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해 2010년 해군에 인도한 한국 두번째 이지스함인 7600톤급 '율곡이이함'. KDDX 사업은 7조8000억 원을 들여 율곡이이함보다 작은 '미니 이지스함'으로 불리는 6000톤급 한국형 차기 구축함 6척을 건조하는 대형 사업이다. 사진=한화오션>

방위사업청(청장 석종건)이 조직적인 군사 기밀 유출 범죄를 저저른 HD현대중공업의 방산 입찰 참가자격을 제한하지 않기로 해 논란이다.

방위사업청은 27일 오후 2시 열린 계약심의위원회 심사 결과 HD현중의 부정당업체 제재 심의를 '행정지도'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방사청 심의 결과는 △입찰 참가 자격 제한 또는 과징금 등의 처분 △처분 면제 및 행정지도 △심의 보류 △각하 등이다.

방사청은 이날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이 국가계약법 제27조 1항 1호 및 4호 계약이행시 설계서와 다른 부정시공, 금전적 손해 발생 등 부정한 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제척기간을 경과함에 따라 제재 처분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심의의 핵심 쟁점으로 꼽혔던 '임원 등 윗선의 조직적 지시' 여부에 대해서도 "방위사업법 59조에 따른 제재는 청렴서약 위반의 전제가 되는 대표나 임원의 개입이 객관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아 제재 처분할 수 없다고 봤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HD현중은 방산 분야 입찰 참가자격 제한이라는 '최악의 국면'은 일단 피했다.

하지만 한화오션이 자리잡고 있는 거제지역에선 관련 협력업계를 중심으로 방사청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며 반발과 원성이 거세다.

한 조선협력업체 50대 대표는 "HD현중 입장에선 비록 유죄 처벌을 받았더라도 그 직원 9명은 회사의 충신 아닌가"라며 "방사청이 이번 처분을 통해 앞으로 도촬을 해서라도 경쟁회사 기밀을 빼돌려도 된다는 공식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애초부터 심의나 제재를 미적거리고, 어떤 측면에서 범죄 연루 정황까지 나온 방사청을 믿은 게 오판"이라며 "현 정권 집권 초기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던 공정과 상식은 이미 비웃음거리와 헛말이 된지 오래"라고 직격했다. 

한화오션 측도 "HD현대중공업의 기밀 탈취는 방산 근간을 흔드는 중대 과실"이라며 "재심의와 감사 및 경찰의 엄중한 수사를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한 관계자는 "최소한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라며 "방사청 결정은 '문서 탈취 사건에 가담한 직원 9명이 임원과 대표가 아니다'라거나 '개인 잘못은 처벌 받더라도 회사가 직접적인 법적 책임의 범주에 있지 않다'는 HD현중 측 주장을 고스란히 들어 준 것 같다"고 꼬집었다.  

앞서 방사청은 '부정당 제재' 심의를 미적거리다 국정감사에서 거제 지역구 서일준 의원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까지 호된 질타를 받았다.

국가방위산업을 총괄하는 방사청이 법원 판결문을 입수하지 못해 심의를 못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변명으로 일관해 노골적인 HD현중 봐주기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후 판결문을 확보했다는 방사청은 지난해 12월 계약심의위원회를 열어 HD현중의 입찰 참가 자격 제한 조치 등을 논의했다. 그런데도 추가 검토할 사안이 있다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로 심의를 늦춰 지금에 이르렀다. 

실제 이 과정에서 HD현중 측은 사건 판결문을 제3자가 열람할 수 없도록 공개를 제한해 방사청이 부정당 제재나 계약 취소 등의 조치를 지연시키는 꼼수를 드러내 공분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경찰이 당시 직원들이 빼낸 군사기밀을 기반으로 HD현중 임원들이 결재와 계약에 관여한 정황을 포착해 수사중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2018년 기무사가 적발해 송치했던 당시 피의자들 중 현역 해군중령이나 군무원 등은 국방부검찰단에서, HD현중 직원들은 울산지검에서 각 조사를 거쳐 재판에 넘겨졌다. 

