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기성관에 이어 거제지역 두 번째로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에 지정된 문화재가 있다. 둔덕면 거림리  산 95번지 일원의 ‘거제 둔덕기성’이다.

사적 제509호 둔덕기성(屯德岐城, 일명 폐왕성廢王城)은 그동안 고려 무신의 난에 의해 유배된 의종이 3년간 지낸 곳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조사결과 7세기 신라시대 성(城)의 축조 법과 일치해 있고 특히 성벽은 삼국시대 초축(初築)되고 고려시대 수축(修築)되어 축성법의 변화를 연구하는 데도 학술적 가치가 큰 곳이다.

학술적 가치도 크지만 경남도  문화사적이 대부분이 내륙에 있는 고분군이나 성터, 건물인 것에 비해 거제기성은 거제 내륙과 바다를 한꺼번에 조망 할 수 있는 유일한 사적문화재로 앞으로 거제지역의 새로운 관광테마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성은 아직 관광객의 눈낄을 끌지도 또 행정의 지원을 넉넉히 받지도 못해 아직 제대로 된 탐방로나 편의시설이 없다. 다만 최근 복원된 우물과 성곽 일부분이 있을 뿐 이이다.

그렇지만 기성을 그저 역사적 의미만 있는 곳은 아니다.

 해발 326ｍ의 우봉산 자락에 위치한  기성은 오르는 길이 그리높지도 않고 산허리를 구비구비 돌아 가다보면 높낮이에 따라 산과 들 그리고 바다를 모두 조망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기성에 가기 위해서는 두 개 중에 하나의 임도를 거쳐야 하는데 사등면 오량리로 가는 길과 둔덕면 거림리로 가는 길이 있다.

두 곳 모두 한길로 이어져 있어 오를 때 혹은 내려오는 길을 달리 하는 방법이 좋다. 하지만 시작점을 사등면 방향으로 한다면 입구를 찾기 쉽지 않으므로 출발은 둔덕면 방향을 택하는 것이 좋겠다.

기성으로 향하는 임도는 현재 소형차는 약간의 무리가 있겠지만 드라이브도 가능 할 뿐만 아니라 거제지역의 자전거 라이딩코스나 등산 코스로도 훌륭하다.

진짜 황제의 길?

기성에 올라서면 멀리 남쪽으로 통영 시내지역이 바다저편으로 보이고 서쪽과 북쪽으로는 통영과 고성지역이 훤히 보인다.

특히 현재 거제 신구대교가 있는 견내량의 원래 이름은 의종이 건너온 길이라 해서 전하도로 불려왔다.

성을 중심으로 멀리 또 가까이 바다와 섬이 어우러진 모습이 마치 영화관의 대형스크린을 보는 듯하다.

최근 만들어진 탐방로는 ‘황제의 길’이다. 거제지역에는 일운면 망향마을에 에디오피아 셀라시에 황제가 지났다는 황제의 길이 있다.

최근 황제가 방문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구설수에 올랐지만 경치가 황제급이면 황제의 길로 명명해도 큰 무리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기성에 있는 황제(고려는 우리민족 최후의 황제국)의 길은 역사적 기록만큼은 확실하다. 기성에 유배된 3동안 기성 주변을 얼마나 서성였겠는가?

 음주가무를 즐기고 문학에 조예가 깊었다는 의종은 이곳에서 유배 3년 동안 금빛 윤슬이 빛나는 전하도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과 그리움을 노래했을 듯하다.

현재 기성은 동쪽 부분이 일부 복원 되어있다. 기성의 동쪽방향은 산방산의 아름다운 모습이 잡힐 듯 마주 보인다.

아직 복원이 되지 않은 성벽은 허물어져 돌무더기로 변하고 말았지만 기존에 남은 부분과 일부 복원을 하여 많은 부분이 성의 형상이나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는데 별 무리는 없다

특히 성의 형태를 자세히 보면  성벽 가운데 부분이 배흘림기둥과 같이 튀어나와 있는데 이는 침입자가 성벽을 쉽게 기어오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듯하다.

