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저널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
볼펜
편집부 | 승인 2011.04.12 09:55

   
강돈묵 거제대교수
볼펜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이 신비스러운 것이 언제 우리나라에 수입되어 사용하게 되었는지도 전혀 알지 못한다. 중학교 이 학년 때에 나는 이것을 처음 사용했다는 희미한 기억이 있을 뿐이다.

처음 이것을 손에 넣었을 때, 왜 그리도 신기했던지. 아마 그 심정을 오늘날 젊은이들은  추측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매일 심이 부러질세라 조심하며 깎아대던 연필만을 사용하던 내겐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그냥 손끝으로 누르면 되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집어넣고, 부러질 염려가 전혀 없다. 그 당시 내가 아끼는 물건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이 볼펜이었다. 나는 이 볼펜을 매우 사랑했다. 다른 친구들이 갖지 않은 색색의 볼펜을 가졌을 때는 몰래 숨겨 놓고 만져보곤 했다.

그 후 볼펜이 학생들에게 필기도구로 보편화되면서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이것이 변말로 사용되었다. ‘볼펜’이란 남자 친구를 의미한다. 볼펜의 초성이 ‘ㅂ’, ‘ㅍ’이고, 남자 친구를 의미하는 ‘boy friend’의 이니셜 발음이 같은 데서 온 것이 분명하였다. 특히 이 말은 바람기가 있거나 놀기 좋아하는 여학생들 사이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또 같은 뜻으로 ‘트랜지스터’가 있다. 이 말은 ‘트랜지스터라디오’에서 왔다. 듣고 싶으면 틀었다가 듣기 싫으면 끄듯이, 남자 친구를 자신들의 맘대로 하고 싶다는 소망의식에서 나온 변말이리라.

어른이 되어 들어본 변말에 이런 것이 있다.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이란 말이다. 요즈음 부인들은 자신의 남편 외에 애인을 하나씩 두고, 그 남자가 연하이면 ‘금메달’이고, 동갑내기이면 ‘은메달’이고, 연상이면 ‘동메달’이라 한다는 것이다. 전에는 가정의 정숙한 부인이라면 입에 담기조차 꺼리던 말인데 이젠 부담 없이 사용하고 있다. 무조건 남자는 여자보다 한두 살 위여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었는데 많이도 변했다. 연상의 남자가 동메달으로나마 인식되고 있다는 것은 애인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났다는 의식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일로 접어두기에는 좀 그런 것이, 내가 남자라서만은 아닐 것이다. 어린 학생들의 ‘볼펜’, ‘트랜지스터’ 하는 정도는 애교로 볼 수 있지만, 가정을 가진 부인들이 사용하는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은 좀 그렇다. 오늘날 세태를 보는 듯하다.

‘볼펜’하면 가슴 두근거리던 학창시절이 생각난다. 모두가 다 신비스럽고, 감동을 자주 하던 그 시절. 오뉴월 뙤약볕에 고개를 넘다보면 산바람이 그리도 좋았다. 산딸기 따먹으며 넘던 고갯길이 생각난다. 푸름 속에서 발갛게 고개를 내민 산딸기는 순이 같았다. 수줍음을 타는 듯하면서도 확실한 자신의 모습을 내보이는 것이 그랬다. 우리는 늘 같이 다녔다.

볼펜을 처음 가졌을 때보다도 더 벅차게 순이는 설렘으로 다가왔다. 딸기를 따다 가시덤불이나 숲 사이로 모습이 가려지면 서로 찾았다. 더러는 모기가 있어도 개의치 않았다. 딸기의 맛은 우리를 매료시켰다. 한참 딸기를 따먹다가 늦게 집에 돌아오면, 콩밭 매고 오신 어머니의 꾸지람이 기다리기 일쑤였다.

고향 마을에 가보면 내가 산딸기 따먹던 산길이 없어졌다. 어린 날의 꿈이 담긴 산길은 없어지고 러브호텔이 들어섰다. 가슴 조이며 며칠 밤을 지새우던 어린 날의 추억은 어디에도 없다. 산딸기처럼 붉게 타오르던 순이의 볼 빛도 찾을 길이 없다. 물론 순이와 같이 따던 산딸기나무도 없어졌다. 옛날 순이와 같이 가슴 콩닥거리며 산딸기 따먹던 그 세대들은 이제 러브호텔의 침대 위에서 딸기를 따는데 정신이 없다. 오직 딸기의 맛을 침대 위에서 즐길 뿐이다. 별로 가슴 설렐 것도 없이 순간의 절정과 순간의 쾌락을 위해 요즈음 사람들은 러브호텔에서 딸기의 맛을 즐긴다. 그 맛의 뒤에는 얼마나 많은 고통이 따르고, 허무가 도사리고 있는지 차마 의식도 않은 채 그들은 딸기 맛을 즐긴다.

최근 신문보도에 의하면 초등학교에서 이십 미터 떨어진 곳에 러브호텔이 들어서서 아이들의 정서를 짓밟고 있다고 한다. 어린아이들에게 저 집이 무엇 하는 곳인지 설명하기가 곤혹스러워 쩔쩔매는 젊은 여교사의 모습을 보면서, 일그러진 우리 스스로의 자화상에 얼굴이 붉어짐을 느낀다. 산딸기 따며 애틋하게 그리던 순이의 모습은 다 어디 가고, 러브호텔 침대 위에 벌렁 드러누워 있는 자신의 자화상에 문득 놀랜다. 이것이 오늘의 성문화의 현실인 것이다.

스스로 반성한다. 이것이 우리 기성세대들의 허물어진 모습이다. 이제는 서둘러 자신들의 삶을 추스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대로 가다가는 틀림없이 이십여 년 후에는 이런 일도 일어날 것이다.
한 여인이 남자 친구와 러브호텔을 들어가게 되었다. 호텔입구에서 남자는 갑자기 담배를 한 대 피우고 갈 테니, 먼저 들어가라 한다. 여인 혼자 프런트에 가서 숙박계를 쓰고 있는데, 뒤에 온 여자가 볼펜 좀 빌려달라는 것이다. 볼펜을 넘겨주고 기다리기도 그렇고, 또 몇 푼 되는 것도 아니고 하여 여인은 그냥 주어버리고 객실로 올라갔다. 객실로 올라와 한참동안 기다리다 남자가 오지 않자 이 여인은 프런트에 전화를 한다.

 “저하고 같이 온 남자 혹시 그곳에 없어요?”
 “아, 그 손님요? 아까 뒤에 온 여자 손님하고 같이 들어갔는데요.”
 “그래요? 그러면 이곳에서는 메달 조달하지 않나요?”
 “메달요? 왜요. 하지요. 어떻게 할까요. 건강한 금메달 하나 보내드릴까요? 둘 보내드릴까요?”
<목소리>, 2000. 12.

편집부  news@geojejournal.co.kr

<저작권자 © 정의로운 신문 거제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편집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