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은 이번에도 절묘했다. 그리고 매서웠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아슬아슬하게 승리했다. 윤 당선인의 최종 득표율은 48.56%.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47.83%)와 불과 0.73%포인트 차이였다. 서울 서대문구 인구(30만 6000명)에도 못 미치는 24만7077 표 차로 윤 당선인이 최고권력을 거머쥔 것이다. 

대선 결과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를 향한 민심의 채찍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호되게 심판한 동시에, "대승할 것"이라고 자신한 '예비 집권여당' 국민의힘의 오만에도 경종을 울렸다.

윤 당선인에겐 '겸손한 통합 대통령'이 될 것을 국민은 명령했다.

①오만하지 말라 

"권력에 취해 오만하지 말라"는 메시지는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에게도, 더불어민주당에도 유효하다.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557만 표 차의 승리를 안겼던 민심은 5년 만에 싸늘하게 돌아섰다. 거칠게 비교하면, 약 600만 표의 민심이 민주당을 떠나갔다.

민심은 지난 대선 이후 민주당에 전국단위 선거 4연속 승리를 몰아 주며 대통령·국회·지방 권력의 독점을 허용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로 무너진 정의와 민주주의를 되살리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권력을 함부로 썼다. 지난해 4·7 재·보궐선거에서 최후의 경고를 받고도 듣지 않았다.

대선 직전까지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를 요구하는 여론은 정권연장을 바라는 여론보다 줄곧 약 10%포인트 많았다. 이처럼 '기울어진 운동장'을 국민의힘은 과신했다.

여론조사 깜깜이 기간 "10%포인트 차로 이긴다"(이준석 당대표)는 말을 공공연히 할 정도로 국민의힘은 너무 빨리 샴페인을 터뜨렸다.

최종 득표율 차이가 0.73%포인트에 불과했다는 건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이 선거 과정에서 약 10%의 민심을 잃었다는 뜻이다. 역시 통렬히 반성해야할 지점이다.

②무능하지 말라

영·호남 지역주의의 벽은 이번에도 높았다. 국민의힘 텃밭인 대구는 윤 당선인에게 득표율 75.14%를 몰아 줬고, 민주당 아성인 광주는 이재명 전 후보에게 84.82%의 득표율을 안겼다.

대선 승패는 결국 서울과 수도권에서 갈렸다. 부동산 분노 민심이 결정타였다. 윤 당선인은 서울에서만 이 전 후보에게 31만766표를 앞섰다.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를 포함해 자치구 25곳 중 14곳에서 윤 당선인이 승리했다.

2020년 4월 총선 때 민주당에 싹쓸이 승리를 선사했던 서울 민심이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2017년 대선에서도 문 대통령이 서울 모든 자치구에서 이겼다.

이는 민심이 정권의 무능을 오래 인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는 28차례나 부동산 정책을 발표하고도 치솟는 집값·전셋값을 잡지 못했다. 공급 위주 정책은 너무 늦게 결정했다.

정권 인수를 준비하는 윤 당선인이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③갈라치기하지 말라

이번 대선의 또 다른 특징은 여성 표심의 결집이다. 여성 유권자들은 윤 당선인을 심판했다. '여성가족부 폐지' '무고죄 강화' 공약,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페미니즘 때문에 출산율이 떨어진다"는 발언 등 '젠더 갈라치기'라는 혐의를 받은 선거 전략이 심판 대상이었다.

투표를 하루 앞둔 '세계 여성의 날'에 여가부 폐지 공약에 쐐기를 박을 정도로 윤 당선인은 무모했다.

여성 표심의 결집으로 윤 당선인은 대선 승리를 놓칠 뻔했다. 지상파 방송 3사의 대선 출구조사에 따르면, 60대 이상을 제외한 전 연령대의 여성들 사이에서 윤 당선인은 이재명 후보에 밀렸다.

20대의 이 전 후보 예상 득표율은 58.0%, 30대는 49.7%, 40대는 60.0%, 50대는 50.1%였다. 결국 20대부터 50대 여성들까지 똘똘 뭉친 것이다.

이로써 눈앞의 표와 지지율에 매몰된 '갈라치기 시도'는 결국 권력에 독이 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그러나 이를 되새겨야 할 윤 당선인은 10일 기자회견에서 "젠더 갈라치기를 한 적이 없다"며 "오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그의 진심이 무엇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여가부 폐지 공약의 존폐 여부는 윤 당선인이 '안티 혐오' 표심을 얼마나 무겁게 받아들였는지를 가르는 가늠자가 될 것이다. 

한편 지난 9일 치러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무효 투표수도 30만7542표가 나왔다. 이는 윤 후보와 이 후보 간 득표수 차이인 24만7077표보다 6만465표 많다. 이 또한 역대 가장 높은 수치다.

이에 대해 한 매체는 19대 대선을 비롯해 총 4번 개표에 참여한 사무원의 발언을 인용해 "이처럼 무효표가 많이 나온 건 처음 봤다. 후보 이름에 욕을 써놓거나 기표도장 대신 펜으로 두 후보에게 동그라미 표시를 한 사람도 있었다. 무효표 상당수는 안철수표였다"고 보도했다. 

거제시 개표 결과도 5.1%P 차이로 근접해 다소 의외였다. 윤석열 후보가 7만1772표(49.8%), 이재명 후보는 6만4355표(44.7%)를 각 득표했다. 두 후보간 표차는 7417표였다. 

거제시 득표율 격차는 이재명 후보가 상대적으로 분전(奮戰)한 김해시(3.1%)에 이어 도내에서 두번째로 적다.

이같은 결과는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패자인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승자인 국민의힘에도 적잖은 긴장감을 주고 있다.

당초 여유롭게 승리를 예상했던 국민의힘 거제선대위 관계자는 "정치 지형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는 걸 실감했다"면서 "생각보다 민주당이 동(洞)지역에서 표가 많이 나왔다. 2020년 4·15 총선 이후부터 나타나는 이런 현상은 우리로선 우려스런 지점"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는 4년전 민주당이 거제시정과 시·도의원을 대부분 장악한 이후 조직관리에 정성을 들여왔고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의미"라며 "앞으로 중도성향을 가진 유권자를 어느쪽이 잘 흡수하느냐가 지방선거 승리의 관건이 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더불어민주당 거제선대위 관계자도 "비록 전체 선거에선 아쉽게  졌지만, 지역에서는 예상보다 고무적인 결과가 나왔다"면서도 "그래도 6월 지방선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는 또 "최근 거제 민심 흐름을 보면 젊은층이 몰려 있는 동(洞) 지역에서는 우리가 지지를 많이 받았다"며 "대선과 지선이 다소 차이가 있다해도, 노령층이 많이 거주하는 면(面)지역을 제외하곤, 앞으로 일방적인 몰표 현상은 없어질 것이라는데 방점을 찍고 싶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번 선거에서도 면지역은 보수적인 국민의힘, 동지역은 범진보 성향의 더불어민주당 지지세가 강하다는 기존 구도는 그대로 굳어졌다.<전단부:한국일보 김현빈·박재연 기자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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