 기성의 남동쪽에는 최근 복원한 집수터인 연지가 있다. 지의 규모는 직경 16.2ｍ, 깊이 3.7ｍ에 달해 물 16만6천ℓ를 저장할 수 있는 대규모 집수시설이다.

연지는 지난 2007년 발굴당시 아래 뻘층에서는 토기와 청자접시, 기와, 청동그릇 파편과 화살촉, 구유, 멍에, 괭이, 목제망치, 소뼈 등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걸친 유물 수백여점이 발굴됐다.

지금도 거제지역에는 의종과 관련돼 이름 붙여진 지명 및 유적이 고스란히 존재하고 있다. 배를 타고 건넜던 견내량 수로변은 전하도목이라 불리고 , 둔덕면 방하마을에 고려골이라 불리는 곳은 고려인들의 무덤이 남아 있다.

고려시대 부터 둔덕면 거림지역은 고려의 관아터로 아래 마을에는 둔전(屯田)을 두어 농사를 짓도록 했고, 윗마을에는 말을 기르는 마장(馬場)과 그 목장 감독자인 시목이 있었다. 또 동·서 양쪽에 상둔(上屯)과 하둔을 설치해 방어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거제지역에서 포로수용소테마공원을 제외한 역사문화 유적지에 대한 관광지개발이나 복원사업은 미미한 수준이다.

최근 둔덕기성에 대한 놀라운 역사를 발견했다. 3년 동안 거제지역에 머문 의종이 승하 하고 난 후 800년 동안 둔덕면민들이 의종을 위해 제를 지냈다는 사실이다.

새마을운동으로 한동안 없어졌지만 4년 전부터 거제수목문화클럽에서 의종추념식을 재현하면서 매년 10월 셋째 주 토요일 의종의 넋을 기리고 있다.

800년 이상을 이어 온 제례가 있다면 이는 거제의 또 다른 관광문화가 될 수 있다. 기성은 비록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지만 새로운 관광 동력으로 성장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고 했다. 거제 사람이라면, 또 거제가 궁금하다면 거제지역 과거에 대한 수수께끼가 숨어 있는 기성에 한번 쯤 오르는 것도 좋겠다.
   

폐왕의 역사 그리고 기성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기성의 이름은 폐왕성 이었다. 이는 어떤 역사기록에는 없지만 사람의 입에서 구전되어 붙여진 이름이거나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의 역사왜곡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라 추측된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라고 말한다. 패자는 사라지고 승자만이 남아 역사를 쓰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성의 이름이 폐왕성으로 불리던 것과 크게 무관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패자의 기록은 은폐되거나 혹은 왜곡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패자의 기록이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기도 하고 승자의 기록인 정사(正史)보다 더 널리 사랑받는  야사(野史)로 기록되기도 한다.

거제도가 유배지의 대명사로 불리기 시작한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838년 전인 11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170년 정중부 ·이의방 등이 난을 일으키면서 고려18대 황제 의종은 폐위돼 거제도로 귀향하는 이른바 ‘무신의 난’ 또는 ‘정중부의 난’이다.

이후 의종은 3년 동안 기성(거제)에서 와신상담하던 의종은 1173년 김보당과 복위운동을 꾀하다 실패, 경주(계림)에 유폐되었다가  이의민에 의해 살해됐다.

그러나 새로운 집권 세력으로 등장한 무신들은 개혁을 부르짖으며 새로운 고려 건설을 꿈꾸었지만 자신들의 권력욕에 사로잡혀 백성들을 궁핍과 가난으로 내몰고 말았다. 결국 몽골의 침입을 받은 후 고려의 국운은 쇠하면서 백성들은 새로운 나라를 바라게 된다.

무신의 난은 의종의 왕위만 빼앗은 것이 아니다. 당시 대부분의 문인들이 살육당하면서 그 찬란했던 문화마저 사라진 것이다.

최대윤 기자  crow112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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