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돈묵 거제대교수

벌써 서른다섯 해 전은 되는 일인가 보다. 그 해 겨울은 몹시도 추웠다. 기온만이 내려간 것이 아니고 바람까지 매서워 체감온도는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추위는 조금은 누그러졌다 싶으면 다시 차디찬 얼굴로 나타나 창문 언저리를 서성였다. 

그 때 나는 지독한 방황에 빠져 있었다. 자신의 장래에 대해 확실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게 불확실한 처지에 있을 때에 온갖 방황의 요소들은 한꺼번에 다가왔다. 어느 하나 수월하게 나에게 답을 주지 않았다. 글쟁이의 삶을 살 것인가, 교직의 길을 걸을 것인가, 언론의 길을 걸을 것인가, 출판업을 할 것인가, 농장 일을 할 것인가, 심지어는 정치에 몸을 담을 것인가 하고 고심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결혼의 문제도 만만치 않았다. 어른들은 내게 그래도 양가의 집안이 어느 정도 균형은 맞아야 한다며 은근히 압력을 넣었다. 그것은 당시 내가 만나고 있는 여성의 집안이 그리 탐탁치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게 별반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내가 온전한 직업을 갖지 못한 상태임을 부각시키며, 아내 될 사람이 일을 하는 여성이면 어떻겠느냐며 회유를 하고 들어왔다. 

이런 끝없는 방황 속에서 나는 자립의 길을 선언했다. 우선 집에서 탈출하여 행정기관의 글 나부랭이를 써 주며 끝없는 방황으로 들어갔다. 한 기관의 일이 아니고 여러 기관의 일을 함께 해결했다. 심지어는 정식 기자도 아니면서 매일 기사를 써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일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둘이서 같이 했다. 우리는 한곳에 숙소를 정하고 밤낮을 함께 있으면서 원고지를 죽여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모임에 다녀오겠다고 나간 동료가 교통사고가 났다. 전화를 받고 반사적으로 뛰쳐나왔지만, 찬바람이 먼저 넓은 자락으로 나를 감아 버렸다. 한번 감기고 나면 정신이 번쩍 들었다. 택시에 올라보니 그 곳에도 찬 기운은 먼저 들어와 있었다. 병원으로 가자고 말을 해 놓고서야 겨우 안심이 되었으나, 그 순간 다시 바람은 차창에 흙먼지를 뿌리고 지나갔다. 

응급실 안은 을씨년스럽다. 응급환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몇 되지 않지만, 환자를 따라 온 사람들의 모습이 오늘따라 이상하다. 초조한 빛이 없다. 그냥 이웃집 아이 문병 온 모습이다. 누구의 보호자인지도 모르게 환자와는 이만큼 떨어져서 수군거리고 있다. 그들의 시선은 응급실 저편 귀퉁이로 향하고 있다. 그 수군거리는 표정들이 야릇하게 나를 흥분시켰다. 대개 그런 경우에는 당사자가 모르게 한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당사자가 민망스러울 정도로 멸시하는 눈빛들이기 마련인데, 그 모습들이 천차만별이었다. 딱 집어내어 한마디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의 표정이 다양했다. 어떤 이는 경악스러운 표정이었고, 더러는 넋을 잃고 바라보는 이도 있었다.

사람들이 흘깃거리며 바라보는 곳에는 한 남자가 침대에 누워 링거를 맞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서 한 여인이 환자를 향해 앉아 있을 뿐이었다. 눈에 비친 그 여인의 행색은 매우 남루한 차림이었으나, 미동도 없었다. 그 모습은 사람이 아니고, 밀랍인형일 수도 있다는 착각까지 하게 했다.

교통사고 연락을 받고 달려온 나는 더 이상 그 이유를 찾을 겨를이 없었다. 우선 그를 찾아야 했다. 더욱이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지만 부부 사이에 상당한 갈등이 있는 동료라서 나는 스스로 보호자가 되어야 했다. 동료는 응급조치가 끝나 있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부인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나 그녀는 올 수 없다며 단호히 거절하는 것이었다. 

좋은 집안끼리 혼사가 이루어졌다고 주위의 부러움을 샀던 그들의 결합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나는 동료를 병실로 옮기면서 부인이 오지 않겠다고 한 말을 환자에게 전달하지 못했다. 영락없이 나는 간병을 맡아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병실을 정리하던 중에 동료의 구두를 응급실에 떨어뜨리고 왔음을 깨닫고, 다시 찾으러 갔다. 응급실 입구에서 마주친 간호사들은 아직도 수군거림을 계속하고 있다.
  “지하도에서 데려온 행려환잔데, 벌써 두 시간째야. 저렇게 물고서.”

응급실 안의 분위기는 아직도 야릇함이 풀리지 않은 상태다.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링거 맞는 사람 옆의 여자에게 머물러 있다. 아까의 모습 그대로다. 조금 다른 것은 구경꾼이 좀더 많아졌다는 점이다. 나도 고개를 빼고 그들을 살폈다. 바로 그거였다. 사람들의 입이 참을 수 없게 만든 그 상황은 바로 그거였다. 모포를 덮고 있는 환자는 추위에 떨고 있었고, 그 환자의 몸에 붙어 있는 링거 줄은 여자의 입에 매달려 있었다. 추위에 떠는 남자의 주사액을 따뜻하게 덥혀 주기 위해 여자는 두 시간이 넘도록 링거 줄을 입에 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다른 아무것도 없이 제 몸 하나로 남자를 사랑하는 거였다. 그 여인의 체온이 링거 줄을 타고 남자의 몸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으로 내게 와 닿았다. 

순간 나는 벼랑에 선 자신을 발견했다. 이 벼랑 끝에서 방황을 마쳐야 한다는 절박한 생각이 불현듯 일었다. 내가 서 있는 가파른 벼랑 밑의 두 세계 중 내가 선택해야 할 길이 보였다. 비록 남루한 옷을 입고 거리에서 잠자리를 찾아도 그 삶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오늘은 처음으로 그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아내에게 들려주어야겠다. 나의 방황을 마무리하게 했고, 아내가 내 곁으로 오는 데에 지대한 힘을 발휘했던 숨겨진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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