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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보도연맹, 6·25 당시 좌익전향자 관리 목적 조직...일반인도 대거 가입
전쟁 나자 '훈련·교육' 빙자, 거제署 집단 구금...배에 태워 장승포 앞바다 수장

6·25 전쟁 당시 거제에서 억울하게 수장(水葬)당한 국민보도연맹 피해자 유족들에게 국가가 정신적 손해배상에 따른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37부(재판장 이상원)는 '거제 국민보도연맹원 민간인 희생사건' 피해자인 A씨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지난달 25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유족이 청구한 금액 1억5800만원 중 1억700여만원이 인용됐다.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4월 이승만 자유당 정부가 원래 좌익으로부터 전향한 이들을 관리하려는 목적으로 조직된 관변단체다. 하지만, 조직 확대 과정에서 좌익과 상관없는 일반 국민들도 대거 가입했다.

실제 당시 정부가 가입 인원을 전국 각 행정기관에 할당된 사례도 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또 본인의 의사와 상관 없이 명단에 들어가거나 꾐에 넘어가 가입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6·25전쟁 발발 직후 "북과 내통 우려가 있다"는 이유 등으로 전국에서 수만 명이 경찰서 등지에 분리 구금됐다가 군경에 의해 모두 집단 학살 당했다.

특히 이들 중 대부분은 보도연맹과 무관하게 학살당했는데도 당시 자유당 정권에 의해 '좌익' '빨갱이'로 낙인 찍혀 오랜 세월 후손들까지 매도 당하기도 했다.

이번 '거제 보도연맹원' 소송은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7월께 주로 20~30대 거제지역 국민보도연맹원 23명이 거제경찰서로 이송돼 일시 구금됐다가 장승포와 지심도 사이 바다에 집단 수장된 사건이 발단이다.

당시 경찰은 빨치산 협력자·국민보도연맹원·부역 혐의자 및 그 가족들을 훈련·교육 명목으로 거제경찰서로 강제로 데려가  구금했다. 이 과정에서 영문도 모르고 끌려간 인사도 다수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경찰과 CIC(국군방첩사령부의 전신)·해군 등은 이들을 배에 태워 장승포와 지심도 사이 바다에 모두 수장시켰다.

당시 '제1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A씨에 대한 조사를 후손들 신청 없이 직권으로 착수했다. 이 사실을 모르던 A씨 유족들은 2020년 재출범한 '제2기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요청했다.

이에 2023년 7월18일 제2기 진실화해위는 사건기록과 관련자 진술 등을 종합해 "A씨는 보도연맹 희생자가 맞다"고 최종 인정했다. 

이번 소송에서 정부측 대리인은 A씨가 보도연맹 사건의 피해자라는 점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1기 진실화해위가 A씨가 보도연맹 희생자로 '추정'된다고 결정했던 점, 조사 과정에서의 진술 내용이 전언(傳言) 형태로 이뤄진 점을 들었다.

또 유족들이 1기 진실화해위 결정이 나온 2009년으로부터 10년이 지나서야 소장을 내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맞섰다.

하지만 재판부는 "진실화해위 측이 확보한 당시 목격자들의 진술이 조사결과와 부합하고, A씨 족보에 '1950년 7월16일 비명횡사로 시신 미수습'이라고 기재 돼 있어 이 사건의 희생 시기에 해당하는 점 등을 보면 그가 거제 국민보도연맹 사건의 희생자인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 했다.

정부의 소멸시효 주장에 대해선 "1기 진실화해위의 진실규명 결정이 원고들에게 통지됐다거나, 그 결정의 존재 및 내용을 알았다는 점을 인정할 근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보도연맹 사건은 국민 생명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범죄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민간인들을 정당한 법적 절차없이 살해한 행위"라며 "유족들 또한 경제적 빈곤의 대물림과 사회적 낙인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 충분히 짐작된다"고 밝혔다.

앞서 2008~2009년 제1기 진실화해위는 한국전쟁 전후 군경에 의해 학살된 거제민간인 희생자를 159명이라고 발표했다. 이후 이들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배상 소송을 진행했다. 

다만,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거제유족회(회장 임사천)' 측은 당시 학살당한 민간인 희생자 수를 보도연맹원을 포함해 약 1000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2020년 6월9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 개정됨에 따라 그해 12월10일 2기 진실화해위가 출범해 지난 3년간 진실규명 활동을 이어왔다.

2기 진실화해위는 오는 6월 활동 종료 시점을 앞둔 가운데 2022년 12월27일 '거제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 진실규명 결정에 이어, 2023년 7월18일 '거제보도연맹 및 예비검속 사건(1)' 진실규명 결과를 발표했다.

'거제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 진실규명 보고서에 따르면, 1949년 4월에서 1950년 6월 사이 군경에 의해 연행·구금된 거제 주민 14명이 둔덕면 하둔리 앞산, 하청중학교 앞산, 연초면 송정고개 등에서 집단 학살된 것으로 드러났다.

보도연맹원으로 추정되는 20~30대 주민 23명(남 22·여 1명)도 1950년 7~8월 한국전쟁 발발 후 예비 검속돼 거제경찰서에 구금됐다가 군경에 의해 장승포와 지심도 사이 바다에서 집단 수장된 것으로 조사됐다.

진실화해위는 군과 경찰이 범죄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민간인들을 예비 검속해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살해한 행위는 명백한 불법으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국가는 유족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피해회복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지방자치단체는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를 회복하고 추모사업 지원과 유해발굴 및 안치, 평화 인권교육의 강화 등을 요구했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거제유족회 사무국장과 위령공원건립추진위원장을 맡았던 노재하 거제시의원은 5일 오후 거제저널과 통화에서 "관련 법률에 배·보상 조항이 빠져 있어 피해 구제의 한계는 물론, 조사 기간도 3년에 불과해 진상규명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쉽지는 않겠지만, 이번처럼 결정 소식을 제대로 몰라 배상소송에서 누락되는 사례가 없도록 소멸시효 배제 특별법 제정이 꼭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거제유족회'는 2020년 11월21일 장목면 외포리 산227-3번지에 위치한 민간인희생자 '기억·평화공원'에서 위령비 제막식을 열었다. 사진=유족회 제공>

서영천 대표기자  gjjn32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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