'뉴스1' 보도에 따르면, 적발된 HD현중 직원들이 작성한 당시 불법 취득보고서를 임원이 결재했다는 관련 직원의 진술이 국방부검찰단 수사 기록에 담긴 것으로 밝혀졌다.

방위사업법상 입찰 참가 자격 제한은 청렴 서약 위반 당사자를 대표 또는 임원으로 국한하고 있어 '임원 개입 여부'가 핵심이다.

당시 유죄가 확정된 직원 중 1명은 국방부검찰단 조사 당시 "피의자·부서장·중역이 결재했다. 맞느냐"는 군검찰 질문에 "예"라고 답했다는 것. 

현재 경찰은 HD현중이 불법 취득한 기밀자료를 비인가 서버에 관리하는 과정에서 당시 회사 임원이 외부 서버 업체와 계약한 자료 등을 확보해 별건 수사에 박차를 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한편으론, 2020년 하반기부터 이 사건을 살펴보고 있는 국가수사본부 중대범죄수사과는 지난해 8월17일 오전 KDDX 사업 발주처인 방위사업청 담당부서와 전 방사청장 자택 등을 압수수색 했다.

당시 경찰의 강제수사(압수수색) 이유는 방사청이 KDDX 사업 발주(2020년 5월) 직전인 2019년 9월 보안사고를 낸 업체에 감점을 주도록 한 규정을 일부 바꾸거나, 점수를 임의로 수정해 HD현중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다. 경찰은 지난해 6월초 KDDX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옛 방사청 고위간부가 개입한 유력 단서를 포착해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를 두고 법조계 일각에선 이런 의혹을 받는 방사청이 과연 공정하고 객관적 관점에서 HD현중에 부정당업체 제재 여부를 심의할 자격이 있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HD현중 특수선사업부 직원 9명은 해군 기밀 자료를 몰래 촬영해 이를 회사 내부망에 공유했다가 2018년 기무사(당시) 불시 보안감사에 적발돼 검찰 수사를 거쳐 재판에 넘겨졌다. 

유출된 문건은 △KDDX(한국형 차기 구축함) 개념설계 1차 검토 자료 △장보고-III 개념설계 중간 추진 현황 △장보고-III 사업 추진 기본전략 수정안 △장보고-I 성능개량 선행연구 최종보고서 등이다. 

더구나 KDDX 개념 설계도는 옛 대우조선해양(한화오션)이 해군에 납품한 자료이다. 향후 KDDX 수주를 위한 기본설계의 핵심이자 3급 군사기밀로 취급된다. 

1심 재판부는 2022년 11월 연루자 8명에게 징역 1·2년, 집행유예 2·3년을 선고했고 지난해 11월30일 유일하게 항소했던 직원 1명도 원심이 확정돼 9명 전원 유죄 처분을 받았다.

그러자 수차례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를 보여 온 방사청은 어쩔수 없이 지난해 11월 말 HD현중 직원 9명의 유죄 확정판결 이후 군함 등 특수선 입찰에서 HD현중에게 1.8점의 보안 감점을 적용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업계에선 방사청의 '솜방망이' 결정에도 불구하고, 0.1점 차이로 당락이 갈리는 방산 수주 경쟁에서 HD현중은 여전히 불리한 여건에 놓여있다는 평가다.

반면, 또다른 일각에선 기본설계를 담당한 HD현중이 방산 수주 관례상 본 설계를 맡는데 다소 유리하다는 견해도 있긴 하다.

KDDX 사업은 오는 2030년까지 7조8000억원을 들여 '미니 이지스함'으로 불리는 6000t급 한국형 차기 구축함 6척을 건조하는 대규모 방산 사업이다.

올해 하반기 상세설계, 초도함 건조에만 1조원이 넘는 규모의 입찰이 예정돼 있다.

따라서 이번 방사청 결정에 따라 앞으로 두 거대 방산기업 간에 불꽃튀는 수주 경쟁이 더욱 가속화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서영천 대표기자  gjjn32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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