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돈묵 거제대교수

사실 바다낚시는 거제도에 와서 처음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전에 호도라든가 대청도를 돌면서 바다에 낚싯대를 담가보기는 하였으나, 그것은 남의 것을 잠깐 만져본 것이어서 어디까지나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의미를 줄 수 없는 것이다. 미끼는 무엇을 달아야 하는지, 또 바다 물고기들은 입질을 어떻게 하는지조차 모르면서 한순간 부풀어 오른 호기심으로 낚시를 던져 보았던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나는 일찍이 민물낚시에 대해서는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내가 다시 학문의 길로 들어서기 전 몇 년의 기간은 낚시광이었다고 해도 그 말을 수습해 들이기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처음에야 친구를 따라 구경삼아 갔던 것이었으나 첫날의 조황(釣況) 기록은 나를 이내 낚시터에 묶어놓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어떠한 일이든 시작하면 중도에 포기하기를 죽기보다 싫어하고 무슨 일이든 결판이 날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나의 성격이 어쩌면 낚시에 적합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까지 팽팽하게 긴장된 일상 속에서 탈진된 영육(靈肉)을 끌어내어 자연의 품속으로 들어가 낚싯대를 강물에 드리우면 언제나 그렇듯 무념무상의 경지가 된다. 일상의 긴장감들은 언제인지도 모르게 낚싯줄에 매어 팔매질쳐지고 만다.

그러나 거제도에 와서 처음 바다낚시를 하면서 나는 이런 낚시의 진맛을 맛볼 수가 없었다. 민물낚시대처럼 예민하게 휘어지는 맛도 없었고 팽팽히 드리워진 낚싯줄에서 윙윙거리며 우는 낚싯줄의 울음소리도 들을 수가 없었다. 어부의 손마디처럼 투박하게 생긴 낚싯대에게 물고기들은 이내 포기하기가 일쑤였고, 낚싯대 역시 거침없이 찍어내듯 쉽게 물고기들을 끌어올렸다. 그것은 바다낚싯대가 민물낚싯대처럼 감칠맛이 나도록 가늘게 제작된 것이 아니고 투박하리만큼 굵게 만들어진 데서 오는 결과가 분명했다.

처음 바다낚시를 하면서 나는 저토록 힘이 좋은 물고기들을 민물 낚싯대로 끌어올린다면 얼마나 긴장감이 감돌고 낚시의 손맛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이런 생각을 하던 나는 이러한 나의 자그마한 음모를 실행에 옮겨 보리라는 각오로 민물 낚싯대를 가지고 바닷가로 나갔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분명 물고기는 입질을 해대는데 나는 한 마리도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좁은 물에서 살던 물고기보다 넓은 바다를 휘젓고 다니면서 기(氣)를 키워 온 바다고기들의 힘을 민물 낚싯대는 결코 이겨낼 수가 없었다. 물고 늘어지는 물고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분명 낚싯대를 끌어올렸으나 고기는 딸려 나오질 않았다. 낚싯대가 물고기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휘청 휘청거리다가는 물고기를 떨구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바닷가에서 물고기와 씨름을 하였으나 나는 여지없이 패배자가 되고 말았다. 오늘은 많이 잡아 올리고 손맛도 보리라던 나의 기대는 무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어두워진 바다를 뒤로 하고 빈 고기통을 짊어지고 언덕을 넘어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깊은 생각에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 바다낚시는 바다낚싯대로 해야 하고 민물낚시는 민물낚싯대로 해야 한다. 둘 사이에 차이가 있도록 제작된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 것도 모르고 얄팍한 지식으로 나름대로 판단하고 좁은 소견으로 민물낚싯대로 바닷고기를 낚으려 했던 자신이 마냥 우습다.

이 세상의 모든 물상들이 다 그럴 것이다. 만들어질 때부터 나름대로 남과 다른 가치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 제자리를 찾지 못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제 가치를 제대로 챙기면서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어떠한 것이든 제 자리를 찾았을 때 비로소 빛이 나는 것이고 가치가 있는 것이다.

돼지우리를 아무리 아름다운 구슬로 장식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 인간 세상도 다 그렇다. 인간들 중에는 자신의 분수에 맞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사업가는 사업의 현장에 있어야 하고, 의사는 병원에 있어야 하고, 교수는 강단에 서야 하며, 학생들은 배움의 터인 학교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 이런 진리가 일그러진 경우가 얼마든지 눈에 뜨임은 슬픈 일이다. 아무리 능력이 있는 학자라 해도 생산현장에서야 근로자를 따를 수 없듯이 자신의 신분에 맞는 자리에 가 있을 때 제 기능을 다 하는 것이고 빛이 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처지와 분수를 알지 못하고 경거망동을 일삼고 겨우 달팽이 촉각에 올라가 천하를 정복한 듯이 노래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불행일뿐더러 우리 모두의 불행이다. 어느 사회나 그 사회를 지탱하는 윤리가 있고 도덕이 있을진대, 이런 기존의 것들을 자신의 이득과 사욕을 위해 부정해버리고 날뛴다면 결국 자기 자신의 불행임을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하루 종일 손맛 한번 못 보고 돌아오는 낚시질이었으나 그리 기분이 상하지 않은 것은 솔잎 먹는 송충이는 솔잎 먹어야 살고, 갈잎 먹는 황충이는 갈잎 먹어야 산다는 하나의 진리를 새삼 깨달았음이리라.

<호서문학>,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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