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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고백 3서영천 / 거제저널 대표기자
거제저널 | 승인 2022.03.12 21:16

언론에 몸담은지 올해로 10년이다. 누구나 살다보면 가끔씩 지나온 삶을 되돌아볼 때가 있다. 그게 좋은 기억이건 싫은 기억이든...

환갑을 넘기면서 마음 한편에 똬리를 틀고 있던 '가슴앓이'는 더욱 진하게 다가왔다. 다만 독자에 대한 예의와 부끄러움, 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무엇 때문에 여태껏 망설여왔다.

또 글 재주가 뛰어나거나 문학적 소양이라도 있으면 다른 방식으로 탈고(脫稿)할 수 있었겠지만, 거기엔 늘 미치지 못함이었다.

그러니 기자에게 주어진 '세상보기(칼럼)'를 통해 이젠 주저없이 털어버릴 때가 된 것 같다. 해량(海諒)해 주었으면 한다.

고백 #1

기자는 40년 전인 1982년 강원도 철원의 모 사단 수색대원이었다. 어쩌다 행정반에 근무했다.

그런데 매일 중대장에게 구타를 당했다. 뚜렷한 이유는 없었다. 육사 34기 출신의 28살 고 모 대위인 중대장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언제나 술에 취해 오토바이를 타고 밤늦게 숙소에 들어오면 행정반 대원 1~2명은 그냥 밥이 돼야 했다.

그는 거의 매일 병사를 때리는 재미로 살다시피했다. 폭행은 무자비하고 교묘했다. 군화를 신은 채로 가슴과 얼굴, 정강이를 수십,수백차례씩 걷어찼다. 상처가 나면 약까지 발라주었다. 괴이하게 웃으면서... 사람이라기보다 짐승에 가까웠다. 장교들도 이를 알면서 입도 벙긋 못했다. 폐쇄적이고 외딴 조직에서 그는 거대한 괴물이었다.

관사 청소를 제대로 안했다고 혀로 방바닥을 닦게 하고, 머리를 군홧발로 걷어차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곤 했다. 그는 맹수처럼 무자비했다. 다른 행정반 병사 한두명도 수없이 맞았다. 70~80년대 군생활을 한 남자들이 대개 그랬다고 여길테지만, 40년이 지난 지금도 도저히 잊을 수 없을만큼 폭력은 잔혹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급기야 2·4종(보급품) 창고에서 사격연습용 기구로 손등과 팔을 피가 터지도록 내리쳐도 봤다. 자해였다. 퉁퉁 부어올라 붕대를 하고 있으면 덜 맞을까 싶어서...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더 때렸다.

한번은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중대장과 수색대원들이 실탄 장전한 총을 들고 야간 '지향사격'을 할 때였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대장 뒷통수를 향해 총을 조준했다. 중대장의 철모 뒤 야광표식이 가늠쇠에 몇번이나 꽂혔다. 그 순간..끝내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 이 글을 쓰지도 못했을거다.

죽음의 속박을 벗어날수 있는 마지막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사는 것 보다 죽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극단의 갈림길에서 수없는 선택의 순간이 찰라를 스쳐갔다. 부모형제, 가족 얼굴, 고향 산천 등이 오버랩되면서...개죽음이 되겠구나 싶었다.

다행히 그런 고비를 수없이 잘넘기고(?) 장기복무 하사관 신청으로 부대를 탈출키로 했다. 동기생 몇 명이 같이 신청했는데 두어달새 모두 하사관학교에 입교했다. 그런데 기자만 연락이 없었다. 의아했다.

그렇게 1년 가까이 흐른 후 고 대위는 잦은 사병 구타때문에 헌병대 조사를 받고 전출됐다. 당시 같은 중대에 배치된 보안사(현 기무사) 대령 조카인 신병을 구타하다 걸렸던 것이다. 

더 가관인건, 후임 중대장으로 온 육사 36기 이모 대위였다. 그는 더 지독하고 악랄했다. 아예 악마였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단순히 때리는 게 아니라 거의 초죽음이 되도록 개패듯이 구타했다.

맞는 병사의 고통을 즐기는 듯 히죽거리면서...앞서 고 대위보다 더 징그럽고 야만적인 폭력을 휘둘렀다. 기자 역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의 매일 관사에 끌려가 구타를 당했다. 늘 공포에 질려 있었고 맞는 게 일상이었다.

결국 그도 상습적인 사병 구타가 들통 나 군복까지 벗었다. 그 일로 책임자인 수색대대장이 사단 인사참모로 징계성 전출을 가게 됐다. 그 시절의 군이 대개 그러했듯, 부대는 피해 병사의 입을 틀어막고 대충 덮어버리는데 혈안이 됐다. 전역 5개월을 앞둔 기자를 굳이 데리고 가면서 사건은 흐지부지 덮혔다.

전출가던 날 덩치 큰 인사담당 이 준위가 인사과로 불렀다. 그리곤 서랍 깊숙한 곳에서 기자의 장기하사관 지원신청서를 꺼내 주었다 "자네가 하도 중대장에게 맞아 이걸 신청한 걸 알고 내가 끝까지 감춰놓았지.."라고.

그 준위를 잊을 수 없다. 그렇게 군대 34개월을 구사일생으로 마쳤다. 요즘도 군대폭력 얘기만 들어도 괴로울 정도의 트라우마가 남아있다. 병사를 보호해야 될 육사 출신 두 장교가 저지른 40년 전의 폭력적인 만행! 그 처절하고 아픈 기억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지금도 간혹 악몽을 꾸고 잠을 설친다.

