러한 성미는 면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가정에서 조그마한 일을 처리하든, 직장에서 큰일을 처리하든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에는 마음이 편치 않다. 서재에 책을 한 권 꽂아도 질서에 의해 꽂아야 하고, 조그마한 도구 하나도 반드시 제 자리에 있어야 한다. 옷을 입어도 반드시 정장을 요구하며, 길을 가더라도 최단거리를 가늠하여 선택하고, 여행을 해도 확실한 일정을 정해야 대문을 나선다.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더라도 메모하지 않고서는 불안하고, 남의 작품을 보더라도 모두 잠든 밤 조용히 서재에 앉아야 가능하다. 책을 찍더라도 본인이 의도한 대로 되지 않으면 다시 편집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이러한 성미 탓에 나는 주위로부터 오해를 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더러는 눈감아 주고 대충 넘기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일을 꼭 바로잡으려 나섰던 것이다. 대부분 관행으로 이루어져 왔던 일이라 하더라도 그게 아니다 싶으면 바로잡으려했다. 특히 이런 경우에는 거친 항의도 받기 일쑤였다. 항의의 물살이 지나고 나면, 이젠 나 자신에게 혹독하고 타인에게는 최대한 너그럽게 하자고 다짐도 해본다. 허나 쉽게 생활이 바뀌지 않는다. 매사에 넉넉한 마음으로 흐트러진 생활을 하면 좀 달라질까 하여 연구실도 한두 달 정리하지 않고 생활해 본다. 그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책들의 소재를 파악할 수 없어 시간만 낭비하는 것이다.

늘 자신의 마음을 너그러운 쪽으로 돌려놓자고 되뇌면서도 그리 하지 못한다. 아직도 젊은 혈기가 남아 흐르고 있기 때문이겠지 하며 자위도 해 본다. 몇 해의 세월을 더 불사르고 나면 마음 한 구석에서 여유 있는 삶이 둥지를 틀겠지 하고 달래도 보지만, 주위에서는 그렇게 기다려 주지를 않는다. 벌써 머리는 반백을 훨씬 지나 있고, 황망하게도 시내버스를 타면 학생들이 남의 속도 모르고, ‘할아버지 앉으세요.’ 한다.

턱밑을 깔끔히 하기 위해 면도를 거꾸로 하며 최선을 기하다 자주 상처를 입듯이, 삶에 있어서도 너무 최선을 추구하다보니 상처를 많이 입는다. 면도를 하다 당한 상처야 며칠이 지나면 아물지만, 인간사에서 받는 상처는 바로 지워지지 않고 때로는 영원히 가슴속에 각인되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제 성미대로 행동하다 제 스스로 받는 상처야 그래도 봐 줄 수 있지만 엉뚱하게 남의 가슴에 피멍들게 하는 상처는 오래 지워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목표를 정해 놓고 그것의 달성을 위해 몸부림치다 보면 본의 아니게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바로 내가 지금까지 추구해온 삶들이 이런 것이 아닐까.

사실 요즈음 연구실을 깨끗이 정리하고 산다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치 않다. 전에는 그런 소리를 들으면 고개를 끄덕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아직도 내게 완벽을 추구하는 제일주의 사고가 남아 있다는 소리로 들리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 자신에게 철저히 혹독하자던 말도 바꾸어 매사에 최대한 너그럽자고 다짐해 본다. 그런데도 오늘 연구실에서 면도하는 나를 보고 던진 친구의 말은 깊은 의미를 안고 내 뇌리를 도려내고 있다.

“이 친구야, 세상 좀 쉽게 살아. 깔끔 좀 그만 떨고….”

<월간문학>. 199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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