그들은 당시 기자보다 서너살 위였다. 아직 세상에 살아 있는지, 아니면 죄를 받아 먼저 갔는지 알수 없다. 살았다면 채 70이 안됐을 나이다. 만약 이 글을 본다면 이제라도 기자를 비롯한 당시 피해 병사들에게 뼈저린 반성과 뉘우침이 있기를 바란다.

고백 #2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1990년 어느 봄날.

심야 어둠속에서 젊은 여인이 다급하게 마산경찰서 형사당직실 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비몽사몽 당직을 하던 기자는 짜증스럽게 잠긴 문을 열어주었다. 비에 흠뻑젖은 그 여인은 허겁지겁 자리에 주저앉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지금 조폭에게 협박을 받고 있다. 살려달라"고 했다. 자초지종을 물었지만 더 자세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술냄새를 약간 풍기던 그녀는 "나를 죽이려고 조폭들이 계속 협박을 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진정을 시키고 달래면서 아무리 연유를 물어도 그녀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잔뜩 겁을 먹고 두려움에 떠는 모습에서 뭔가 사연이 있는 듯 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참을 울먹이던 그녀는 그렇게 한 30분쯤 지나 돌아갔다.

당직을 마치고 오전을 집에서 쉬고 오후에 사무실에 나오니 변사사건이 발생했다고 시끄러웠다. 다른 형사반에서 취급하는 일이라 건성건성 듣는 와중에 "죽은 여자가 어제 형사당직에도 왔다더라"는 말에 귀가 번쩍했다.

맞다. 그녀였다. 자그마한 유흥업소를 운영하던 그녀가 이른 아침 가포 앞바다에서 돌연 의문의 죽음으로 발견된 것이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자초지종을 물을 것도 없이 어젯밤에 내가 도울 방법을 끝까지 찾았어야 했는데...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건은 그녀가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일반변사로 종결됐다. 죽음의 원인이 말끔히 해소되지도 않은채...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일이 너무 아쉽다. 조금만 더 관심과 성의를 갖고 대했더라면...그녀를 살릴 수도 있었다는 깊은 자책감이 떠나지 않고 있다.

고백 #3

꼭 10년 전, 26년의 젊음을 바쳐왔던 경찰공무원을 사직했다. 이유야 구구절절 할 말이 많다. 다만 '남의 눈의 티끌만 보고 내 눈의 들보를 보지 못했다'고 정리하는 게 나을성 싶다.

나중에서야 사정을 알게 됐지만, 너무도 어이없는 일이었다. 당시 부임한지 1주일 밖에 안된 그 부장검사는 기자를 눈에 가시처럼 여겼던 모양이다. 수사팀장이었던 기자가 총선을 앞두고 소집한 공안대책회의가 끝나고 이어진 술자리에서 좀 설쳤다는...그런저런 이유로 눈에 난 게 가장 큰 화근이었다.

쪼잔했다. 결국 사표를 던지자 뜻하던 바를 이룬듯 잠잠해졌다. 그 와중에 기자의 입장을 헤아리려 애쓰던 같은 검사 동료를 그는 매몰차게 내치고 뭉갰다. 그 고마운 검사는 기자보다 꼭 1년 뒤 옷을 벗었다. 지금은 변호사로 변신해 지역에서 왕성한 법률서비스를 펼치고 있다.

재주와 능력이 출중했는지 부장검사는 그후에도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지금은 검사장까지 올라가 대검의 주요 보직에 있다.

엊그제 검찰총장 출신의 새로운 대통령 당선인이 선출됐다. 일부 유력 매체가 그동안 정권의 그늘아래 잘나가던 고위검사 몇 명을 찍어 정리대상으로 보도했다. 그의 이름도 오르내렸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될런지는 알수 없다. 다만, 잘나가던 그의 검사 인생도 이제 거의 막바지에 이른 듯하다.

당시 악연을 기억할런지 모르지만...그런저런 덕분과 독자들의 성원으로 지난 10년간 당당하고 더 열심히 살아왔다.

인생만사(人生萬事)는 새옹(塞翁) 노인의 말(之馬)이라 했던가. 젊음도, 권력도, 금력(金力)도 모두 한때 뿐이다. 세상에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다. 

거제저널  gjnow32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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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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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봉산 2022-03-20 11:23:10

    인생만사 새옹지마! 진짜 맞는 말이다. 누구도 한치 앞을 알수없는 것이 인간이다. 터놓고 말하기 어려운 아픈 인생사를 칼럼으로 쓰는 것이 쉽지 않을텐데...제2의 삶에 축복과 박수를 보냅니다.   삭제

    • 독자 2022-03-16 18:32:27

      지금까지 가슴에 깊이 묻어왔던 얘기를 남 앞에 꺼내기 싶지 않은텐테.. 참 고생 많았네요. 서 대표 용기에 박수를 보내요. 이젠 깨끗히 털어버리고 남은 제2의 인생 보람있고 힘차게 보내길.. 화이팅!   삭제

      • 후배 2022-03-14 09:49:08

        늘 밝은 모습의 선배님에게도 이런 고통스런 일이 있었군요.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울컥했습니다. 저도 장교로 복무를 마쳤지만 그런 못된 인간들은 꼭 있어요. 그 인간들 아마 제 명에 못살고 먼저 뒈졌을 겁니다^^. 10년전 갑자기 왜 퇴직했는지도 궁금했는데.. 조금 이해가 됩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아픈 기억을 이렇게 드러내놓기가 쉽지 않는데.. 이제 훌훌 털어버리십시요. 지금 선배님의 제2의 인생! 충분히 값지고 가치있습니다. 앞으로 좋은 글 많이 쓰시고요. 또 좋은 일만 있을 겁니다. 응원합니다. 화이팅 하십시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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